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증된 사랑이 있다. 커플티, 커플링, 결혼식. 이런 확증된 사랑은 견고한 밧줄로 연결된 사랑이다. 이런 확증된 사랑의 기원은 불안이다. 사랑이 끝나버릴 것 같은 불안. 나만 혼자 남겨질 것 같은 불안. 이런 불안을 견딜 수 없기에 서둘러 견고한 밧줄로 서로를 연결시킨다. 서로를 믿기에 커플링을 맞추고 결혼식을 올린다고 말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로를 믿지 못하기에 발생한 불안을 서둘러 봉합하기 위해서 밧줄로 서로를 묶어 버리는 것이다.
확증된 사랑의 역설이 있다. 서로를 너무 사랑해서 그 사랑을 더 오래 이어나가고 싶어서 사랑을 확증하려 한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사랑은 끝이 난다. 단단한 밧줄로 엮인 관계는 사랑이 아니다. 아니 단단한 밧줄로 엮이면서 사랑은 점차 시들어간다. 서로가 묶이지 않고도 서로가 서로를 찾을 때 그 관계가 바로 사랑이다. 하지만 견고하게 묶이면 서로가 서로의 옆에 있는 이유가 사랑인지 의무인지 알 길이 없다. 그렇게 사랑의 확증은 사랑을 교살한다.
사랑의 본질은 모호함이다. 아무것도 확증되지 않는, 모호한 관계만이 진정한 사랑이다. 사랑은 견고한 밧줄로 엮인 관계가 아니다. 그렇다고 저 멀리 떨어져 서로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는 관계도 아니다. 사랑은 자석처럼 붙어 있는 관계다. 연결된 것이 아무 것도 없기에 어디서 어떻게 끌어당기고 있는지 모르는 모호한 관계. 하지만 이 모호한 관계가 밧줄로 연결된 사랑보다 더 오래 지속된다.
확증된 관계는 서로를 의심하기에 늘 불안하다. 그것이 서둘러 밧줄로 연결한 이유 아니었던가. 하지만 N극과 S극은 서로를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서로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를 간절히 끌어당기고 있음을. 그래서 서로의 자기장 밖으로 결코 벗어나지 않을 것임을. 사랑을 사랑인체로 아름답게 유지시키는 것은 견고한 밧줄이 아니다. N극 S극 사이의 그 모호한 공간이다.
사랑과 마주쳤을 때 불안을 감당하지 못해서 너무 빨리 사랑을 확증 받으려는 것은 우리의 오래된 습관 아니던가. 사랑을 사랑인체로 지속하고 싶다면 연습이 필요하다. 견고한 밧줄을 풀어버리는 연습. 모호한 공간을 받아들이는 연습. 오직 그 모호한 공간에서만 사랑은 더 아름답게 지속된다. 아무 것도 확증되지 않은, 모호한 관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아름다운 사랑을 지속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