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로 가보겠다.”
알지 말 걸 그랬다.
안다는 건 아직 가닿지 못한 삶에 깃발을 꽂는 일이다.
알아버렸다는 건 그곳에 아직 가닿지 못했다는 의미다.
그러니 알아버린 이는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깃발과 나의 거리만큼 더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를 사랑해야 하는데 ‘너’를 사랑하는 나는 부끄럽다.
‘너’를 사랑해야 하는데 ‘나’를 사랑하는 나는 부끄럽다.
'너'를 사랑하려는 '나'를 사랑하려는, 내 안에 득실거리는 욕망이 나는 부끄럽다.
혼자여야 하는데 함께인 나는 부끄럽다.
적게 말해야 하는데 많이 말하는 나는 부끄럽다.
진실해야 하는데 진실하지 못한 나는 부끄럽다.
서둘러야 하는데 너무 느린 나는 부끄럽다.
그 모든 부끄러움 앞에 속절없이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내 안에 득실거리는 욕망 앞에 나는 부끄럽다.
“저기로 가보겠다.”
깃발을 꽂지 말 걸 그랬다.
저 멀리 보이는 깃발 만큼 나는 부끄럽다.
이미 알아버렸기에
부끄러움에 질식하기 전에 한 걸음이라도 나아갈 수밖에
그렇게 살아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