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박사가 되어가고 있나요?"
한참을 웃었다. 파키케팔로사우르스, 스테고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등등 공룡이름을 줄줄 외던 시간들이 생각나서. 고생물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한때 나는 공룡박사였다. 지금도 사정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공룡박사를 지나왔을 뿐, 시크릿쥬쥬, 에그엔젤코코밍, 신비아파트, 베이블레이드 논문을 준비중이니까.
그림을 보며 한 참을 웃다, 예전의 내가 생각났다. 골방에 앉아 홀로 철학을 공부하던 때. 나는 아이들을 사랑했던 만큼, 철학자들을 사랑했다. 아니 정직하게 말해, 아이들에게 의지했던 만큼, 철학자들에게 의지했다. 그들에게 의지하지 않았다면, 우울과 절망에 침잠된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을까? 나는 그렇게 철학을 공부했다.
나는 지식의 축적이 능동이라고 믿지 않는다. 능동적으로 축적된 지식은 언제나 조악하고 듬성하고 그래서 뭉퉁하다. 지식의 축적은 수동이다. 수동일 때만 짜임새있고 촘촘하며, 그래서 번뜩이며 날카롭다. 역설적이게도, '수동'적 지식의 축적은 '능동'적 지식의 축적보다 더 '능동'적이다.
왜 안 그럴까? 그를 너무 사랑하기에 그가 본 세상을 간절히 보고 싶다. 허리를 숙이거나 사다리에 올라서서라도. 사랑하는 아이가 본 세상을 보고싶어 허리를 숙이고, 사랑하는 철학자가 본 세상을 보고싶어 사다리에 올라섰다. 그 어느 것도 능동이 없없다. 하지 않을 수 없는, 수동뿐이었다. 능동보다 더 능동적인 수동.
내가 알고 있는, 잠재적 지혜로서의 지식 중 사랑을 통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내 삶을 지탱해준 지식 중 사랑을 관통하지 않고 알게 된 것은 없다. 알려고 하는 마음은 오만함이 아니다. 어리석음이다. 알려고 한다고 알아지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사랑하면 된다. 사랑하면 알게 된다. 그 사랑의 찌꺼기가 지식이다. 잠정적 지혜로서의 지식.
한해가 지나간 지금, 지쳐버린 나를 추스르고 있다. 그렇게 나는 힘을 내려 한다. 또 다시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의 찌꺼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 그 자체를 위해서. 그렇게 남겨진 찌꺼기로 나는 또 사랑하련다. 조금 더 성숙한 사랑을.
그렇게 남겨진 찌꺼기를 모으고 모아 철학'박사'가 되어갈 테다. 그리고 음악'박사', 영화'박사', 그림'박사'가 되어가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인간을 사랑하는 삶의 '박사'가 되고 싶다. 애틋하고, 애절한 마음으로, 공룡, 시크릿쥬쥬, 코코밍, 신비아파트, 베이블레이드'박사'가 되었듯이 말이다.
지금, 여기, 사랑하는 이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박사가 되어가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