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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다리 휘어지는, 강진의 백반로드

전남 강진 미각여행 시리즈 - 1   


세상에 나만의 인생 맛집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일까. 미식가들이 인생맛집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얼까.

미각은 세월따라 간사하게 변심하고 단지 입맛이 없다는 이유로 산해진미앞에서도 변덕을 부리건만.  

인생을 걸 만한 맛집이 있다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매일 아침 강진으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줏대없고 변덕스러운 나의 입맛을 사로잡은 건 전라남도 강진의 남도 밥상이다. 

3, 4년간 취재와 여행으로 강진의 산해진미를 맛볼 수 있었는데, 그중에 아주 특별한 밥상이 있었다. 

입안이 깔깔한 아침인데, 막상 먹다 보면 밥 한 그릇을 싹 비우게 되는 아침 백반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평범해보이지만 결코 무난하지 않은 반찬마다 정성이 고스란히 배어든, 요리 잘하는 엄마의 밥상이었다. 

  


아침 밥상을 한정식처럼 받고 나니 진짜 한정식 상차림의 비주얼이 기대되어 메뉴판을 다시 쳐다보았다.

메뉴판에는 백반 가격이 따로 적혀 있지 않다. 8천원짜리 백반에 반찬을 좀더 추가하면 가격이 올라간다.

언젠가 강진에 가면, 우리식당 한정식을 시도해 볼 생각이다. 특으로 주문하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서.



오케이 식당의 아침 밥상앞에서 잠도 덜 깬 눈이 휘둥그레해질 만큼 으리으리한 밥상을 받았다. 

이곳 사람들은 아침마다 이렇게 많은 반찬으로 아침 상을 받는건가 궁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던.

남도의 밥상답게 소소한 해산물과 묵은김치, 신선한 나물이 가득하고 밑반찬도 골고루 맛깔스럽다. 

직접 젓갈을 담고 숙성하는 정성없이 절대 낼 수 없는, 깊은 맛의 김칫국이 더할 나위없이 개운했다. 


  

강진 사의재 주막에서도 아침 밥상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저녁 밥상으로 '다산 밥상'을 받았다. 

숙소는 사의재에서 가까운 한옥체험관 안채의 홍실이었다. 막걸리 한 잔에 사르르 여독이 풀렸다. 

사의재(四宜齋 )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 머물렀던 주막을 재현한 곳이다. 



다산이  강진에 유배되었을때, 주막 '동문매반가'의 주모가 이를 안타깝게 여겨 주막의 방 한칸을 내주었는데, 그 방이 사의재다. 마음을  잡지 못하고 술로 허송세월하던 다산은 주모의 배려로 4년동안 기거하며 <경세유표> 등을 집필하고 실학사상을 집대성했다. 사의재 주막의 메뉴는 다산이 즐겨 먹었다는 아욱된장국이다. 



방문에 걸린 종이 메뉴 판에는 그저 '다산 밥상, 아욱된장국'이라고 소박하게 적혀 있다. 

다산의 인간적인 삶과 에피소드가 전해지는 사의재에서 다산의 밥상은 정겹고 구수하다. 

아욱된장국과 바지락전이 인기 있다. 바지락 초무침과 굴전과 간재미찜도 기대되는 메뉴다. 

아욱국이 구수하고 맛있는데다 주인장의 음식 솜씨가 남다르다. 정갈한 밥상도 믿음직하다.

  


다산의 제자, 황상은 다산 선생과 추사 김정희 선생을 초대하여 기장으로 지은 밥에 아욱국을 끓여 아침밥상을 차렸다는, 일화가 있다. 가을 아욱국은 문을 걸어 잠그고 먹는다는 옛 속담도 전해지는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맛에 대한 관심은 지극하다. 구수한 된장국과 말랑하게 익은 아욱을 한 입에 넣으면 감미로운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운다. 안타까운 건, 아침에 먹을 수 없다는 것. 사의재는 점심과 저녁 식사시간만 이용할 수 있다. 사의재 주막의 별미, 바지락 초무침도 바지락이 가장 맛있어지는 봄날의 4월과 5월에만 먹을 수 있다. 


#인생맛집 #강진백반로드 #강진우리식당 #강진오케이식당 #강진사의재주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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