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심타파

선택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우유부단함은 결정 장애를 동반한다. 어떠한 선택 앞에서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결정 장애. 소심한 사람들은 자신의 실존적인 문제에 대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하지 못한다. 그 선택과 결정을 회피하거나 미루며 어영부영하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상황에 이끌려 다니게 된다. 하지만 선택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선택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다.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하지 못하면 타인이 그 결정을 대신하거나 아니면 상황이 그 결정을 대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정‘되어진’ 문제는 필연적으로 우리를 불행에 몰아넣을 수밖에 없다. 타인과 상황에 끌려다는 삶에 기쁨과 행복이 있을 리 없다. 이는 필연적으로 불행해지는 삶이다. 상황에 끌려다는 삶은 그 형식에서는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노예의 삶이니까 말이다. 우유부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대단한 선택과 결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작고 소소한 기쁨과 행복을 따르는 선택과 결정이면 충분하다.


친구를 만나 파스타를 먹는 것이 기쁨이고 행복이다. 하지만 소심한 이들은 그 기쁨과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오늘은 파스타 먹자”라는 말 대신 “너 뭐 먹고 싶어?”라고 묻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이와 연애하는 것이 기쁨이고 행복이다. 하지만 소심한 이들은 그 기쁨과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나 너 좋아해”라는 말 대신 “넌 어떤 사람 좋아해?”라고 묻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유부단한 이들이 기쁨과 행복으로부터 멀어지는 과정이다.


그 동안 우리가 ‘파스타’를 먹지 못하고 ‘연애’를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우유부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강단 있게 선택하고 결정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물론 파스타가 먹고 싶다고 말해도 못 먹을 수도 있고, 고백한다고 해도 퇴짜 맞을 수 있다. 하지만 파스타의 ‘파’자도 꺼내지 못하면 파스타를 먹을 수 있는 확률은 0에 수렴한다. ‘사귈까?’의 ‘사’자도 꺼내지 못하면 연애를 시작할 확률은 0에 수렴에 한다.


하지만 적어도 선택하고 결정하면 그보다는 기쁨과 행복을 누릴 확률이 높아진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해보는 편이 현명하다. 100퍼센트 확신이 들 때만 결정하겠다는 태도는 우유부단함, 소심함의 근원적 뿌리다. 세상에 100퍼센트 확실한 것은 없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선택하고 결정을 내리는 편이 좋다. 아무런 선택도 결정도 하지 않으면 확실히 안 되는 것이지만, 선택하고 결정을 내리게 되면 될 가능성이 발생하는 것이니까. 혹시 아는가. 친구도 마침 파스타가 먹고 싶었을 수도 있고, 당신이 좋아하는 상대 역시 내심 고백을 기다렸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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