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피해의식은 왜 강렬한가?

피해의식의 ‘깊이’와 ‘넓이’

피해의식은 강렬하다. 이는 피해의식에 휩싸이면 합리적 사고와 판단이 어려울 만큼 감정이 격앙되된다는 단순한 논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피해의식의 강렬함은 ‘깊이’와 ‘넓이’라는 두 가지 측면과 관계 되어 있다. 피해의식의 ‘깊이’와 ‘넓이’는 무엇일까? ‘깊이’는 마음과 관계되어 있고, ‘넓이’는 삶 전반에 관계되어 있다. 즉, 피해의식은 한 사람의 마음에 ‘깊이’ 들어와 작동하는 동시에 한 사람의 삶 전반에 ‘넓게’ 작동한다.

 

 돈에 관한 피해의식이 있는 이를 생각해보자. 그는 부자들의 소식을 접할 때면 근거 없는 분노와 적대감에 휩싸이곤 한다. 이는 피해의식의 ‘깊이’ 문제다. 그의 돈과 가난에 대한 피해의식은 마음 속 ‘깊이’ 침투해 있다.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침투한 피해의식은 자신의 피해의식이 자극되는 어떤 지점에 이르면 격렬하게 반응하게 된다. 마치 내부 깊은 곳까지 침투된 균열이 있는 건물 외부에 작은 자극이 주어지면 순식간에 강렬한 금이 생겨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피해의식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절대 택시를 타지 않으며, 악착같이 커피 쿠폰을 챙기며, 작은 물건을 하나 살 때 몇 시간을 가격 비교를 하고, 급여를 더 주는 일자리가 있는지 늘 두리번거린다. 이는 피해의식의 ‘넓이’ 문제다. 그의 피해의식은 삶 전반을 넓게 지배하고 있다. 그가 인지하고 행동하든 그렇지 않든 그의 삶 전반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마치 피해의식은 색안경과 같다. 빨간색 안경을 끼면 삶 전반이 모두 빨갛게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피해의식은 ‘깊이’와 ‘넓이’를 동시에 가질 만큼 강렬하다.      



‘의식’은 ‘무의식’에 지배를 받는다.

   

 피해의식은 왜 이리 강렬한 것일까? 피해의식의 강렬함에 대해 논의하려면 ‘무의식’에 대한 논의를 조금 더 이어갈 필요가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에는 명료한 ‘의식’(합리‧논리‧이성)과 혼란한 ‘무의식’(비합리‧비논리‧감정)이 있고, 인간은 ‘의식’보다는 ‘무의식’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해, 우리의 ‘의식’적인 사고‧판단‧행동은 ‘무의식’의 작동 아래서 진행된다. 이는 우리네 일상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한 남자가 편의점에 들어서서 빵과 우유를 사먹었다고 해보자. 이는 분명 ‘의식’적인 사고‧판단‧행동이다. ‘편의점에서 우유와 빵을 사먹자’ 이는 그 남자가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는 합리적·논리적·이성적인 마음, 즉 ‘의식’이다. 그런데 이는 정말 ‘의식’적이기만 사고‧판단‧행동일까? 그렇지 않다. 이 남자의 ‘무의식’에는 ‘나는 늘 시간에 쫒기며 살고 있다.’는 마음이 있다.  이는 결코 명료하게 인식할 수 없는 비합리적‧비논리적·감정적인 혼란한 마음이다. 이 남자의 ‘의식’적인 사고‧판단(편의점에서 우유와 빵을 사먹자)은 이미 ‘무의식’(나는 늘 시간에 쫒기며 살고 있다)의 영향 아래서 작동하고 있다. 이는 억측이 아니다.  

   

 허기진 그 남자는 왜 음식점이 아니라 편의점에 들어섰을까? 또 편의점에서 컵라면이나 김밥 같은 음식이 아니라 왜 빵과 우유를 골랐을까? 이는 그 남자의 마음속에 ‘나는 늘 시간에 쫒기며 살고 있다’는 ‘무의식’이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말이나 휴일처럼 차분하고 여유 있게 식사할 수 있는 날에도, 음식점이 아닌 편의점에서 식사를 한 것이다. 그런 무의식 때문에 편의점에 들어서서도 가급적 빨리 먹을 수 있는 빵과 우유를 선택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명료하고 투명한 ‘의식’적인 사고‧판단‧행동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그것은 이미 혼란스럽고 불투명 ‘무의식’에 의해서 영향 받고 있다.


      

‘무의식’은 ‘의식’되지 않을 뿐, 강력한 힘과 활동성을 가진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여기서 우리는 ‘무의식’의 하나의 특징을 알 수 있다. ‘무의식’은 우리가 알 수(‘의식’할 수) 없는 것이지만 큰 힘과 활동성을 갖고 있다. 프로이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아무리 힘이 강해져도 의식 속으로 뚫고 들어올 수 없는 어떤 잠재적인 생각(무의식)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략) ‘무의식은 일반적으로 잠재적인 생각을 지칭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특히 어떤 동태적인 성격을 지닌 생각들즉 그 힘의 강도나 활동성에도 불구하고 의식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생각들을 가리키기도 하는 것이다정신분석에서의 무의식에 관한 노트』 지그문트 프로이트     


 ‘무의식’(잠재적인 생각)은 ‘의식’ 속으로 들어올 수 없다. 즉, ‘무의식’을 ‘의식’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의식’이 아무런 힘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무의식’은 잠재해 있기에 우리가 알 수 없는 마음을 지칭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무의식’은 어떤 것을 움직이거나 변하게(동태적)하는 성격을 지닌 생각들이다. 즉, ‘무의식’은 강력한 힘(강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사고‧판단‧행동을 움직이거나 변하게 할 활동성을 갖고 있다.   

   

 ‘나는 늘 시간에 쫒기며 살고 있다.’는 무의식을 가진 이를 생각해보자. 그의 무의식은 잠재해 있기에 스스로 알 수 없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 ‘무의식’은 강력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삶 전반을 지배할 활동성을 갖고 있다. 그의 삶을 살펴보자. 그는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먹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 그는 습관적으로 시계를 보고, 효율적인 일처리를 강조하고, 일별‧주별‧월별 일정계획표를 만든다. 이는 모두 ‘의식’적인 행동들이라 할 수 있지만, 이는 모두 강력한 힘을 가진 ‘무의식’의 지배아래서 일어난 일들이다.       



피해의식은 무의식이기에 강렬하다.


 이제 피해의식이 왜 그리 강렬한지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피해의식은 무의식적이기 때문이다. 피해의식은 강렬하기에 ‘깊이’와 ‘넓이’를 가진다. 피해의식의 ‘깊이’와 ‘넓이’는 ‘무의식’이란 개념으로 다시 설명할 수 있다.      


 피해의식의 ‘깊이’는 무엇인가? 한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난 균열이다. 이 균열은 마음 속 깊은 곳에 있기에 스스로 발견하기 어렵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발적으로 피해의식이 건드려졌을 때 선명한 감정적 틈(분노‧적개심)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무의식의 내적 논리와 같다. ‘무의식’ 역시 한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기에 스스로 발견할 수 없다. 그렇게 때문에 어떤 우발적 마주침에 의해 무의식이 발견될 때 극심한 감정적 동요(두려움‧분노‧열등감‧무기력‧억울함)를 겪게 된다.

  

 피해의식의 ‘넓이’란 무엇인가? 한 사람의 코 위에 얹어진 안경이다. 안경을 쓰고 있는 이는 늘 안경과 함께 했기에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 동시에 안경을 쓴 이는 삶 전반을 모두 그 안경을 통해 볼 수밖에 없다. 그가 삶에서 어떤 사고‧판단‧행동을 하던 그것은 전부 안경을 통해서 본 삶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처럼 피해의식은 한 사람의 삶 전반을 넓게 지배한다. 


 이 역시 ‘무의식’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무의식’은 늘 우리 마음속에 있지만 그것을 ‘의식’할 수는 없다. 동시에 삶 전반에서 일어나는 ‘의식’적인 사고‧판단‧행동들은 ‘무의식’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해 벌어지는 일들이다. ‘무의식’이 ‘의식’되지 않은 채로 삶 전반을 지배하는 것처럼, 피해의식 역시 마찬가지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은 그것을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삶 전반이 피해의식의 지배아래 놓이게 된다. 

     

 피해의식은 통제하기 어렵다. 피해의식은 ‘무의식’적이기 때문이다. ‘무의식’은 ‘의식’되지 않은 채로 강력한 힘과 활동성을 가진다. 피해의식 역시 그렇다. 피해의식은 좀처럼 명확히 의식되지 않는다. 하지만 강력한 힘과 활동성을 갖고 있다. 그 힘과 활동성이 한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균열을 내고, 동시에 한 사람의 삶 전반을 넓게 지배한다. 피해의식에 휩싸인 이들이 이유 모를 두려움과 분노, 열등감을 통제하기 어려운 것도, 자신이 피해의식에 휩싸였는지도 모른 채로 피해의식적인 사고‧판단‧행동을 하게 되는 것도 그래서다.      

작가의 이전글 피해의식은 '무의식'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