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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선물을 주자! 안되면 외상이라도

시골의 외상은 선물이다.

진정한 선물은 자발적으로 가난해지는 것이다.


진정한 선물은 그 어떤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선물이다. 여기에서 소비사회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그 어떤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게 될 때, 그리고 그런 진정한 선물을 주는 대상이 점점 확장되어 갈 때 우리는 소비사회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언제 진정한 선물을 하게 되는지 말이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가난해지는 선택을 할까? 바로 연인, 부모, 배우자, 자녀들을 위해서 기꺼이 자발적으로 가난해지곤 한다. 부모가 중병에 걸렸을 때 고생고생해서 모든 목돈을 선뜩 내놓기도 하고, 고생한 아내에게 결혼기념일 선물을 하기 위해 고이 모셔두었던 비상금을 꺼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 많은 사교육비는 결국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서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가난해진 대가 아니었던가.


 여기서 잠시 생각을 확장해보자. 만약 우리가 부모, 아내, 자녀에게 주었던 그 선물들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 우리와 전혀 관계도 없는 사람에게 할 수 있다면 사회는 어떻게 될까? 쉽지 않겠지만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현저히 달라질 게다. ‘상징적 교환’의 영역이 커지면 커질수록 돈을 통한 교환의 영역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선물이라는 형식이 확장되면 될수록 자본이 설 수 있는 자리는 그만큼 좁아지게 될 수밖에 없다.


외상은 선물이다!


이런 이야기가 너무 고결하거나 순진한 이야기라고 생각된다면, 예전의 시골마을 한 번 생각해보자. 과거의 시골마을이라고 해서 돈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골의 ‘점빵’ 역시 그곳에 돈을 들고 가서 과자를 살 수도 있고, 담배도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시골에서 돈의 위력은 도시의 그것과는 비교조차 안 될 만큼 약했다. 단적인 하나의 예로 시골에는 외상이 되기 때문이다.


 ‘점빵’의 할머니는 돈이 없는 동네 사람에게 과자나 담배를 외상으로 준다. 말이야 외상이라고 하지만 할머니는 그것을 꼭 돈으로 받을 생각은 없다. 그 외상을 한 동네사람은 할머니네 집 평상을 고쳐주거나 모내기를 할 때 도와주는 것으로 과자 값과 담배 값을 대신하기도 하기 한다. 하지만 지금 서울에서 아무 편의점이나 들어가서 과자나 담배를 외상으로 달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갈 곳은 둘 중에 하나다. 경찰서 아니면 정신병원.

  

 사실상 외상은 일종의 선물이다. 외상을 주고받는 관계의 성격은 선물을 주고받는 관계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외상을 준 사람은 특정한 대가를 전혀 바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그것을 또 악착같이 받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저 과자와 담배를 외상으로 가져 간 사람이 그것을 잊지 않고 할머니 댁에 무슨 일이 있을 때 기꺼이 도와주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선물이 아니면 무엇일까?


 무엇인가를 주는 사람은 주었다는 사실을 잊기도 하고, 받은 사람은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잊기도 하는 상태에서 서로에게 또 무엇인가를 주고 또 받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선물 아닐까? 이런 선물의 영역이 확장되면 확장될수록 우리는 돈을 매개하는 소비사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을 너무 쉽게 순진해 빠진 과거 시골 마을의 정서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외상, 선물이라는 개념은 도시화된 지금 우리에게도 충분히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도시에 사는 우리는 대체로 이웃 사람들과 무관심하게 지낸다. 그런데 가끔 이웃에게 인사도 건네고, 거창하게 선물이라고 말하기는 옹색하지만 집에 사과가 많다면 사과를 건넬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런 선물을 주고받는 삶의 영역이 점점 더 확장된다면, 적어도 지금 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소비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될 게다. 지금은 돈을 매개하지 않으며 생존조차 할 수 없는 시대다. 하지만 선물을 주고받으며 건강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면, 지금의 비정상적인 소비사회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게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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