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0.23의 사랑은 불가능한가?

바람에 관한 철학적 고찰

“연인이 있는데, 자꾸만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와요”


“연인이 있는데, 자꾸만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와요” 가끔 받는 질문이다.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사람 마음이란 게 ‘안 된다’고 말한다고 안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하는 것이 바람이 아닐 수도 있다. 반대로 섹스를 하지 않아도 바람을 피우는 것일 수 있다. 바람은 연인이 있는데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람, 피워도 될까?’의 답변으로 ‘절대 안 돼!’라고만 말하지 말고 사랑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자.


 컴퓨터는 사랑에 대해서 정의할 수 없다. 왜냐? 컴퓨터의 세계는 0과 1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랑에 대해서 정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0은 사랑 아님’, ‘1은 사랑’으로. 하지만 우리네 현실에서 0인 사랑 아님도 없고, 1인 사랑도 없다. 우리네 사랑은 언제나 그 사이 어디 즈음 존재한다. 혹자들은 오래된 연인들에게 쉽게 말한다. 너희는 이제 사랑이 아니라고. 0과 1뿐인 디지털의 세계에서 이 말은 맞다. 굳이 0과 1로 나누어야 한다면, 익숙함에 젖어버린 오래된 연인의 사랑은 0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함께 했던 추억, 서로에 대한 애잔함, 은은한 그리움이 존재한다. 이런 감정은 사랑의 찌꺼기이긴 하지만 완전히 ‘사랑 아님’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0.127, 0.3456, 0.5685, 0.7856의 사랑이다. 오래된 연인의 사랑을 0이라고 말할 수 없다. 적어도 0.127의 사랑이라고는 말해야 하는 것 아닐까? 굳이 사랑을 0과 1로 나누어야 할 필요가 없다면, 바람이라는 것도 조금 다른 각도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0.23의 사랑은 불가능한가?


먼저 묻자. 우리는 왜 매력적인 사람이 나타나면 “사귈래?”라고 말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연인임을 공표할까? 그건 0.127, 0.3456, 0.5685, 0.7856의 사랑이 두렵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게 불확실한 것을 제거하고 싶어 하는 동물이다. 연애에서도 마찬가지다. 매력적인 상대를 만나면 두렵고 불안하다. 나를 떠날까봐. 그래서 나에게 묶어두고 싶다. ‘연인’이라는 일종의 배타적 계약을 통해서 말이다. 사실 결혼은 그리 탄생했을 게다. 상대가 떠날까 두렵고 불안하기에 더 강력한 구속력을 가진 계약을 만든 것이다.

  

 이제 수위를 높여보자. 서로 연인이 있지만 만나서 밥 먹고 섹스하는 관계? 있을 수 있다. 각자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미술관, 음악회에 함께 가는 관계도 있을 수 있다. 연인 있지만 정서적 교감은 거의 없는 섹스를 할 수 있고, 섹스 없는 정서적 교감도 가능하다. 그 모든 것을 바람이라 규정할 수는 있지만 그 관계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 관계는 분명 존재하니까.


 그리고 그 모든 관계는 분명 사랑이다. '정서적 교감', '육체적 쾌감',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이 함께하는 사랑을 0.87의 사랑이라고 한다면, 가끔 만나 밥 먹고 섹스하는 관계도 0.34 정도 사랑이라고 말해야 정당하다. 섹스는 하지 않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미술관에 가는 관계도 0.56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사랑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의 배타적인 소유욕, 그리고 그 소유욕이 붕괴될까 두렵고 불안해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일 테다.



바람, 피워도 될까?


결론이 뭐냐? 바람을 피우면 안 된다는 말인가? 피워도 된다는 말인가? 답은 ‘알아서들 하시라!’다. 무책임한 이야기가 아니다. ‘바람을 피우면 안 돼!’라고 말한다고, 연인 이외에 섹스하는 관계를 모두 정리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바람을 피워도 된다!’라고 말한다고, 억지로 다른 이성과 차를 마시고 영화를 보러갈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절대 바람은 피면 안 된다’는 금욕적인 주장을 할 생각도 없고, 이리 저리 바람피우고 다니는 사람을 정당화해줄 생각도 없다.


 바람에 관해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딱 두 가지다. 우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1’인 사랑만이 유일한 사랑이라 정해 놓고 나머지 사랑을 폄하하거나 그 자체를 부정하지 말자는 거다. 두 번째는 연애든, 바람이든, 가급적 ‘1’의 사랑에 가까운 순도 높은 사랑을 하자는 것이다. 0.34의 사랑보다는 0.56의 사랑을, 0.56의 사랑보다는 0.87의 사랑을 하자. 그것이 윤리적, 도덕적으로 옳아서 아니라 그래야 행복하기 때문이다. 연애든 바람이든 순도 높은 사랑을 따라 가자. 연애든 뭐든 다 행복하자고 하는 일 아닌가. 

매거진의 이전글 더 완전해지지 않는다면, 사랑은 끝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