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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돈 벌고 싶은가? 그렇다면 사랑하라!

돈, 그리고 사랑

사적인 영역의 사랑은 정말 하고 있을까?

아프게 하나 짚고 가야할 것이 있다. 공적인 영역의 사랑은 너무 멀고 또 현실성 없어 보인다고 여기는 사람이 여전히 많을 게다. 이해한다. 이미 지금 우리 사회는 공적인 사랑을 논하기에는 너무 척박해져 버렸으니까. 그런데 정직하게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자. 지금 우리, 사적인 관계에서만큼은 정말 진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 역시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언젠가 한 대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걔도 김치녀일지는 정말 몰랐어요’라며 얼마 전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김치녀’라는 말을 그때 처음 알았다. ‘김치녀’는 남자에게 데이트 비용이나 결혼 비용을 전적으로 전가하는 여자를 일컫는 신조어란다. 그 대학생은 그 뒤로도 ‘요즘에는 만날 만한 여자가 없다’는 넋두리를 한 참이나 늘어놓았다. 이별의 구체적인 이유인즉슨 일주일 동안 밥값이며 커피 값 같은 데이트 비용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느낀 답답함, 암담함, 절망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제 돈이라는 것 때문에 공적인 영역의 사랑뿐만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영역의 사랑마저도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상황이 내가 그 대학생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부부 관계 역시 이와 전혀 다르지 않다. 남자가 대기업에서 돈을 잘 벌고 있을 때는 둘 사이에 아무 문제가 없는, 아니 행복하기 그지없는 잉꼬부부가 있었다. 하지만 남자가 직장을 그만두고 돈을 잘 벌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 둘 사이에는 미묘한 기류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둘은 결국 이혼을 했다. 이혼의 이유에 대해 성격 차이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성격 차이 문제의 바닥에는 결국 또 돈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걸. 예전에 직장을 다닐 때 동료 중에 맞벌이를 하는 동료가 있었다. 그는 술자리에서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살림만 하니 은근히 보기가 싫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런 관계를 정말 사랑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만은 그 태생적 혈육의 정 때문에 사적인 영역의 사랑 중 가장 견고해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도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대학생 때 과외를 한 적이 있다. 아이의 아버지는 자식의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이의 교육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아이가 영화를 좋아하고 또 재능도 있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 쪽으로 공부를 시켜보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도 덧붙였다. 아버지는 돈이 많이 드는지를 물었고, ‘공대를 가는 것보다는 조금 더 많이 들 것 같다’고 답해주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럼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이유는 자신의 노후 자금에 지장을 주게 된다는 것이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사적인 관계에서도 사랑은 돈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는 것 같다.


돈 그리고 사랑

사랑이 무엇인가? 앞서 말했듯이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행복한 마음으로 기꺼이 가난해지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 우리네 모습은 어떤가? 가진 돈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연인과도 이별할 수 있고, 돈을 벌지 않은 배우자를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하며, 자신의 돈을 지키기 위해 자식에게조차 모든 것을 베풀지 않는 삶에 익숙해져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놈의 돈 때문에 공적인 영역의 사랑은 이미 도덕책에나 나오는 공허한 이야기로 전락하게 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이제는 그나마 남아 있었던 사적인 영역의 사랑마저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참담한 일이다.


 1년에 한 번씩 부모가 있는 고향 집에 간다. 그 때마다 아버지, 어머니가 참 외로워 보인다. 자식들을 함께 키우며 그 많은 힘든 시간을 함께 한 그네들에게 어떤 만족감이나 행복감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너무나 안쓰럽다. 같은 집에 있지만 서로 이야기를 하기는커녕 각자의 방에서 각자 TV를 보는 그 모습이 자식으로서는 그저 애처로워 보인다.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왔지만, 둘 모두 외로워 보이는 그 모습에서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이제 알 것도 같다. 그네들이 왜 그리 살 수밖에 없었는지를.


 그네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았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네들과 20년 넘게 같이 살았기에 이제는 알 것도 같다. 여자는 남자에게 오직 돈을 벌어오는 역할만을 요구했고, 그 남자는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했다. 그렇게 여자는 남자를 원망하고, 남자는 또 자신의 처지를 그리고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그 여자를 원망했을 테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에 대한 피해의식만 남긴 채 자식들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고 그저 몸만 함께 살았던 것이다. 나는 이제 안다. 이 모든 서글픔의 발단이 바로 돈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네들은 지금 얼마나 외로울까? 그건 자식인 나로서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이제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를 순진하다고 여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돈을 잘 버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것이고, 진정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어리석고 순진해 빠진 이야기라 치부하며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돈 없이 행복하기도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돈만 있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도 엄연한 삶의 진실이다. 삶의 행복은 사랑에 있고, 사랑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돈을 쫒으며 살아왔지만 결국 행복해지지 못했던 건, 돈으로 사랑마저 살 수 있다고 믿고 싶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돈이 사랑을 보장한다는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만약 돈이 사랑을 보장한다면, 돈의 액수에 따라 더 높은 수준의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돈이 많은 재벌이나 부자들은 항상 더 수준 높은 그러니까 더 행복할 수 있는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 아닌가? 하지만 돈으로 거짓 미소와 친절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사랑이 빠진 섹스를 살 수 있을지는 몰라도 돈으로 진정한 사랑을 살 수 없다는 것쯤은 이미 우리도 다 알고 있지 않은가.


돈을 벌고 싶은가? 사랑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엇보다 돈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돈을 벌고 싶은가? 그렇다면 사랑하라!” 정말이다. 돈을 벌고 싶다면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면 된다. 논리적이고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것이 궤변이라 말할 지도 모르겠다. 앞서 사랑은 자발적으로 가난해지는 것이라 말했으니까 말이다. 사랑하면 가난해지는 것인데, 사랑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적 모순이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가난해질 수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비단 돈이라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도 애초에 가진 아무 것도 없다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다. 그러니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돈을 벌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가난해지기 위해서 말이다. 가난해지려고 해도 뭐가 있어야 가난해질 것 아닌가?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할 때가 언제인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을 때 아닌가? 우리는 어쩌면 거꾸로 생각하는 것인지 모른다. 돈이 있어야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이것은 분명 거꾸로 생각하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누군가를 절절하게 사랑하게 될 때 돈마저 벌수 있게 된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때, 우리는 기꺼이 가난해지고 싶을 테니까.


 사랑하는 연인에게 스파게티를 사주고 싶을 때 알바라도 하려고 한다. 사랑하는 아내가 새벽에 우유배달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남편은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대리 운전을 불사할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이 멀찍이서 좋아하는 장난감을 한 동안 멍하니 보고만 있는 것을 발견할 때, 아들의 행복한 미소를 보기위해 고단한 몸을 일으켜 일터로 나갈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돈을 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돈을 벌 이유도 의욕도 없다. 사랑만이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다.


 겨우 자기 하나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을 벌어서 뭐할 텐가. 타인 중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고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는 그런 삶은 행복하지도 않고, 아무 의미도 없다. 외롭고 불행해질 때는 자신의 존재가 한 없이 가벼워질 때이다. 절대 잊지 말자! 우리의 존재가 한 없이 가벼워질 때는 바로 사랑할 사람도 사랑 받을 사람도 없을 때라는 사실을. 그러니 어느 유명한 소설 제목처럼 우리를 외롭고 불행하게 만드는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지 않으려면, 진정한 사랑을 하자! 진정을 사랑을 하게 되었을 때 돈마저 벌 수 있을 테다.

      

 아직은 공적 영역의 사랑이 너무 멀어 보일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 바로 우리 옆에 있는 사람부터 진정으로 사랑하자. 적어도 연인, 배우자, 자녀들과는 진짜 사랑을 하자. 조건 없이 주고, 한 없이 스스로 가난해지자.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그렇게 우리, 그놈의 자본주의가 그놈의 돈이 왜곡하고 쪼개 버린 그 소중한 사랑이라는 가치를 다시 복원하자. 나는 진정한 사랑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정서적인 부자는 물론이고 물리적인 부자까지 말이다. 순진해 빠진 놈이라 비난 받아도, 나는 사랑이라는 가치에 모든 것을 걸고 싶다. 삶에서 사랑하고, 사랑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고 소중한 일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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