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강차 Jun 12. 2022

나의 아름다운 경험에게

<#일상에서 건져 올린 시처럼 생긴 것들>

갑작스레 비가 메마른 땅을 적시기 시작했어

안돼!

경고등이 켜지고 말았지

메마른 몸과 마음이 속수무책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하더니

가장 오래된 샘의 밑바닥에서 역류! 역류! 역류!

숨이 막힐 때까지 참다가 결국에는 놓아버렸어

흘러넘치는 것을 받아먹고 삼키고 닦고 

또 받아먹고 삼키고 닦고     


끝까지 가보자 했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이소라의 ‘신청곡’을 듣기 시작했어 

♪창밖엔 또 비가 와 이럴 땐 꼭 네가 떠올라~♫

눈동자에 갈래갈래 갈라진 은빛 커튼이 쳐지자

드디어 네가 나타났어

안녕?

알아

.

.

.     


보이지 않는 네 안의 너를 진짜 좋아해

외로움을 파 먹은 너의 공허한 눈을 좋아해

할 말을 모두 쳐낸 너의 가느다란 혀를 좋아해

시뻘건 봉합 흉터들이 있는 네 슬픈 심장을 좋아해

잘려나가 수호신의 발이 된 네 발가락을 무엇보다 좋아해     


요즘 너는 누구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이니?

나는 닿을 수 없는 너에게 말해

어떤 기대도 욕망도 품을 수 없을 때

그때가 바로 사랑이라는 몸의 곡선을

진짜로 알고 만질 수 있지

그때 우리는 사랑한 게 아니야

벼랑 끝에서 서로를 위무한 거지

죽지 말라고     


비가 그쳤어 음악도 멈췄고 

나는 다시 너를 저 어둡고 고요한 계곡에 묻어

너라는 아름다운 경험을

우리라는 서글픈 신화를

여름이네

자주 만나겠지만

이제 덜 아프고 싶다


<이소라의 '신청곡'을 듣고 쓴 이야기>

작가의 이전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용기 So, it's m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