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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우리는 선물을 한 적이 있을까?

선물과 거래 사이에서

진정한 선물이란? 


소비사회를 탈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을 이야기해보자.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다시 ‘장 보드리야르’를 만나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장 보드리야르’에 관한 내용을 잠시 간단히 복습해보자. 그는 상품에는 네 가지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교환가치’, ‘사용가치’, ‘상징적 교환가치’, ‘기호가치’가 그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앞서 간과했던 ‘상징적 교환’이라는 가치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상징적 교환은 증여의 논리가 작동하는 일종의 ‘선물’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는 가끔이지만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기위해 상품을 소비하기도 한다. 연인에게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장미 한 다발을 선물하기도 하고, 아내의 생일에 목걸이를 선물하기도 하고, 성탄절에 자고 있는 자녀의 머리맡에 장난감을 사서 놓아두기도 한다.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사랑하는 마음 전달하기 위해 소비를 하기도 한다. 바로 ‘선물’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말이다. 이런 선물이 바로 상징적 교환이다.


 소비사회의 탈출은 이 선물이라는 형식의 확장을 통해서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선물의 정의를 제대로 하고 갈 필요가 있다. 선물은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발적으로 가난해지는 것이다. 그게 진짜 선물이다. 그렇다면 다시 물어보자. 우리는 많은 선물을 하고 또 받고 살아가지만 정말 그런 것들을 진짜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발적으로 가난해지는 선택을 해본 적이 얼마나 있을까? 주변의 흔한 선물이 정말 진정한 선물인지는 다시 한 번 깊이 고민해볼 일이다.


거래에 포섭된 선물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술 한 잔을 마시고 나오며 기분 좋게 계산을 하는 것도 일종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친구를 다시 만났을 때 내심 ‘저번에는 내가 샀잖아!’라는 마음이 든다면 저번 술값은 선물이 아닌 게다. 기분 좋게 술값을 내었지만 그것은 다음번에는 얻어먹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으니까. 어떤 대가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다음번에 얻어먹기 위해 이번에는 내가 계산한다’는 식의 암묵적 거래를 하고 있었던 것일 뿐이다.


 비단 친구 관계만 그럴까? 얼마 남지 않은 본인의 생일을 앞두고 애인에게 황급히 주는 선물을 진정한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여자 친구와 잠자리를 하기 위해서 주는 남자 친구의 선물을 진정한 의미에서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선물은 앞의 냉정하기까지 한 선물의 정의를 결코 통과하지 못할 게다. 그들은 모두 선물을 줄 때 어떤 대가를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바라고 있는 까닭이다. 마찬가지로 아내, 자녀에게 하는 선물조차 그 선물 안에 어떤 내밀한 보상심리가 전제되어 있다면, 그것 역시 선물이라고 할 수 없을 게다.     

 자본주의라는 체제에서는 기본적으로 거의 모든 관계가 ‘기브 앤 테이크’라는 거래 형식에 기반 할 수밖에 없다. 언제나 투자 대비 효용을 따지고 이해득실을 따진다. 그런 자본주의적 거래가 보편화되고 일상화되면서 선물의 영역은 점점 줄어들어 버린 게다. 아니 선물의 영역이 거래의 영역 안으로 포섭된 것이라 보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그러니 이제 진정한 선물이 무엇인지 자신도 헛갈리게 된 것일 테다. 누가 보아도 명백히 뇌물을 준 사람 조차 자신은 선물을 준 것이라 굳게 믿으며 ‘자신의 진심을 세상이 몰라준다!’면 진심어린(?) 변명을 해대고 있으니까 말이다.


 비싼 생일 선물을 준 친구가 내 생일에 달랑 편지 한 장을 써가지고 왔을 때 느끼게 되는 분함 혹은 황당함은 우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적 거래의 논리가 선물의 논리를 이미 오래전에 잠식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우리는 분명 누구에게 선물을 해본 적도 받아본 적도 거의 없다는 사실에 직면해야만 한다. 비싼 선물을 줄 때는 내가 받을 것에 대한 기대를 했고, 비싼 선물을 받게 되었을 때는 마냥 기분이 좋기보다는 알 수 없는 부담감이 엄습해왔으니까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진정한 선물을 주었던 적도 받았던 적도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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