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비판이 집착이 될 때

성철의 실수, 나의 실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 무거운 외침으로, 성철스님은 1980년 1월 20일 한국 조계종 종정(불교 종단의 정신적 최고 지도자)에 오른다. 이것은 일대 파란의 서막이었다. 종정에 오른 성철은 지눌의 ‘돈오점수’를 비판하며, ‘돈오돈수’가 진정한 선종의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성철의 이 비판은 당시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지눌이 바로 조계종을 기초 세웠던 이였기 때문이다. 이는 성철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직계 선배를 비판하고, 동시에 조계종 자체의 가장 오래된 뿌리를 부정한 셈이었다.

      

 왜 성철은 지눌을 비판했을까? 지눌은 ‘돈오점수’頓悟漸修를 강조했다. 이는 ‘먼저 단박에 깨닫고 그 뒤에 점차 닦아 나간다’는 의미다. 즉, ‘돈오’는 지적인 통찰을 의미하고 ‘점수’는 그 지적 통찰 뒤의 점진적 수행을 의미한다. 성철은 이런 ‘돈오점수’를 사변적인 말장난이라고 여겼다. 성철은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장했다. 이는 ‘단박에 깨닫고 단박에 닦는다’는 의미다. 성철은 ‘돈오’ 자체가 완전한 깨달음이며 해탈의 상태라고 보았다. 그러니 ‘돈오’하면 ‘점수’할 필요가 없게 되는 셈이다. 성철의 비판은 일리가 있다. 이미 깨달았는데, 무엇을 더 수행한단 말인가.    

 

 하지만 성철은 실수를 했다. 지눌을 잘못 이해하고 비판했다. ‘돈오돈수’와 ‘돈오점수’는 다르지 않다. 지눌의 ‘돈오’는 지적인 이해를 의미한다. 그 ‘돈오’를 통한 지적 이해로 ‘점수’ 즉, 점진적으로 수행해 나갈 때 진정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지눌의 ‘돈오점수’가 성철의 ‘돈오’인 셈이다. 그러니 '돈오점수'와 '돈오돈수'는 같은 의미를 다르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돈오’해서 ‘점수’하면 그것이 바로 ‘돈오돈수’이니까 말이다. 만약 정말 수행 없이 단박에 깨달음(돈오돈수)이 가능하다면, 성철은 왜 그 긴 시간 절에 머물렀단 말인가.      



 왜 성철은 실수를 했을까? ‘성불’(부처가 되는 것)에 대한 집착 때문 아니었을까.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라는 임제의 말처럼, 모든 권위를 넘어서지 못하면 성불은 없다. 성철은 모든 권위를 넘어서야 한다는 집착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지눌의 맥락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 아닐까. ‘자신의 뿌리마저 부정해야 성불이 가능하다’는 집착. 그 집착 때문에 엄밀하지 않은 방식으로 지눌을 비판하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성철을 통해 부끄러운 나를 본다. 나 역시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나는 많은 선배 철학자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그들 중 일부는 나의 뿌리가 되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뿌리를 잘라내지 못하면 나의 철학도, 주인된 삶도 요원하다는 것을. 그래서 성급하게 선배 철학자들을 비판하려 했던 적이 있다. 그들 철학의 맥락을 차분하게 살피기보다 성급히 그들을 비판하려 했다. 그들이 놓친 혹은 왜곡한 점을 비판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그 비판은 '나는 나의 뿌리를 잘라냈어!'라는 설익은 바람이었다. 부끄럽게도, 나의 비판은 집착이었다. 빨리 나의 뿌리를 잘라야 한다는 집착. 나의 철학에 대한 집착. 비판이 집착이 될 때 헛발질은 예정되어 있다. 그렇게 주인된 삶은 점점 멀어진다. 성철에게 집착했던 일부 승려들이 성철에게 반론 제기했던 불교학자들에게 폭력적이고 강압적으로 대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비판이 집착이 될 때 부끄러운 삶은 계속된다.


 뿌리를 부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권위를 극복하지 못하고 진정한 삶은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집착을 벗는 일이다. 권위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에 집착할 때, 또 다른 예속이 시작된다. 나는 이제 성급히 선배 철학자들을 비판하는 일을 멈출 테다. 부끄러운 일은 빨리 멈춰야 하는 법이니까. 성급한 비판은 언제나 집착일 뿐이니까. 이제 나는 이런 저런 나의 뿌리를 감고 그저 나의 길을 가련다.

작가의 이전글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내게 하지 말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