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일을 하는 걸까?
“지금 하는 일이 좋으세요?”
직장, 일 혹은 밥벌이에 관한 강연을 많이 하는 편이다. 강연 때마다 사람들에게 묻는 질문이다. 대답은 대체로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반응은 ‘일이 그냥 일이지 뭐, 그냥 하는 거지’라는 반응이다. 그런 의미 없는 질문은 왜 하느냐는 뉘앙스의 대답이다. 두 번째 반응은 ‘나름 괜찮아요.’라는 반응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어느 정도 만족하는 대답이다. 그리고 세 번째 반응은 ‘돈만 많으며 이 꼴 저 꼴 안 보고 때려치우고 싶어요.’라는 반응이다. 지금 하는 일을 꽤나 싫어하는 사람들의 반응이다.
이제 질문을 하나 해보자. 우리는 왜 일을 할까? 사실 대답은 간명하다. ‘돈을 벌려고’ 지금 시대에 일이란 것은 돈을 버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이자, 일을 대하는 태도다. ‘지금 하는 일이 좋으세요?’라는 질문의 세 가지 반응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첫 번째 반응은 결국 일은 돈 벌려고 하는 것이 당연하데, 거기에 ‘좋고 싫고’가 어디 있냐는 것이다. 돈이라는 것에 찌들어 있는 사람인 셈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 의미 있는 일 같은 것은 이런 부류에게는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닌 게다.
두 번째 부류는 어떨까? ‘나름 괜찮다’고 말하는 부류와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면 그 만족의 진의는 이런 것이었다. 지금 하는 일이 딱히 좋지 않고 또 업무량도 많긴 하지만 그만큼 돈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아니면 돈은 그다지 많이 받고 있지 않지만 그만큼 일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이 부류도 결국은 일에 관해서 돈이 항상 중심에 있다. 결국 지금 버는 돈보다 적은 돈을 벌게 되면 자신의 일에 결코 만족하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세 번째 부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일과 직장에 완전히 질려 버린 사람조차 그 일을 떠날 수 없는 것도 돈 때문이다. 그러니 일을 하면서 늘 중얼거리는 이야기가 ‘이놈의 직장 돈만 많으면 당장 때려치운다’인 게다. 세 부류가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같은 부류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세 부류만 그럴까. 결국 우리네 주위 사람들 중 대다수는 ‘일=돈’이라는 공식에 빠져 살아가고 있다. 일과 돈에 관한 철학을 논하는 출발점은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 우리 시대의 일은 오직 돈을 벌기 위한 행위라는 말이다.
사실일까? 일은 정말 오직 돈을 벌기 위한 행위일까? 세상 사람들의 믿음처럼, 돈벌이가 안 되는 일련의 활동은 일이 아닌 걸까? 일이 돈과 결부될 수밖에 없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그것도 ‘돈이 뭐든 다 돼!’라고 말하는 천박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돈벌이가 안 되는 일을 해서는 기본적인 생계조차 유지할 수가 없다. 그러니 어찌 일이 돈과 결부되지 않을 수 있을까? 서글프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고, 한국은 그런 곳이다.
그렇다면 ‘일은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거야!’ 혹은 ‘돈벌이가 안 되는 건 일이 아니야!’라는 이야기를 믿으며 살아가야 할까? 아니다. ‘일=돈’이라는 도식을 믿게 되면, 일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일을 대할 때, 일을 철저하게 부정하게 된다. 참 불행한 일이다. 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다른 만족감을 일거에 제거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일=돈’이라는 믿음 때문에 일은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고 싶은 어떤 행위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루 중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 일을 한다. 그런데 그 일을 부정한다면, 그건 곧 자신의 삶을 부정하게 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게다. 시간의 합이 바로 삶이니까.
굳이 도식을 사용하자면, ‘일=돈’이 아니라 ‘일=생산적 활동’이다. 모든 생산적 활동은 일이다. 그 생산적 활동의 결과물 혹은 부산물로 돈을 벌게 되는 것일 뿐이다. 일을 부정하고, 일은 가급적 안 하고 싶은 활동이 되는 이유는, 생산적 활동의 결과물, 부산물이 오로지 돈이라고 생각하게 될 때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일은 부정의 대상이 아니다. 일보다 소중한 것도 없다. ‘일은 자아실현의 장’이라는 이야기는 너무 거창하고 또 너무 식상하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자신을 표현하고 또 때로는 일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분명한 사실이다.
오직 돈을 벌 수 있는 일만이 일인 것은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산적 활동 모두가 일이다. 나는 몇 명의 사람들과 팟캐스트 방송을 하고 있다. 내게 이건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의 양이 만만치가 않다. 게스트 섭외하고, 대본 쓰고, 녹음 장비 세팅 등 해야 하는 일이 적지 않다. 그 일은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분명 생산적 활동을 하는 일이다. 돈이 일의 부산물인 경우도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글쟁이다. 글을 쓰고 출간을 해서 인세를 받는다. 그렇게 돈을 번다. 하지만 오직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쓴 적인 단 한 번도 없다. 돈은 글을 쓰는 생산적 활동의 부산물이다.
나는 왜 글을 쓰고, 방송을 만드는 일을 하는 걸까? 돈을 많이 벌려고? 아니면 지금 내가 충분히 돈이 많아서? 아니다. 글을 쓸 때 행복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자신과 대화하고, 자신의 사유 한계를 확장해나가는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것보다 즐겁고 황홀한 경험도 없다. 그런 즐거움, 황홀함, 행복함이 일의 결과물이고, 돈은 부산물인 셈이다. 나는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돈을 벌어서라도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다. 글쓰기는 내게 그런 생산적 활동이다. 방송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돈이 벌리지도 않지만 벌고 싶은 생각도 없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 자체가 즐겁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돈을 벌고 돈을 쓰는 삶 이외의 공간을 없애버렸다. 이제 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즐거움은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누릴 수 있는 ‘소비의 즐거움’ 밖에 없다. 일을 하고 돈을 벌고, 다시 돈을 쓰는 삶 이외에 우리에게 어떤 삶의 공간이 존재할까? 잘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는 어떤 생산적 활동 그 자체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잊어버렸다. 내가 글쟁이가 되겠다고 했을 때, 돈 안 되는 팟캐스트를 하겠다고 했을 때, 세상 사람들의 “쓸데없는 짓을 왜 해? 그거 하면 쌀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는 타박도 이해가 된다.
자본주의가 협소하게 만들어 버린 일의 개념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일의 개념을 확장하는 만큼 우리 삶이 풍성해질 게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돈이 되는 일만이 일인 것은 아니다. 돈을 버는 것이 일을 하는 유일한 목적이 되었을 때, 우리네 삶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돈이 되는 일 이외의 모든 일에 무관심해지거나 냉담해질 테니까. 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지금 하는 일을 지긋지긋해하면서도, 지금 하는 일이 이외에 다른 어떠한 일에도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모습, 이것이 지금 일을 대하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많은 직장인들은 원치 않는 해고를, 원치 않는 시점에 당하게 된다. 그때 그들은 당황하고 절망한다. 그들과 깊은 이야기를 해보면 알게 된다. 그네들이 당황하고 절망하는 이유는 더 이상 돈을 더 벌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걸. 그들은 이제 자신이 할 일은 어디에도 없다는 좌절감, 절망감 때문에 당황하고 절망한다. ‘이제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하고 쓸모없는 인간이야’라고 느끼기에 절망하게 되는 것이다. 조금 야박하게 말하자면, 그 절망감은 정확히 돈이 되는 일 이외의 모든 일은 모두 가치 없고 의미 없는 일이라고 여기며 일을 부정했던 대가인 셈이다.
돈은 안 되지만 소중한 일은 많다. 아주 많다. 뒷마당에 상추를 기르는 것, 사랑하는 남편 혹은 아내를 위해 정성스러운 안마를 해주는 것, 가족들을 위해 대청소를 하는 것, 봉사활동을 하는 것, 짧은 글을 하나 쓰는 것,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일이다. 그리고 이런 생산적 활동들은 돈을 버는 일보다 더 소중했으면 소중했지, 결코 덜 소중하지는 않을 것이다. 돈이 목적인 아닌, 소중하고 의미 있고 즐거운 일들을 하나씩 발견해 가는 과정은 중요하다. 그런 일을 발견하는 만큼 우리네 삶은 밝고 경쾌해질 테니까. 그러기 위해 일을 하는 유일한 목적이 오직 돈이라는 오래된 고정관념부터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