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비칼럼]우리는 왜 '기쁨'을 쫒아가야할까?

'스피노자의 철학' 수업 후기

"기쁨이란 인간이 보다 작은 완전성에서 보다 큰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에티카」 스피노자



스피노자는 기쁨이라는 감정을, 수동의 기쁨과(정념) 능동의 기쁨으로 분류했다. 단순하게 기쁨은 좋은 감정,나를 더 큰완전성으로 이끌어주는 감정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 수업을 통해, 기쁨에도 능동과 수동 두가지 결의 기쁨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수동적 기쁨(정념)은 미성숙하고, 혼동된 관념이다. 그래서 행위능력이 증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능등적 기쁨을 따라가야한다. 나는 사실 이러한 철학을 배우기 전에도 이 능동-기쁨, 수동-기쁨이 다르다는것은 어렴풋이 느꼈었다.


스피노자는 우리 인간은 기쁨을 쫒아가는 삶을 사는 존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간 "왜 기쁨을 쫓아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하지? 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우리는 왜 '기쁨'이라는 걸 쫓아가야하지? 그냥 우울한채로 살면 안되나?" 라는 의문이 머리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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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쁨을 주는것을 찾을 의지가 별로 없었다. "기쁨을 왜 찾아야 할까" 스스로 생각하다 답을 찾지 못했다. 나는 이제 내가 왜 그 답을 찾지 못했는지 안다. 생각만 했기에 답을 찾지 못한거였다. 누군가를 진짜 사랑하면, 사랑하는것들이 많이 생기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것이었다.


기쁨을 통해, 자연스레 기쁜 것들을 찾게 되는 거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고 싶어, 스스로 충만하고 행복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너가 슬프면 나도 슬프고, 너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존재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싶은 마음, 그것이 기쁨을 쫓는 새로운 동력이 되었다. 나는 이제 "왜 삶은 기뻐야하지? 그냥 우울하면 안되나?" 같은 허무주의적 고민을 하지 않는다. 기를 쓰고 하루하루 더 기쁘고, 충만한 존재가 되어야만한다.


이제 나는 그냥 능동적으로 더 큰 기쁨을 쫓아가야겠다. 시작은 수동적 기쁨, 수동적 사랑이었지만, 그것이 주는 기쁨(행복)은 나를 다시 능동적으로 만들어주었다. 사랑하는것들이 늘어가면 이렇게 능동적으로 기쁨을 찾을 수 있는 동력이 더 커질 것같다. 나는 오늘 또 사랑해야겠다. 그 기쁨을 충분히 누려야 겠다.




박강비

-철학흥신소 비밀 요원.

-철학흥신소 수업 최장거리 매주 통근자(서울-양산, 매주)

-현재, 서울 거주!! (서울부심)

-촌년이 서울와서 적응 중 (서울말 3급 자격증보유.)

-글과 술, 산책과 나무, 꽃과 파스타. 그리고 치킨을 좋아하는 섬세한 영혼. (치킨을 매번 울면서 뜯음)

-마음이 담긴 글을 쓰고 싶어하고, 조금씩 쓰고 있음.

-하지만 현재, 대치동 일타 강사의 길을 걷고 있음.

- '현실'(일타강사)에 받을 딛고 '꿈'(작가)을 이뤄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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