스피노자, “사랑이란 외적 원인의 관념을 수반하는 기쁨”
“사랑이란 외적 원인의 관념을 수반하는 기쁨”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사랑에 대해서 “사랑이란 외적 원인의 관념을 수반하는 기쁨”이라고 정의했다. 누군가(외적 원인)을 통해 기쁨을 느낀다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기쁨’이라는 말이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모든 감정은 결국 ‘기쁨’과 ‘슬픔’이라는 두 가지 감정으로 분류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헌신’, ‘환희’, ‘희망’, ‘신뢰’, ‘자기만족’ 등과 같은 감정은 ‘기쁨’이라는 감정으로 묶을 수 있다. 반대로 ‘미움’, ‘멸시’, ‘수치’, ‘절망’, ‘후회’ 등과 같은 감정은 ‘슬픔’이라는 감정으로 묶을 수 있다.
스피노자의 이 사랑에 정의를 통해 또 하나의 이별의 시그널을 발견할 수 있다. 스피노자의 사랑에 대한 정의를 생각해보면, 연인을 통해 느껴졌던 기쁨의 감정이 사라진다면 사랑이 끝났다는 말다. 이건 연인을 만나서 즐겁지 않다면 헤어져야 한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스피노자가 말한 ‘기쁨’이라는 감정이 그렇게 단순하지 하지가 않다. 스피노자의 ‘기쁨’은 어떤 감정일까? ‘헌신’, ‘환희’, ‘희망’, ‘신뢰’, ‘자기만족’과 같은 기쁨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스피노자의 기쁨
스피노자는 기쁨이란 감정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스피노자는 “기쁨을 정신이 보다 큰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감정, 예를 들면, ‘헌신’, ‘환희’, ‘희망’, ‘신뢰’, ‘자기만족’ 같은 감정은 결국 우리를 더 완전한 어떤 존재로 만들어준다. 연애를 할 때 우리가 조금 더 완전한 존재가 된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그래서다. 사랑할 때, ‘헌신’하고 ‘환희’를 느끼고 ‘희망’을 갖게 되고, ‘신뢰’할 수 있으며, ‘자기만족’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애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 ‘기쁨’을 통해 더 완전한 존재가 되기는커녕 ‘슬픔’을 통해 더 불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미움’을 느끼고, ‘멸시’하게 되고, ‘수치’스럽고, ‘절망’스럽고, ‘후회’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런 연인을 만나 그런 ‘슬픔’의 감정이 휩싸이게 될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여지없이 더욱 불완전한 존재가 된다. 이것이 이별의 시그널이다.
“언제 이별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스피노자는 이렇게 답할지도 모르겠다. “연인과 데이트를 하는 동안에 혹은 데이트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그 감정이 무엇이든 간에,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 휩싸인다면, 그래서 점점 더 불안전한 존재가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용기를 내어 이별을 말해야 한다.” 사랑은 기쁨을 통해 더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지, 슬픔을 통해 더 불안전한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과 이별의 시그널은 분명하다. ‘기쁘’다면 사랑하고, ‘슬프’다면 이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