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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코미디는 주관적인 거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이 웃긴지 안 웃긴지를 판단하죠.
  

멍청한 인간들. 나를 두려워하는 인간들도 멍청하지만 그보다 더 멍청한 인간들이 있다. 나를 안쓰러워하는 인간들이다. 자신들의 불행을 끝내지도, 아니 자신이 불행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나를 안쓰러워한다니 이 얼마나 멍청한가.


 나의 웃음은 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좆같이 불행 했던 시절을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며, 기어이 그 불행의 지속을 나의 행복이라고 날조하려했기 때문이다. 해피. 좆같은 소리다. 씨발. 나는 한 번도 ‘해피’한 적이 없었는데.  

     

돈 많은 병신 새끼 셋을 죽인 것. 내가 입양아였음을 확인한 것. 옆집의 매혹적인 그녀와의 사랑이 망상이었음을 깨달은 것. 엄마를 죽인 것. 머레이를 죽인 것. 그것이 안쓰러운가? 불쌍한가? 멍청한 것들아! 그것은 나의 구원이었고 내 삶을 되찾은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되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아도 된다고. 그런 좆같은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고. 나는 이제 내가 좋다고. 내 삶이 만족스럽다고. 내 감정과 욕망을 숨기며 살지 않아도 된다고. 

     

 돈을 벌기 위해 분노를 참고, 사장 앞에서 웃음을 참고, 우울증을 끝내려 상담을 받고, 불면증을 끝내려 약을 먹는 너희들 아니냐. 무엇이 정상인지도 모르는 것들이 정상인이 되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지금 너희들의 모습 아니냐.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멍청한 인간들아. 너희가 진정으로 바랐던 삶이 지금 나의 삶이 아니냐. 멍청한 인간들아.     


 나를 두려워하지 마라. 그 두려움은 너희 자신을 향해 있는 것이니까. 나를 안쓰럽게 여기지 마라. 그 안쓰러움은 너희 자신을 향해 있는 것이니까. 너희들이 두려워하고 안쓰러워해야 할 것은 바로 너희 자신이다. 나는 이제 해방되었다. 모든 것으로부터. 나는 이제 비로소 정말 ‘해피’하다. 멍청한 너희가 모르는 비밀을 하나 알려줄까?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코메디였어”     


- 영화 '조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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