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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속에서

"작가, 창조자란 하나의 그림자이다.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육체보다는 그림자가 우선적이 된다.  진실은 실존의 산출이다.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존재하는 그 무엇이다.  작가는 실제적 물체들을 내보낸다." 질 들뢰즈      


 철학을 공부한지 10년 즈음 되어 간다. 여전히 난해한 철학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품을 들여야 하지만, 충분한 품만 들인다면 이해하지 못할 텍스트도 없다는 믿음이 생겼다. 하지만 늘 그렇듯 오만은 늘 곁에 있다. 이제 이해했다고 믿었던 텍스트들을 사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으로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니까.  

    

 위대한 그림자들 속에서 며칠을 보냈다. 어느 그림자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고 어떤 그림자는 내 눈길을 사로잡았으며, 어떤 그림자는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머릿속으로만 이해했던 들뢰즈의 말이 마음으로 들어섰다. 작가이건 화가이건 음악가이건 모든 창조차란 그림자이다. 그리도 가보고 싶었던 미술관에 들어섰을 때,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온 것처럼 느낀 것은 위대한 그림자들이 만들어낸 무지개 속으로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위대한 작가는 작품에 혼을 담는다. 그것은 자신을 버리고 기꺼이 자신의 그림자가 우선될 수 있게 고통스럽고 위험한 일을 감행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진실을 말한다. 이는 진실을 표현한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실존적인 하나의 세계를 산출한다는 말이다. 정말이다. "작가는 실체적 물체들을 내보낸다." 모네의 그림 앞에서 서서 느꼈던 두근거림, 로스코의 그림 앞에서 서서 느꼈던 일렁임. 그것은 “머릿속에 있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존재하는 그 무엇” 때문이었다.    


 철학은 결코 텍스트로 이해될 수 없다. 철학이 텍스트라면 그것은 오직 삶의 진실을 산출하는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결코 글로만 쓸 수 없다. 철학이 글로 표현될 수 있다면 오직 온몸으로 삶의 진실을 산출하며 지나온 올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틈이 날 때마다 파리의 미술관을 다녔던 어느 철학자의 마음을, 그가 걸었던 길을 온몸으로 걷고, 그가 보았던 작품들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의 마음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다시 그림자가 될 시간이다. 


 “모든 위대한 작품은 우발적이다. 하지만 그 우발성이 예술이 되는 것은 그 우발성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을 만큼의 반복 때문이다. 끊임없는 차이의 반복” 황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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