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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없이 살면 안 되나요?

레비-스트로스 '브뢰콜레르'

‘계획’을 세우고 있나요?      

     

계획,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그 새로운 일이 중요한 일일 때는 더욱 그렇다. 학창 시절 방학·학습계획부터 나이가 들어 직장에서 가면 출장·업무계획을 세운다. 너무나 당연하게 해왔던 이 ‘계획’이란 것을 다시 묻자. 우리는 왜 계획을 세울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계획하느냐?’부터 물어야 한다. 학습계획을 세운다고 해보자. 먼저 노트, 책, 필기구 등을 준비하는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그 준비물들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 시간표를 계획한다.     


 이처럼 계획은 어떤 일을 진행하기 전에 준비하는 물질적인, 정신적인 것들이다. 이제 우리가 왜 계획을 세우는지에 대해 답할 수 있다. 키워드는 ‘효율’ ‘체계’ ‘성취’다. 우리가 계획을 세우는 이유는 분명하다. 계획을 세워야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고, 그때 더 탁월한 ‘성취’를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계획→체계·효율→성취’라는 도식을 믿기에 계획을 세운다. 이것이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계획을 세우는 이유다.  



허구적 도식, ‘계획→체계·효율→성취’    
   

‘계획→효율·체계→성취’라는 도식은 사실일까? 이 도식을 마치 진리라도 되는 냥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우리의 맹신과는 달리, ‘계획→효율·체계→성취’는 허구적 도식이다. 이것은 삶의 진실이 아니다. 계획은 돌발적인 변수가 상존하는 삶에 부딪혀 언제나 어그러지게 마련이다. ‘계획’이 어그러졌기에, 그 계획에 따랐던 ‘체계’도 어그러지게 마련이고, 더 이상 ‘효율’적인 일처리도 없다. 그러니 당연히 탁월한 ‘성취’도 어렵다. 이것이 삶의 진실이다.


 물론 그렇다고 계획이 전혀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그래서 불안한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알차고 훌륭한 계획은 우리에게 심리적 위안을 준다. ‘계획처럼만 하면 잘 될 거야!’라는 심리적 위안. 안타까운 것은 그 심리적 위안은 계획을 세울 때만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우발적인 변수가 엄존하는 삶에서 계획은 어그러지게 마련이고, 그때 그 심리적 위안은 오히려 더 큰 불안감이 된다. ‘계획이 어그러졌는데 이제 어쩌지?’라는 불안감.  


   

야생의 철학자, 레비-스트로스

따지듯 묻고 싶어 진다. ‘그럼 계획은 쓸모없는 거야?’ 조금 단정적으로 말해도 좋다면, 그렇다. 계획은 쓸모없다. 불안한 미래 때문에 언제나 계획을 세우며 안도하고 평안을 얻었던 우리였기에, 이제 절박하게 묻고 싶어 진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야?’ 그 답을 줄 철학자를 만나보자. ‘레비-스트로스’다. 그는 철학자인 동시에 문화인류학자이기도 하다. 레비-스트로스는 1930년 중반부터 아마존과 같은 오지를 탐험하며 그곳 원주민들의 삶을 관찰하며 문화인류학을 시작하게 된다.

      

 레비-스트로스는 오지를 탐험하며 원주민들의 삶을 관찰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통찰을 내어놓는데, 그것이 바로 그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야생의 사고’(La Pensée Sauvage)다. 이 ‘야생의 사고’가 어떤 것인지 설명하기 위해 「야생의 사고」에 등장하는 사례를 말해보자. 뉴기니에는 가후쿠-가마족이라는 원주민이 있다. 이곳에 유럽 문명이 유입되면서 가후쿠-가마족은 축구라는 스포츠를 배우게 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축구와 룰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공에 손을 안 되는 것 등 대부분의 룰은 우리가 알고 있는 축구의 룰과 같았다. 그렇다면 어떤 룰이 달랐을까? 세부적인 룰은 같았지만 놀랍게도 근본적 룰, 즉 모든 스포츠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승패를 가리는 룰은 지키지 않았다. 가후쿠-가마족으로 구성된 두 팀은 축구를 시작하면 무승부가 나올 때까지 시합을 했다고 한다. 심지어 무승부가 나지 않으면 며칠을 계속 경기를 했다고 한다. 레비-스트로스 바로 이런 원주민들의 사고방식을 ‘야생의 사고’라고 이름 붙였다.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

     

“야생의 사고는 야만인의 사고도 아니며 미개인이나 원시인의 사고도 아니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세련화되었다든가 길들여진 사고와는 다른, 길들여지지 않은 상태의 사고다.” 「야생의 사고」     


 문명화된 우리의 입장에서 가후쿠-가마족의 축구 시합 방식은 무식하고 황당해 보인다. ‘미개의 사고’처럼 보인다. 스포츠라는 것이 당연히 승패를 가려, 1등과 2등을 구별해야 한다고 믿는 우리에게는 분명 그렇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원주민들은 공동체 간에 차별성을 만드는 사고방식이 아니라 공동체 간에 동등한 대칭적 관계를 만듦으로써 공존의 세계를 구성하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바로 이런 원주민들의 사유를 ‘야생의 사유’라고 명명했다. 


 ‘미개의 사고’는 과학적이지도 않고 무식하고 황당해 보이지만, 레비-스트로스는 ‘미개의 사고’는 ‘문명의 사고’보다 결코 열등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명의 사고’와 ‘미개의 사고’를 구분 짓는 이분법을 거부했다. ‘미개의 사고’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미 갖고 있는 선험적 사고 구조라고 말하며, 그것을 ‘야생의 사고’라고 주장했다. ‘야생의 사고’는 원시인들만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도 공유하고 있는 근원적이고 무의식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래서 레비-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는 일관된 질서가 존재하는 ‘구체적인 것의 과학’이라고까지 표현했던 것이다.    


 

레비스트로스의 ‘브리콜뢰르’(bricoleur)

이제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계획은 ‘문명의 사고’다. 과학적인 문명의 사고. 하지만 '야생의 사고'의 관점에서 볼 때 계획은 계획은 의미 없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원시의 원주민들이 ‘한 달 뒤에는 멧돼지를 잡고, 2년 뒤에는 집을 짓고, 5년 뒤에는 가족을 꾸릴 계획’을 세우지는 않을 테니까. 계획 없이 불안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는 궁금증이 생긴다. “‘야생의 사고’를 하는 원주민들은 계획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궁금증.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레비-스트로스의 ‘브리콜뢰르’(bricoleur)라는 개념을 알아보자. 먼저 레비-스트로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브리콜레’(bricoler)라는 동사는 옛말로는 공놀이나 구슬놀이사냥승마술에 쓰였는데그 단어는 항상 공이 튕겨서 돌아온다든가개가 길을 잃는다든가말이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직선에서 벗어나는 등의 우발적인 움직임을 가리켰다오늘날 브리콜뢰르는 아무것이나 주어진 도구를 써서 자기 손으로 무엇을 만드는 사람을 장인에 대비해서 가리키는 말이다” 야생의 사고

     


 ‘브리콜뢰르’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한국어를 찾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손재주꾼’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는 무엇이든 손수 만드는 일에 능통한 ‘잡역부’ 같은 사람이지만, 그 만듦의 대상이 다양하기에 하나의 대상만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장인과는 구별된다. 레비-스트로스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자.  

   

손재주꾼은 여러 가지 일을 할 수가 있다그러나 그는 엔지니어와는 달라서 그 일의 목적에 맞게 고안되고 마련된 연장이나 재료가 있고 없고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그가 사용하는 재료의 세계는 한정되어 있어서 손쉽게 갖고 있는 것으로 하는 게 승부의 원칙이다말하자면 그가 갖고 있는 도구와 재료는 항상 얼마 안 되고 그나마 잡다한 것들이다왜냐하면 그저 주어진 것들의 내용은 현재의 계획이나 또 어떤 특정한 계획과 관련되어 구성된 것이 아니라 단지 우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야생의 사고     



계획 없이 사는 사람, ‘브리콜뢰르’

계획은 의미도 없고, 쓸모도 없다.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것처럼, “주어진 것들의 내용은 현재의 계획이나 또 어떤 특정한 계획과 관련되어 구성된 것이 아니라 단지 우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획을 ‘문명의 사고’라 여기기에 무계획적인 삶을 ‘미개의 사고’로 여긴다. 그래서 계획하지 않는 삶을 받아들일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계획을 통해, 효율과 체계를 확보하고 그로 인해 탁월한 성취를 낼 수 있다고 믿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여기서 이런 의구심이 들 수 있다. “정글에 사는 원시인들과 도시에 사는 우리는 다르잖아?” 원시인들은 지금 우리가 사는 환경과 다른 곳에서 살기에 계획 없이 살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레비-스트로스는 매우 흥미로운 사례를 하나 제시한다. 그는「야생의 사고」에서 도시에 살았던 우편배달부인 ‘슈발’이라는 사람을 언급한다.      



슈발은 45년간 우편배달을 하면서 재미있는 돌을 수집하여 중세의 성이나 스위스의 산장, 힌두교 사원 등 다양한 스타일을 융합하여 독특하고 환상적인 건축물을 완성했다. 슈발의 이 건축물은 ‘이상궁’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 ‘이상궁’은 초현실주의자들에게 큰 영감을 줄만큼 탁월한 예술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초현실주의자인 프랑스 시인 앙드레 브르통은 ‘우편배달부 슈발’이라는 시를 만들기도 했을 정도다. 현재 슈발의 ‘아방궁’은 프랑스 남동부의 오트리브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슈발이 바로 도시의 ‘브리콜뢰르’(손재주꾼)다.     


 슈발의 작업실을 생각해보자. 거기에는 계획이 없었을 테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재료와 연장이 널브러져 있었을 게다. 브리콜레뢰르인 슈발은 엔지니어가 아니다. 엔지니어는 미리 계획하고 그 계획에 따른 연장을 갖추고 작업을 시작하지만 브리콜뢰르는 그렇지 않다. 브리콜뢰르는 우발적이고 우연적으로 모인 잡다한 재료를 가지고 그것을 새롭게 조합한다. 마찬가지로 슈발은 주어진 조건 안에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질적인 것들을 뒤섞고 재배치함으로써 탁월한 작품인 ‘이상궁’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상궁’이라는 탁월한 ‘성취’에는 ‘계획’도 ‘효율’도 ‘체계’도 없다.

      


계획하지 말고, ‘야생의 사고’로 살자!
  

원시인들만 ‘야생의 사고’하는 것이 아니다. 슈발과 같은 브리콜뢰르 역시 ‘야생의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야생의 사고’는 계획하지 않는 삶이다. 어디로 편지를 배달해야 할지 모르기에 어떤 돌멩이를 주울지 결코 계획할 수 없었던 슈발처럼, 삶의 우발성과 우연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이다. 브리콜뢰르는 그런 ‘야생의 사고’를 받아들여 자신의 손으로 무엇인가를 닥치는 대로 만드는 사람이다. 의심을 거둘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상궁’은 타고난 사람의 예외적인 성취라고 믿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원주민들의 삶을 생각해보라. 건축학을 몰라도 멋진 집을 짓고, 의학을 몰라도 치료를 하지 않던가. 우리가 흔히 주술, 주문, 미신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정말 미개한 것일까? 원주민들은 예리하고 섬세한 감각으로 바다, 육지, 바람, 빛, 하늘의 색깔, 파도의 출렁임을 관찰하고 또 관찰했을 테다. 이를 통해 알아낸 구체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집을 짓고, 아픈 사람을 치료할 약초를 구했을 테다. 이것이 바로 레비-스트로스가 ‘미개의 사고’를 ‘구체적인 것의 과학’이라고 말한 이유였을 테다.    


 

 우리는 어쩌면 ‘문명의 사고’를 받아들이느라 태초에 있었던 ‘야생의 사고’를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야생의 사고’를 잃어버렸기에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우리네 삶을 구원할 ‘야생적 직관’마저도 잃어버리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엄존하는 삶의 우발성과 우연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낼 수 있는 힘마저 잃어버리게 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결코 계획대로 되지 않을 그 계획에 목을 매게 된 것은 아닐까?

     

 쓸모없는, 아니 우리네 삶을 더 큰 불안으로 몰아넣는 계획으로부터 벗어나 삶의 우발성과 우연성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야생의 사고로 살자!’ 이것이 내가 레비-스토로스를 통해 배운 삶의 지혜다. 야생의 사고로 산다는 것, 이것은 먼저 ‘야생의 사고’를 ‘문명의 사고’보다 열등한 것으로 규정짓는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야 가능하다. 그리고 오감과 직관을 믿고 온 몸을 통해 삶을 살아내려는 ‘브리콜뢰르’로 살려고 할 때 가능하다. 새해에는 계획 없이 사는 연습으로 시작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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