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억지 친구

“이제 선생님이 아니라 친구로 만나고 싶습니다.” 

    

나와 나이가 같은 분이 수업 이 끝나는 날 내게 했던 말이었다. 여기저기 수업을 다니며 표현은 다르지만 내용은 거의 같은 말들을 종종 들었다. 처음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내게 찾아든 감정은 민망함과 당황이었다. 성인이 되어 누군가에게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다들, 작은 고백이라도 받고 싶어 하지, 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 유약한 존재들 아닌가. 


 그래서 민망했다. 내가 작은 하지만 어려운 고백을 받을 만한 사람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콤플렉스 투성이였던 내게 누군가 ‘너 좋아해’라고 말해주었을 때 느꼈던 황송함, 민망함 같은 감정이 들었다. 동시에 당황의 감정도 찾아왔다. 그 당황의 감정은, 나는 그와 친구와 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발생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친구가 되고 싶다’는 그의 고백에, 민망함과 당황으로 ‘좋은 관계로 지내요’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그 뒤로 그는 밥을 먹자고, 술을 마시자고 종종 연락이 왔다. 그와 사적으로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관심도 없었고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말했다. “나는 00씨와 친구를 하고 싶지 않아요.” 그는 잠시 당황한 듯싶더니, “네가 그렇게 대단한 인간이야! 백수 새끼 주제에”라며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를 싫어하지 않았다. 그저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만나서 할 이야기도, 하고 싶은 이야기도 없었다. 


 원치 않는 상처를 주는 것은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원치 않는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일은 무례한 일이다.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사람의 고백을 거절하는 것은 미안하다. 어쨌거나 고백은 힘든 일이고, 그는 그 힘든 일을 감당하면서까지 좋은 친구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니까. 수없이 고백을 해본 나로서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기에 미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그 미안함 때문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이와 억지(거짓) 친구가 되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나는 그와 함께 있을 때 심드렁해지고 지치고 짜증이 날 테니까. 그건 어려운 고백을 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진심으로 다가온 사람에게 거짓으로 대하는 것. 그것보다 무례한 일도 없다. 무례한 것보다 차라리 미안한 것이 낫다. 그것이 크게 대단치도 않은 사람에게 어려운 고백을 했던 사람들에 대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배려인 까닭이다.      


 그리고 미안함을 느낄 때마다 안타깝다. 서로 인연이 닿지 않았음이 안타깝다. 조금 더 빨리, 혹은 조금 더 늦게 만났으면,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그 미안함이 어찌 안타깝지 않을 수 있을까. 각자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잘 살아내어, 그들에게 인연이 닿는 좋은 친구가 나타나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다. 나 역시 그렇게 좋은 친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사물과의 작별」조해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