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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도 마셨다.

왜 마셨을까?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다.

술을 들이켜서 취하면 고통스러운 삶이 잠시 멈춰졌다.


나이 지긋한 택시 기사의 몇 살을 잡고 악을 쓰며 상소리를 해댔던 일.

10년도 더 지난 그 부끄러운 일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취하지 않았다면, 그 부끄러운 일은 기억되지 않았을 테지.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보려고 마셨던 술.

나의 영혼을 파괴하는 기쁨.


이제 안다.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

고통스러운 삶을 그저 홀로 고통스럽게 견디는 것.


그 고통을 가벼운 기쁨으로 채우려는 것은

내 영혼을 파괴하는 일이다.


술을 아름답게 해줄 수 없다면,

술은 끊어야한다.


언젠가 술을 아름답게 해줄 수 있는 깜냥이 생긴다면,

그때 다시 마실 수 있을까?


고통스러운 삶을 그저 고통스럽게 견뎌내야겠다.

술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지 않아야겠다.


다시는 악을 쓰며 상소리를 하지 않을 테다.

다시는 부끄럽지 않을 테다.


술을 끊어야겠다.

신발 끈이 풀렸다.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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