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통증이 있다. 스무 몇 살 즈음이었던가. 저미게 사랑했던 그녀가 갑작스레 이별을 말했을 때 부터였던 거 같다. 그날 밤, 가슴이 조여 오며 숨을 쉴 수 없는 통증을 느꼈다. 다행이 그 통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있는 힘껏 가슴을 쥐어짜며 호흡하려 하면 숨이 쉬어졌다. 그렇게 통증 역시 사라졌다. 하지만 그 뒤로도 종종 그 통증은 찾아왔다.
한동안 그 통증의 원인이 예상치 못한 큰 슬픔이라고 여겼다. 큰 미안함·후회·외로움·그리움 등의 슬픔이 예상치 못하게 찾아올 때 그 통증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그 통증은 기쁨의 순간에도 찾아왔다. 예상치 못했던 큰 기쁨(고마움, 환희, 사랑)이 찾아올 때도 익숙했던 그 통증이 찾아왔다.
이제 그 통증의 정체를 안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큰 파문의 감정이 찾아 들었을 때 하고 싶은, 해주고 싶은 말이 갑자기 너무 많아진다. 하지만 그 큰 감정을 미처 예상치 못했기에 그것을 다 언어화해서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엉켜버린 말들이 가슴을 조여 왔던 게다. 숨조차 쉴 수 없는 통증으로.
마음의 체다. 갑자기 너무 많이 먹어서 몸이 체해버렸던 것처럼, 마음이 체했던 게다. 그것이 나의 오래된 가슴 통증의 정체였다. 오래간만에 그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 깊은 고마움 감정 때문에. 나의 삶을 줄여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나의 아픔을 묻고 사람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넘겨받으려 애쓰고 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내가 선택한 내 삶의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하는 것이니까.
누군가의 고마움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저녁, 갑작스레 큰 고마움을 받았다. 그 고마움을 준이에게는 그것이 내게 얼마나 큰 고마움이었는지 모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는 갑작스레 찾아온 큰 고마움이었다. 나는 나의 일을 하고 있을 뿐, 고마움을 받을 일을 하고 있다고 여기지 못한 까닭이다. 그래서 그 고마움 앞에 체해버렸다. 하고 싶은, 해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아무도 할 수 없어서.
이제, 조금 체기가 가라앉았다. 숨도 쉴만하다. 하여 이제 말하고 싶다. 그때 내가 느낀 그때의 고마움을 온전히 다 전할 수는 없겠지만 말해주고 싶다. “나보다 더 나를 걱정해주어서 고마워요. 그 고마움으로 저는 또 제 자리에서 제가 해야할 일들을 해나갈 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