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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긍정

늦여름, 술 한 잔

자전거를 탔다.

라벨의 소나티네

그리고 밝은 보름달


답답한 인도가 싫어

탁 트인 차도로 달렸다.


발은 페발

귀는 소나티네

눈은 보름달


알고 있었다.

빨간 불을.

빵빵, 끼익


멈추고 싶지 않았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을.


그렇게 6차선 도로

여섯 개를 지나 왔다.

알고 있었다.

여섯 번의 죽음을 지나왔음을.


쌩쌩 달리는 차 옆에서

생각했다.

죽어도 좋다.


뺨을 쓰다듬는 바람.

가슴을 보듬는 소나티네.

그녀의 눈빛 같은 보름달.


어느 것 하나 멈추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이면 되었다. 정말 되었다.

죽어도 좋다.


이제 알겠다.

죽음의 긍정을.


죽어도 좋다

지금을 놓치고 싶지 않다

같은 말이다.


이 밤

나는 여섯 번을 살았다.

나는 삶을 긍정했다.

나는 죽음을 긍정했다.


진짜로 살고 싶어하는 이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살고 싶어 죽음을 건넌 이 밤,

베란다에서 투신한 그 사람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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