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실수투성이다. 왜 그럴까? 사랑하기 전까지는 진정으로 타자를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첫사랑은 첫만남인 셈이다. 진정한 타자를 만나는 첫만남. 그런 첫만남이 실수투성이지 않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일 테다. 첫사랑이 실수투성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첫사랑의 실수는 각양각색일 수 있지만 그 근본은 하나의 무의식적인 유아적 발상에서 온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네가 나를 안 좋아할 수가 있어!”
첫사랑을 하기 전까지는 세상은 항상 ‘나’를 중심으로 돈다. 불행히도, 예외적 경우가 아니라면, 첫사랑은 그 자기중심적 자장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없다. 그 때문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첫사랑의 치명적 문제는 무엇일까? 타자를 사랑하게 된 자신을 너무나 대견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항상 자신만의 사랑하다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 자신이 대견해 어쩔 줄 모르는 마음 상태. 첫사랑의 치명적 실수는 여기서 발생한다.
성급하게 고백하고 거절당하면 당황하거나 화를 내는 것.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랑하는 것. 자신의 기준으로 되돌아오는 사랑이 작은 것 같으면 화를 내는 것. 이 모든 것은 ‘나’ 말고 ‘너’를 사랑하는 ‘나’가 대견스러워 어쩔 줄 모르기에 발생하는 사달이다. 첫사랑은 ‘너’에 대한 사랑이 ‘나’에 대한 사랑 안에 포섭된 사랑이다. 이것은 절반의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온전한 사랑은 ‘나’에 대한 사랑이 ‘너’에 대한 사랑 안으로 포섭된 사랑이다. ‘나’ 자신을 지키고 싶지만, ‘너’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나’를 내려놓는 사랑. 이것이 온전한 사랑이다. 그런 사랑은 성급하게 고백하지 않고, 거절당하더라도 당황하거나 화내지 않는다. 그런 사랑은 나의 방식 아닌 너의 방식으로 사랑한다. 그런 사랑은 되돌아오는 사랑은 개의치 않고 주는 사랑이 부족하지 않았을까만 생각한다.
아마 이런 사랑은 첫사랑, 그 다음에 이뤄질 테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첫사랑은 두 번째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첫사랑이 지나가지 않았다면 항상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크고 작은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이것이 첫사랑의 치명적 실수를 피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지 않을까. '모든' 첫사랑의 치명적 실수는 다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