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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근성, 사랑의 근성

1.

“이기겠다!” 근성이다. 어린 시절부터 크고 작은 싸움을 하며 지냈다. 그래서 싸움에서 무엇보다 근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안다. 싸움에는 근성이 필요하다. “어떠한 경우에도 이겠다.” 이런 근성이 필요하다.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지는 상황이 와도 결코 물러서지 않고 이길 때까지 싸우겠다는 근성 말이다. 이런 근성이 있는 이들은 길거리 싸움에서 좀처럼 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근성이 있는 이들은 늘 이길까? 그렇지 않다. 


 가끔 길거리에서 싸움 꽤나 한다는 이들이 복싱 체육관으로 찾아올 때가 있다. 복서를 잘할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복싱도 싸움이니까. 이들은 길거리에서처럼 링에서도 이기는 복서가 될 수 있을까? 생각보다 그런 경우는 흔치 않다. 길거리에서 백전백승 했던 근성 있는 이들이 링 위에 올라보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경우는 너무 흔하다. 복싱도 근본적으로 싸움 아닌가? 그러니 복싱에서도 근성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왜 그들은 링 위에서 서보지 못하거나 혹은 링 위에 오르더라도 죽도록 얻어터지고 패배하게 되는 걸까?      

 

 싸움의 근성에는 두 가지가 있다. 싸우는 시간의 근성과 싸우지 않는 시간의 근성. 싸우는 시간의 근성은 무엇일까? 순간적 근성이다. 그것은 상대와 치고 박는 그 순간에만 발휘되는 근성이다. 이를 흔히 ‘성깔’이라고 한다. 싸우지 않는 시간의 근성은 무엇일까? 지속적 근성이다. 상대와 치고 박기 위해 긴 시간을 준비하는 근성이다. 이는 ‘끈기’라고 한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근성이다. 그렇다. 근성에는 두 가지 종류의 근성이 있는 셈이다.


 ‘성깔’과 ‘끈기’ 이것이 길거리 싸움에서는 백전백승인 이들이 링 위에서는 패배의 쓴잔을 마셔야 하는 이유다. ‘성깔’은 분명 복서에서 중요한 자질이지만, ‘성깔’만으로 링 위에서 이길 수는 없다. 지속적인 근성, ‘끈기’가 필요하다.  짧은 싸움의 순간을 위해서, 긴 시간의 고된 훈련을 견뎌내는 능력, 이 ‘끈기’야 말로 진정한 근성이다. ‘성깔’만 있는 복서와 ‘끈기’가 있는 복서가 싸우면 언제나 ‘끈기’가 있는 복서가 이기게 되어 있다. 복싱의 승부는 링 위가 아니라 링 아래서 이미 결정 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성깔’ 아니라 ‘끈기’ 필요하다.       


2.

 “사랑하겠다!” 근성이다. 싸움에만 근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랑에도 근성이 필요하다. 이 사랑의 근성이 넘치는 이들은 흔하다. “어떠한 경우에도 너를 아껴줄 거야!” 이런 근성이 있는 이들은 사랑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사랑에도 두 가지 근성이 있다. 사랑하는 시간의 근성과 사랑하지 않는 시간의 근성. 사랑하는 시간의 근성은 무엇인가? 순간적인 근성이다. 둘이 함께 있는 순간 동안 상대를 사랑해주려는 마음이다. 이 마음은 진짜다. 상대를 아껴주고 싶은 마음은 진짜다. 이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이런 순간적인 근성으로 밀도 높은 사랑은 요원하다.      


 사랑하지 않는 시간의 근성은 무엇인가? 지속적인 근성이다. 둘이 함께 있지 않는 순간에도 사랑하려는 마음이다. 이것이 사랑의 진정한 근성이다. 밀도 높은 사랑은 사랑하지 않는 시간에 결정된다. ‘성깔’만 있는 복서의 이기고 싶은 마음은 진짜다. 하지만 ‘끈기’가 없기 때문에 링 아래서는 끈기 있게 싸움을 준비하지 않는다. 그래서 끊임없이 펀치를 쏟아내는 상대 앞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만 앞섰던 그 ‘성깔’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우리의 사랑도 그러지 않는가? ‘성깔’있는 이들의 사랑을 생각해보라. 그가 상대를 사랑하고 아껴주려는 마음은 진짜다. 하지만 만약 그가 사랑의 ‘끈기’가 없다면 어떨까? 데이트 전날, 술을 마시고 밤늦게까지 오락을 하고 영상을 본다. 그는 술과 오락, 영상이 그녀를 사랑하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런가? 그는 그녀와 함께 있을 때, 그녀를 사랑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와 별개로 몸이 피곤해서 짜증이 나고 모든 것이 귀찮아진다. 그는 말한다. 그녀를 사랑하지만 몸이 피곤한 거라고. 이는 '성깔'만 있고 '끈기' 없는 복서의 황당한 핑계와 같다. “싸우고 싶은데 체력이 없어서 진 거야”


 사랑은 '성깔'만으로 안 된다. '끈기'가 필요하다. 사랑하지 않는 시간에도 사랑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사랑하려는 이들은 사랑하지 않는 시간에도 사랑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녀를 만나서 제대로 사랑해주기 위해서 밀린  일처리를 미리 해놓고, 일찍 잠자리에 들고, 우울하지 않으려고 운동을 해야 한다. 이런 사랑의 '끈기'가 없다면, “그녀를 만나면 정말 아껴줄 거야”라는 사랑의 '성깔'은 순식간에 휘발되고 짜증나고 피곤한 마음만 앞서게 된다. 그렇게 제대로 된 사랑은 멀어져가게 된다.     

   

 싸움과 사랑은 같다. 제대로 된 싸움은 싸우지 않는 시간에 결정된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사랑은 사랑하지 않는 시간에 결정된다. 순간적인 근성으로는 제대로 된 싸움도 사랑도 할 수 없다.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근성이다. 싸우지 않는 시간에도 싸우려는 마음, 사랑하지 않는 시간에도 사랑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사랑하고 싶은가? '끈기'이 있는 복서처럼 살라!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땀을 흘리며 매일 같이 훈련하는 복서처럼 살라! 링 위에서 싸우는 그 순간을 위해, 싸우지 않는 모든 시간에 싸울 수 있어야 한다. 사랑도 싸움도 ‘성깔’이 아니라 ‘끈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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