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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아름다워지려는, 복서들에게

집필실과 체육관


집필실과 체육관. 어울리지 않은 두 공간이 내가 매일 머무는 곳이다. 나는 이 두 공간에서 내 정신과 육신을 돌본다. 집필실에서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정신과 영혼을 돌본다. 체육관에서 뛰고, 치고받으며, 땀을 흘리면서 육신을 돌본다. 정신을 돌보는 일도, 육신을 돌보는 일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언제나 사람이 있다. 육신을 돌보는 그 곳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언젠가는 그네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정리해서 전해주고 싶었다. 그네들은 육신을 돌보는 방법만큼, 정신과 영혼을 돌보는 방법은 잘 모르니까. 어쩌면, 그것은 어울리지 않은 공간을 넘나드는 사람에게 주어진 책무이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의 책무인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돌보는 일에 익숙한 이들에게 육신을 돌보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육신을 돌보는 일에 익숙한 이들에게 정신을 돌보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

      

 체육관에는 세 명의 프로 복서가 있다. 여자 복서 한 명과 남자 복서 둘. 다들 저마다의 사연들이 있다. '여자 복서'는 소설을 좋아하는,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다. 사랑받은 기억이 많지 않아서 사랑하는 법도, 사랑받는 법도 서툰 아이다. 하지만 상처 받았기에 누군가에게 상처주지 않을까를 늘 조심하는 아이다. 사랑하는, 사랑받는 법이 서툰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듯 이 아이도 때로 외롭고 때로 덮쳐오는 우울과 불안에 잠식당한다.



이 아이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남자 복서 1'은 말이 없는, 감성적인 아이다. 거친 운동을 하고 있지만 누구보다 섬세한 감성을 갖고 있다. 말이 없어서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고되고, 불안하고, 서글픈 삶을 꾹 참고 복싱을 하고 있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뿐이다. 간절히 이기도 싶어 했던 시합에서 앞니가 부러져 날아가 버렸다. 섬세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아는 나는, 앞니보다 마음이 더 다쳤을까 걱정했다.


    

 ‘남자 복서 2’는 삶이 자체가 복싱인, 마음이 약한 아이다. 중학생 때 시작한 복싱을 스물다섯까지 해오고 있으니, 삶의 절반이 복싱인 셈이다. 복싱을 한 세월만큼 실력도 좋다. 한국 챔피언이다. 돈도 안 되는 복싱에 삶을 걸었다. 그저 복싱이 좋아서. 하지만 여느, 20대가 그렇듯이 이 아이도 마음이 약한 탓에 때로 흔들리고, 고민도 많다. 대부분의 어른들처럼, 후회와 미련에 잠식당한 삶을 반복할까 걱정이 된다.

      


 나의 20대는 해야만 하는 일들 때문에 하고 싶은 일들을 놓쳐 버린 시기였다.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해보지 못한 것’들이 쌓여갔다. 나이가 들면 안다. ‘해본 것’보다 ‘해보지 못한 것’들 때문에 후회와 미련이 쌓인다는 걸. 또 그 쌓인 후회와 미련 때문에 삶이 엉망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서른일곱에 프로복서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삶이 더 이상 엉망이 되지 않길 바라는 절박한 외침이었으니까.     

 

  나는 이 셋이 좋다. 이 세 아이는 나와 다르다. 이 세 아이는 각자의 불안과 걱정, 아픔에도 불구하고 후회와 미련이 남지 않은 20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들며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알고 있다. 지금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게다. 자신의 20대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내가 놓쳤던 것들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이 아이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미련도 후회도 남기지 않고 싸워서, 더 근사하고 더 아름다워지길

     

‘살아낸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이들은 삶의 가능성을 품고 산다. 하지만 그 삶의 가능성은 항상 축복인 것은 아니다. 무한한 가능성만큼 아니, 무한히 가능하기에 불안한 것이 20대 아닌가. 이 아이들에게 고민과 불안, 방황이 왜 없겠는가? 복싱을 포기해야 하는 이유들이 하루에도 수 만 가지 떠오를 테다.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이 셋은 자신들에게 들이닥친, 삶을 ‘해보지 않고’ 도망치지는 않는다.

 


언젠가, ‘남자 복서 2’가 내게 말했다. “제가 복싱을 정말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네가 복싱을 정말 좋아하는지 아닌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복싱, 해라” 그 아이에게 돌린 답이다. 그냥 한 말도, 무책임한 말도 아니었다. 복싱이든 뭐든, 그것을 정말 좋아했는지 그것을 하고 있을 때는 잘 모른다. 시간이 지난 후에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때 나, 그거 참 좋아했었구나!”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삶은 그런 거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해보는’ 것이다. 자신에게 들이닥친 삶을 일단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후회와 미련을 남기지 않게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후회와 미련을 남기지 않고 ‘해보는’ 삶이 얼마나 근사하고 아름다운 삶인지 이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아니, 자신들이 얼마나 근사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어찌 이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매일 어제보다 더 근사하고 아름다워지려는 이 아이들을 말이다.


             

 '여자 복서'의 이름은 '신보미레'다. ‘남자 복서 1’의 이름은 ‘주민국’이다. ‘남자 복서 2’의 이름은 '이기수'다. 이 세 아이가 3월, 다시 미련도 후회도 없이 싸우러 나간다. 민국이는 3월 16일, 보미레와 기수는 3월 17일. 그날, 세 아이 모두 후회도 미련도 남기지 않고 싸웠으면 좋겠다. 그렇게 싸워서 더 근사하고 더 아름다워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 아이들이 내 나이가 되었을 때, “삶은 아름다운 거야!”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복서들, 아모르 파티!    

 

Amor Fati! 보미레, 민국, 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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