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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

'아이'가 아팠다. 전날부터 작은 기침을 하고 열이 오르더니 아침에는 구토를 계속 할 만큼 아팠다. 전날부터 알고 있었다. '아이'가 감기 기운이 있다는 사실도, 내일이면 더 아파질 거란 사실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알길 없는 '아이'는 저녁에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떼를 썼다. 안된다고 말했다. "아플때는 찬거 먹는 거 아니야" 하지만 '아이'는 울면서 다시 떼를 썼다. '아이스크림'을 절대 주지 말았어야 했을까? 이성(의학)적으로는 여지없이 그렇다. 하지만 때로 '아이스크림'을 주어여 한다. 인간은 이성(의학)적이기만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다. '아이'가 왜 떼를 썼는지.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 게 아니다. 사랑받고 싶은 것이다. 아프면 서럽다. 철이 없는 아이가 아프면 어깃장을 놓는 이유도 그래서다. 그것이 철없는 '아이'가 사랑을 확인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몇 번을 고민하다 아내 몰래 '아이스크림'을 하나를 꺼내주었다. '아이'는 해맑은 미소로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먹었다. '아이'가 웃는 모습에 기뻤지만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내일 '아이'는 더 아플 것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이스크림'을 꺼내 주고 난 뒤, 다음 날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다음 날 아픈 '아이' 곁에 있어야 주어야 하니까 말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참 고단한 일이다. 다음 날 일정을 취소해야 해서, 아이의 병간호를 해야 해서 고단한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아이'를 사랑하면 '아이'가 아플 것임을 알지만 그것을 해줘야 할 때가 있다. 그 어떤 의학적 처방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한 '아이'를 더 건강하고 씩씩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에 알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조금 더 오래 산 애비의 입장에서는 고단한 일이다. 해 맑은 미소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아이'를 보는 마음을 견디는 것은 고단한 일이다. 다가올 아이의 고통을 먼저 보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것만이 고단한 일일까? 사랑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아이스크림' 말고 '아이'가 사랑받는다고 느낄 수 있는 다른 것은 없을까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다른 방법이 있는데도 아이스크림을 주었다면 그것은 '아이'에게 주지 않아도 될 상처를 주는 것이니까 말이다. 불필요한 상처를 주지 않을까 끊임없이 고민하는 마음은 고단하다. 그뿐인가? '아이스크림'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해서 무작정 '아이스크림'을 줄 수도 없다. 다음 날 '아이'가 최대한 적게 아플 수 있을 만큼의 양이 얼마인지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아이가' 원한다고 다 해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무책임이니까 말이다. 사랑과 무책임 사이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일은 고단하다.   

   

 사랑은 고단한 일이다. 이 모든 고단함을 견디며 다시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고단한 일이다. 자신의 고단함이 기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고단한 일이다. 나의 고단함보다 '아이'를 먼저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일은 '아이'가 아프지 않기를. 해맑은 미소로 웃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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