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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붉은 돼지'

포르코는 돼지다. 탐욕적이며, 게으르고, 무기력한 돼지. 현상금 사냥꾼으로 자신의 탐욕을 채우고, 어느 섬에 드러누워 술을 마시며 게으름을 피우고, 사랑하는 이를 멀찍이서 바라볼 정도로 무기력하다. 포르코는 왜 돼지가 되었을까? 포르코는 한때 마르코였다. 이탈리아의 유능한 공군 파이럿인 마르코. 마르코는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죽이는 적들과 죽어가는 동료들의 끝없는 행렬이 만들어내는 은하수를 본다. 그리고 그 은하수에 끼지 못한 자신을 본다. 마르코는 전쟁이라는 것, 파시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온 몸으로 깨닫는다. 

     

 그 모든 것을 깨닫고도 은하수가 되지 못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스스로 '돼지'가 되기를 선택한다. 더 이상 '인간'으로 살 수 없어서. 그렇게 마르코는 탐욕적이며, 게으르고, 무기력한 '돼지'로 산다. 포르코는 돼지이면서 아나키스트다. 아니 돼지이기에 아나키스트다. 애국채권을 사서 국가에 이바지 하라는 은행원에 말에, 포르코는 답한다. “그딴 건 인간들끼리 많이 하시오!”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인 편이 나아!” “돼지에겐 나라도 법도 없어!” 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포르코 돼지이기에 아나키스트다.


 

 ‘돼지’(포르코)와 달리, ‘인간’(마르코)은 성실하며 열정적으로 신념을 지킨다. 그것은 국가주의(전쟁, 파시즘) 안에서 그 자체로 폭력이 된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열정적이고 성실한 이들은 국가주의 안에서 괴물이 된다. ‘인간’에게 주어진 조건이, 국가주의라면 인간답게 사는 유일한 방법은 ‘돼지’로 사는 것이다. 하지만 돼지는 인간이 아니기에 또 다시 인간답게 살 수 없게 된다. 포르코의 쓸쓸함은 이 모순 안에서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하리라는 서러운 직감이겠지.     


 하지만 포르코에게 남은 하나의 기쁨이 있다. 비행이다. 돼지이지만 비행만은 놓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와의 통화에서 포르코는 말한다.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 포르코의 시니컬한 그 말이 가슴이 먹먹해졌다. 잠시 포르코가 흐려졌다. 돼지이기를 선택했지만, 돼지이고 싶지 않은 포르코의 마음이 전해졌다. 포르코를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절망도, 그의 선택도, 그의 쓸쓸함도, 그의 기쁨도. 나 역시 돼지이기 때문이다. ‘백수’라는 이름의 돼지.


 나 역시 돼지이지만, 포르코를 닮고 싶지는 않다. 포르코의 아니 나의 절망과 선택 그리고 쓸쓸함에도 허무함에 휩싸이고 쉽지는 않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조금 다른 돼지, 포르코보다 조금 더 '붉은 돼지'가 되고 싶다. 포르코보다 더 유쾌하고 명랑한 돼지가 되어서, 인간의 주어진 조건을 넘어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존재가 되고 싶다. 더 '붉은 백수'가 되어서, 유쾌하고 명랑하게 외치고 싶다. 

 

“쓰지 않는 백수는 그냥 백수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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