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같았던 직장이 지옥이 될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렇게 빨리 자유인이라는게 될 줄 몰랐다. “직장인이 아니어도 이렇게 살 수 있구나” 철학흥신소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며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소위 (직장을 다니지 않는) 자유인의 생활에 대한 ‘이해’, ‘인정’, ‘존중’, ‘끄덕임’ 같은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일 뿐이었다. "그럼 나도 그럼 이렇게 살아봐야지! 헤헷" 이런 헛스런 결심을 말한 것은 아니었다.
회사에 있는 친구들 (팀장을 비롯한 팀원, 유관부서 사람들)에게도 말했었다. '혹시나 퇴사를 하게된다면 하고싶은일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볼거야'라고. 뭔가 아는듯 일종의 자만심 같은 마음이었던것 같다. 나는 굳이 회사일에 목매서 살지는 않을거고, 내가 지금 직장이라는 곳에 있는 이유는 그냥 ‘일이 재밌어서, 함께 무언갈 만들어내고 인정받는 과정이 신이나서’일뿐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랬다. 내가 다닌 회사(이하, 회사명은 '표괴물'이라고 하겠다)는 직장인들의 천국같은 곳이었다. 세번이나 이직한 끝에 찾은 '표괴물'은 나에게는 정말 그랬다. 나이, 직급은 상관없이 일할 수 있었다. 본인이 팀장이 되고 싶으면 팀장이되어 팀을 이끌었다.(물론 그에맞는 역량이 있어야했다.) ‘기업문화실’이라는 곳이 있었고 이 안에서는 매번 ‘신의직장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직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복지를 고민했다.
대표도, 팀장도 나보다 어린친구였지만 합리적인 결정을 하고 피드백도 자유로웠다.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즐겼으며, 그 안에서 좋은 대안을 찾아내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표괴물' 창립자는 '기업의 문화만큼은 훼손되면 안된다.'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천국같은 직장 분위기가 조직 어디에서나 베어나왔다. 바쁜 시기엔 자진하여 야근을 하긴했으나, 대부분 장미칼퇴근이었다. '에너지데이'라는 이름이 붙는 회사창립일 행사는 1박2일로 전직원이 놀러가곤했다. '에너지데이'에는 직원들의 고퀄장기자랑, 연예인이 출연하여 흥을 돋구기도 했다. 조직 분위기와 문화는 우리에게 굉장히 소중한 자산이었다.
천국을 지옥으로 바꾼, 나비효과
옆집(경쟁사를 일컫는다. 실제로 위치도 가까움)이 치고 올라왔다. 우리가 경쟁사라고 여기지도 않았던 회사였는데 갑자기 우리 매출을 뛰어넘었다. 거기에 부사장으로 영입된 한사람 때문이라고 했다. 소문에 의하면 목표를 말도 안되게 주고,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퇴근을 못한다고 했다. 심지어 성과가 별로인 직원이 있을 경우 굴욕적인 상황을 연출하여 어떻게든 사표를 쓰게 한다고 했다. 사전에 예고 없이 말도안되는 팀에 배치를 시킨다던지, 팀장 이상일 경우 경질되었다. 그대신 성과에 대한 포상은 엄청나다고 했다. 홍보팀을 이용해 성과에 대한 부분을 대대적으로 기사화했다.
당시 우르르 옆집 직원들이 퇴사하는걸 보면서 우린 혀를 끌끌찼다. ‘저게 얼마나 가겠어 훗.’ 실제로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았다.(2년이 안갔다) 옆집은 창업주의 힘이 막강했다. (돈이 엄청 많았다. 투자자들에게 휘둘릴필요가 없었다.) 그 창업주의 라인들과 독고다이 부사장과의 사이가 안 좋았었던것 같다. 어느날 술자리에서 주먹질이 이어졌고, 이후 그 부사장이라는 사람이 퇴사했다. 그 일이 우리 회사에 어떤 불행을 가지고 올지 그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나비효과처럼 우리회사로 이어졌다.
'표괴물'의 실적을 못마땅해했던 투자자들은 그를 영입하고자 했다. 내부적인 갈등이 있었지만, 결국은 그 결정은 현실이 되었다. 부사장으로 임명되어 영업조직을 관리하게 되었고, 이하 위와 같은 상황들이 '표괴물'에도 이어졌다. 지난 18년 10월 입사하여 이후 올해 6월까지 부사장이 컨트롤하고 있는 영업조직은 빠른속도로 물갈이되었다. 누군가의 퇴사를 그 부사장은 전혀 두려워하지않았다. 부품이기 때문에 다시 채워넣으면 된다는 소신(?)이 있었다.
'표괴물'의 일제시대와 창씨개명
부사장은 회사의 모든 것을 바꾸려 했다. 회사 카페에 히히덕거리는 모습이 맘에 안들어 오전에 강제 미팅을 하게 했다. 카톡방을 수십개 만들어 셀카를 찍어 보고하도록 했다. 회사의 마스코트가 마음에 안든다며 파비콘(어플의 아이콘)을 변경했다. 우리만의 글씨체를 못쓰게했고, 명함디자인과 pc화면보호기 디자인을 변경했고, 이메일 footer도 변경했다. 자유로운 복장이 마음에 들지않는다며 남자분들이 반바지를 못입게 했고, 본인에게 보고할때 슬리퍼를 신지 말라고 했다.
그는 카톡으로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고, 팀장이상 직급들은 밤이고 새벽이고 업무시간은 사라졌다. 특히 카톡 프로필사진은 회사 행사 기획전 디자인으로 변경해야했다. 전부 카톡프로필이 동일하다보니 대화가 자문자답하는 꼴처럼 보여 너무 우스워보였다. 우린 그 상황을 '일제시대'라고 말하며 조선독립은 언제 이루어지냐고 자조했다. 카톡프사를 바꾼 사람에게 창씨개명을 했다며 매국노라 칭하여 조롱했다. 프사를 바꾼 팀장들은 우리 조직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말했고, 우리는 그들을 연민했다.
그리고 이사람은 6월 초, 결국 '표괴물'의 대표가 되었다. 이전 대표가 괜찮다고 말했던 사람들을 그 라인으로 간주하여 망신을 주기 시작했다. 그 동시에 '표괴물'의 상징과 같았던 기업문화실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6월말까지 한달이채 되기도 전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퇴사했다. (혼또니 월급쟁이의 자유인 도전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 철학흥신소 비밀 요원.
- 철학흥신소 대표 눈물 생성기(자기 혼자 이야기하다가 울음, 한이 많은 가봄)
- 어린 시절 꿈이 월급쟁이임.
- 세 번 이직 끝에 꿈의 회사(표괴물)를 찾았음.
- 하지만 거기도 지옥이 되어서 퇴사했음
-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유인이 됨.
- 철학흥신소에서 '월급쟁이 마인드' 재활 중 (자유인으로 재활될지 모르겠음)
- 현재, 인생의 공백을 견뎌보고 있음
- 그림을 그리며 영상을 만들고 있음
- 악플은 여기로
(https://www.instagram.com/p/B0SgRENHd66/?igshid=tz9p1nm0es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