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좋은 것일까요?"

스피노자의 '희망'과 '공포'

‘희망을 가져’라는 말

“희망을 가져!” 삶의 고난에 부딪혔을 때 만나게 되는 말이다. 고난에 빠진 누군가에게 해주는 위로의 말일 때도 있고, 고난에 빠진 자신에게 하는 격려의 말일 때도 있다. 누구나 고난에 처할 때가 있다.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를 받고,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고, 사고를 당해 몸이 다치게 될 때가 있다. 이런 고난들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고난은 보편적이다. 그래서 이별, 해고, 사고 같은 고난 그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고난의 수렁에 빠졌을 때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만 부정적인 면을 보게 되고, 그래서 상황이 더 나빠질 것 같은 미래를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다시 사랑은 찾아오지 않을 것 같고, 이제 다른 직장은 구할 수 없을 것 같고, 몸을 다쳤으니 이제 뭘 해도 잘 안될 것 같다. 그래서 이제 삶이 더 나빠지기만 할 것 같다. 이런 부정적 인식과 전망이 고난의 진짜 문제다. 그래서 고난에 빠졌을 때 희망을 가지라는 말은 꽤나 도움이 된다.

희망이 무엇인가? 그것은 어두운 면보다는 밝은 면을 보면서 더 나은 미래를 그려나가는 일 아닌가.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고난이 남기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희망을 가지면 고난 뒤에 찾아오는 부정적 인식과 전망에 잠식당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세상 사람들이 희망의 중요성에 대해 결코 의심하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세상 사람들은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해” “희망을 가져야 해!”라고 쉴 새 없이 희망을 찬양한다.

그런데 정말 희망이 그렇게 중요하고 좋은 것일까? 그 희망이라는 것을 통해 우리네 삶이 더 기쁘고 유쾌해질 수 있는 것일까? 놀랍게도, 희망은 때로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 가득한 삶으로 우리를 몰아간다. 희망을 가지고 삶을 살아낸 사람들은 이 삶의 진실을 알고 있다. 세상 사람들의 견고한 믿음을 의심해볼 시간이다. “희망은 정말 좋은 것일까요?”

스피노자의 ‘희망’

먼저, 스피노자는 희망을 어떻게 정의했는지부터 알아보자.

희망이란 우리가 그 결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의심하고 있는 미래 또는 과거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불확실한 기쁨이다. (에티카, 제 3부, 감정의 정의)

스피노자에게 희망은 ‘기쁨’이다. 스피노자에게 ‘기쁨’이 무엇인가? “인간이 보다 작은 완전성에서 보다 큰 완전성으로 이해하는 것” 아닌가. 즉, 기쁨은 우리에게 삶의 활력을 주는 감정이다. 희망은 기쁨이기에 우리에게 삶의 활력을 준다. 이것이 고난에 처했을 때 희망이라는 감정이 유용한 이유다. 나는 훌륭한 작가가 되기를 희망했다. 고난이 닥쳐올 때 그 희망을 더 강하게 부여잡았다.

생계의 위협이 닥쳐올 때,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그래서 나 자신이 사회적 낙오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 더 간절하게 희망했다. ‘나는 언젠가 훌륭한 작가가 될 거야!’ 그 희망은 기쁨이 되어 삶의 활력을 가져다주었다. 닥쳐온 고난들에 잠식당하지 않고 겨우겨우 글쟁이로서의 삶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그 희망 덕분이었다. 희망은 그렇게나 희망적이다.

하지만 희망은 독특한 기쁨이다. 희망은 분명 기쁨이지만 불확실한 기쁨인 까닭이다. 스피노자는 희망을 “그 결과에 대해 어느 정도 의심하고 있는 미래 또는 과거의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불확실한 기쁨”이라고 했다. 다시 나의 희망으로 이야기해보자. ‘훌륭한 작가가 될 거야’라는 희망. 여기서 ‘훌륭한 작가’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그 결과(훌륭한 작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즉 불확실하다.

희망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기쁨이기에 어느 정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희망이 주는 기쁨은 언제나 불확실한 기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언젠가 훌륭한 작가가 될 거야’라고 간절히 희망하지만 그것은 그 ‘언젠가’가 도래해야지만 알 수 있는 일이다. 불확실하다는 것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의미다. 스피노자는 그 다른 가능성에 대해 ‘공포’(두려움)라는 감정으로 설명한다.

‘희망’과 ‘공포’, ‘안도’와 ‘절망’ 사이

“공포란 우리가 그 결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의심하고 있는 미래 또는 과거의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불확실한 슬픔이다.” (에티카, 제 3부, 감정의 정의)

공포는 희망의 짝 감정이다. 희망이 불확실한 기쁨이라면, 공포는 불확실한 슬픔이다. 공포는 일단 슬픔이다. “인간이 보다 큰 완전성에서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하게” 되어서 삶의 활력을 작아지게 하는 슬픔. 하지만 이는 희망과 마찬가지로 불확실하다. 공포라는 감정은 ‘귀신의 집’을 생각하면 된다. 귀신의 집은 공포스럽다. 귀신들이 확실하게 나타나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귀신이 튀어나오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의심하고 있기에 공포스러운 것이다. 그 불확실함이 주는 슬픔이 공포라는 감정이다. 스피노자는 이 희망과 공포라는 감정을 설명하면서 ‘안도’와 ‘절망’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만일 이들 감정(희망과 공포)에 수반된 의심이 제거되면 희망은 안도가 되고, 공포는 절망이 된다. 즉, 그것은 우리가 희망했거나 두려워했던 사물의 심상으로부터 생기는 기쁨 또는 슬픔이다.” (에티카, 제 3부, 정리 18, 주석 2)

‘희망-공포’가 짝을 이루는 감정이라면 ‘안도-절망’이 짝을 이루는 감정이다. 동시에 ‘희망-안도’는 서로 연결된 감정이고, ‘공포-절망’도 서로 연결된 감정이다. 희망은 의심이 남아 있기에 불확실한 기쁨이다. 거기에 의심이 제거되면 안도(안심)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공포는 의심이 남아 있기에 불확실한 슬픔이다. 거기에 의심이 제거되면 절망하게 된다. ‘이번에는 승진이 될 거야’는 희망이다. 그 ‘희망’은 불확실하다. 하지만 승진자 발표가 나서 의심이 제거되면 ‘안도’하게 된다. ‘암이면 어쩌지’는 공포다. 그 ‘공포’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검진결과가 나와서 의심이 제거되면 ‘절망’하게 된다. 달리 말해, '희망'과 '공포'라는 감정이 '안도'와 '절망'을 만들어낸다.

공포 없는 희망은 없고, 희망 없는 공포도 없다.

공포 없는 희망은 없으며, 희망 없는 공포도 없다. (에티카, 제 3부, 정리 50, 주석)

스피노자는 이 희망과 공포가 동전의 앞뒤처럼 늘 붙어 있다고 말한다. 이제 희망이 왜 문제가 되는지 알 것도 같다. 희망과 공포는 붙어 있기에 더 많이 희망하면 할수록 더 많은 공포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언젠가 훌륭한 작가될 거야’라고 끊임없이 희망했다. 그 희망조차 없으면 닥쳐온 불안하고 걱정되는 삶을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도’가 되지 못한 그 ‘희망’은 언제나 불확실했고, 그 불확실한 자리에 조금씩 ‘공포’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훌륭한 작가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키우면 키울수록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없을지도 몰라’라는 공포 역시 점점 커져갔다.

스피노자의 말은 옳았다. 공포 없는 희망은 없으며, 희망 없는 공포도 없다. 희망 때문에 공포에 휩싸이고, 공포 때문에 희망을 갖게 된다. 이것이 야박한 삶의 진실이다. 그래서 과도한 희망은 결국 공포에 휩싸인 삶으로 우리를 내몬다. 그것이 내가 한동안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했던 이유다. “훌륭한 작가가 될 거야”라는 희망이 과도해졌을 때 과도한 공포에 잠식 당해버렸다. “결국 훌륭한 작가가 되지 못할 것 같아”라는 공포.

희망은 좋은 것이 아니다. 희망에 집착해본 적 있는 사람은 다 안다. 이별, 해고, 사고를 당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희망’으로 그것을 돌파하려 해서는 안 된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거야’ ‘다시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거야’ ‘다시 건강해질 수 있을 거야’ 이런 희망은 ‘다시 사랑할 수 없을지도 몰라’ ‘다시 직장을 구할 수 없을지 몰라’ ‘다시 건강해질 수 없을지도 몰라’라는 공포가 된다. 희망은 불확실한 기쁨이기에 결국 불확실한 슬픔인 공포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희망은 불확실하기에 반드시 공포로 되돌아온다.

희망 없이 삶을 살아내는 법

이제 삶은 더욱 암담해진다. 삶은 고난의 연속 아닌가. 이런 고된 삶에서 희망마저 없다면 우리는 어찌 살아야 한단 말인가. 희망이 낳은 공포로 글 한 줄 쓰지 못할 때 알게 되었다. 희망은 전혀 희망적인 것이 아님을. 공포를 감당할 수 없어 더 이상 희망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또 이렇게 긴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다시 희망을 부여잡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희망을 놓아버린 후 나는 어떻게 다시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희망을 놓아버린 어느 날, ‘발터 벤야민’이라는 철학자의 글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어떤 사람을 아는 사람은 희망 없이 그를 사랑하는 사람뿐이다.” 「일방통행로」

우리는 친구도, 연인도, 부모도 모른다. 그 사람들을 희망 없이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네들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반드시 어떤 희망과 함께 이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내 삶에 도움이 될 거야’를 희망한다.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할 거야’를 희망한다. ‘부모님은 항상 나를 사랑해줄 거야’를 희망한다. 그 희망으로 그네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네들을 모른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나와 결혼을 할, 나를 사랑해줄 그네들의 모습만을 알 뿐, 우리는 그네들을 모른다. 한 사람을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아무런 희망 없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언젠가 읽었던 벤야민의 이 말이 ‘훌륭한 작가’라는 희망을 놓아버린 내겐 조금 다르게 들렸다.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희망 없이 글 쓰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뿐이다.” 나는 희망 없이 글을 써본 적이 없었다.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유명해지고 싶다는 희망을 내려놓았을 뿐, ‘더 나은 작가가 될 수 있다’는 희망만은 항상 놓지 못한 채 글을 썼다. 삶이 나를 짓누를 때 그 희망으로 글쟁이의 삶을 버텨내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는 것이 진정으로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 때문에 글을 쓸 수 없었다. 삶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 무엇인지 모르는 것들은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니까. 나는 이제 희망 없이 사는 법에 대해 조금 알겠다.

'희망 없이 사랑하는' 삶

‘희망 없는 삶’ 그 자체로는 희망 없는 삶을 버틸 수 없다. ‘희망 없이 어떤 것을 사랑하는 삶’이어야 한다. 그때 희망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이 내가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된 이유였다. 나는 더 이상 희망에 가득차서 글을 써내려가지 않는다. 이제 내게 ‘더 나은 작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은 없다. 그런 것을 희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두렵지도 않다. 아무 것도 쓰지 못하는 텅 빈 시간 속에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글을 쓰지 않을 것인가? 훌륭한 작가 되지 못하면 글을 쓰지 않을 것인가? 답은 쉬웠다. 그래도 쓰고 싶다. 나는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희망 없이 글 쓰는 것을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다른 이들 역시 희망 없이 사는 연습을 했으면 좋겠다. 희망을 껴안고 사는 것은 얼마나 우울한 삶인가. 더 많이 ‘희망’하는 삶은 더 많은 ‘공포’에 내몰리는 삶이고, 이는 결국 ‘안도’와 ‘절망’을 반복하는 삶일 뿐이니까 말이다. 이런 번민을 벗어나지 못하는 삶보다 우울한 삶도 없을 테다. 우리에게 닥쳐온 고난도 희망 없이 사랑하는 것으로 극복해나갔으면 좋겠다. 이별, 해고, 사고를 당했을 때, 희망 그 자체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희망 없이 어떤 것을 사랑하는 삶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다 잘 될 거야!’라는 억지스러운 희망 대신, ‘잘 되지 않더라도, 내 삶을 사랑할 거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라는 희망 대신, ‘이제 아무 희망 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거야’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직장을 가질 수 있을 거야’라는 희망 대신 ‘이제 아무 희망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일을 할 거야’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면 항상 상처받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우울하고 슬픈 삶이 펼쳐질 것 같다. 하지만 삶의 진실은 그렇지 않다. 그때 진정으로 기쁘고 유쾌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행복한 삶은 동서고금을 막론해 하나다. 지금을 사는 것.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을 사는 것. 하지만 우리는 항상 과거와 미래에 매여 있지 않은가. 그래서 지금을 살 수 없다. 바로 여기에 희망 없는 삶을 고민해보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지금을 사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희망 없는 삶, 정확히는 희망 없이 어떤 것을 사랑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희망 없이 어떤 사람을, 어떤 일을 사랑할 때, 우리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지금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것이 희망 없는 삶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지금'을 살아야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