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적인 이들에게 가해진 폭력
“어린 시절부터 들었던 이야기 잊혀 지지 않아요. 게을러 빠져 가지고. 악착같이 하는 것도 없고. 느려 터져가지고. 물러 터져가지고. 나이가 들어서 그건 내향적인 것일 뿐이란 걸 이제 알아요. 하지만 이미 내가 뭔가 틀려먹은 인간일지 모른다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아요. 그게 저를 제일 우울하게 만들어요.”
근사한 사람을 한 명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어둠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어둠은 내향적이 이들에게 가해졌던 폭력의 그림자다. 비단 그 사람만이 그럴까?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삶을 살면서 그 사람과 같은 이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들을 구출해야겠다.
내향적인 사람 구출 작전
“넌 왜 그리 빨리 결정을 못해? 그렇게 소심해서 어떻게 해”
“남자 애가 밖에 나가서 안 놀고 왜 매일 집에만 있니, 그렇게 소심해서 커서 뭐 될래?”
“좋은 부모가 되는 게 꿈이라고? 거 참 소심하구만”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때 그렇게 수줍어해서 어떻게 하나? 그렇게 소심해서 승진하겠나?”
한 번쯤 들어 보았을 법한 이야기다. ‘소심함’만큼 자의적으로 해석된 단어도 많지 않다. 언어의 자의적 해석은 언제나 삶의 진실을 왜곡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오해를 만들어낸다. 소심함이 바로 그렇다. ‘소심함’이라는 단어 대한 자의적 해석으로 인해 발생한 왜곡과 오해는 셀 수도 없이 많다. 한 없이 소심한 이들이 자신은 전혀 소심하지 않다고 오해하기도 하고, 반대로 전혀 소심하지 않은 이들이 소심한 이들로 오해받기도 한다.
이런 왜곡과 오해의 가장 큰 피해자가 누구일까? 바로 내향적인 사람이다. 내향성이 무엇인가? 자신의 내부에서 삶의 방향과 가치를 찾으며 내적 만족감에 충실하려는 성격 경향이다. 예컨대, 사회적인 성취에 목을 매지 않고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이들. 유행에 편승하지 않고 신중한 삶을 이어가는 이들. 사회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삶의 속도를 유지하는 이들. 타인을 상처주지 않기 위해 섬세한 마음을 유지하는 이들.
이들은 모두 내향적일 뿐 결코 소심한 이들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내향적이 이들 중 “넌 소심해!”라는 억울한 누명을 한 번도 쓰지 않은 이들은 없다. 그만큼이나 우리 사회는 내향성을 소심함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소심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 왜곡과 오해가 낳은 누명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소심함에 대한 고질적이고 해묵은 왜곡과 오해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이번 장에서 할 이야기는 간명하다. ‘내향적인 사람 구출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