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른 딸이 되자>- 중에서
이제 나는 나라는 한 인간이 그의 딸임을 받아들인다. 더 이상 그가 부끄럽지도 내가 부끄럽지도 않다. 그저 우리는 가족끼리 서로의 역할에 지나치게 ‘높은 이상’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서로에게 적당히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며 살았어야 했는데 너무 밀착되어 ‘나와 너’를 구별하지 못한 것이다. 한마디로 ‘거리 조절에 실패했다.’ 그것이 자신의 존엄과 품위를 지키지 못하고 서로를 존중하지도 못하는 ‘비매너 가족’이 되게 한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손 씻기와 기침 예절은 나와 가족을 지키는 최소한의 예의’라는 광고 문구가 있다. 이를 조금만 달리 바꾸면 가족 간에는 손과 입을 조심히 다루어 나와 가족의 마음 건강을 지키는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한 것이다.
“소녀 시절에 그와 나 사이에 찾아온 그 거리” 『남자의 자리』에서 참 마음에 든 표현이다. 그것은 아예 끝난 사이가 아니라 단지 간격을 좁힘으로써 아빠와 나 사이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표현으로 해석되었다. 아직은 아빠의 손을 잡는다거나 안아드린다거나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편해졌고 내 마음에서 자비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평생을 무뚝뚝하고 도도한 딸인 내가 학교 아이들과 지인들에게는 잘도 하는 ‘포옹’과 ‘사랑해’라는 말을 이제는 천천히 시도해봐야겠다.
어찌 된 연유인지는 모르나 초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인가 아빠와 동네분들과의 물놀이에 혼자 따라가게 된 그날이 떠오른다. 관광버스를 타고 변산반도에 놀러 갔던 날.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아빠와 단둘이 찍은 사진 속에 그는 노란색 사각 수영복을 입고 있었고 나는 분홍색 꽃무늬 원피스 수영복에 꽃 수술이 덕지덕지 달린 수영모를 쓰고 있었다. 아빠는 환하게 웃고 있었고 나는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팔이 닿지 않는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이제라도 그 간격을 좁혀보고 싶다. 분명 아빠는 기다리고 있으실 거다. 내 앞에서는 한 번도 표현하지 않으셨지만 주변에는 침이 마르게 자랑하고 다니셨던 그 딸이 먼저 손을 내밀어주기를. 자기 안에 흥과 꿈을 모두 억누르고 자식들이 번듯하게 자라기를 바라셨던 그 거친 손을 잡아주기를. 그날 관광버스에서 아빠는 기분 좋게 술 취하신 듯 마이크를 잡고 내리 몇 곡을 멋들어지게 부르셨다.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노랫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거~언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우~네.’, ‘젖은 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잡아 본 순간~ 거칠어진 손마디가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아빠와 꼭 한 번 노래방에 가서 손을 잡고 이 노래들을 불러보고 싶다.
앞으로는 아빠에 대한 좋은 기억만 떠올릴 수 있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에서 아들러 심리학의 일인자인 기시미 이치로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는 바꿀 수 있습니다. 과거 또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어서,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사람의 ‘지금’이 달라지면 그에 따라 과거 역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나는 아빠에 대해 ‘나쁜 부모’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무수히 많은 기억 중에 안 좋은 기억들만 떠올렸다. 아들러의 목적론의 관점에서 보면 실은 아빠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아빠에게 다른 딸처럼 살갑게 대하지 못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랬을 수도 있다.
아빠에 대한 왜곡된 기억을 바꾸는 데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도 한몫했다. 주인공 폴은 이모들이 꾸며낸 거짓 이야기로 인해 아빠가 엄마를 죽게 한 장본인으로 생각하고 그를 증오하며 산다. 하지만 그가 마담 프루스트를 만나 잘못된 기억을 바로 잡고 좋은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서서히 마음의 치유가 일어난다. 이 영화에서 뇌리에 강하게 남는 문장이 있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맞다. 기억도 선택의 영역이다. 오래된 기억 창고에서 진정제를 꺼낼 것이냐 독약을 꺼낼 것이냐는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나는 이미 진정제를 선택한 이상 최대한 아빠와의 좋은 기억들만 건져 올리련다. 그게 관계 개선의 첫 단추일 테니까. 무엇보다 감사하게도 스스로를 치유하고자 하는 삶에 대한 열정과 추진력은 모두 그에게서 온 것임을 늦게나마 알았기에.
드디어 나는 알을 깨고 한 발을 내밀었다. 그 발은 단순한 발이 아니다. 아주 예민한가 하면 편안하고, 까칠한가 하면 따뜻하고, 단순한가 하면 깊이를 알 수 없는 발이다. 눈도 달려 있지 않고 귀도 없지만 놀라운 감지력으로 세상의 온도와 바람의 방향과 사람의 시선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는 기이한 발이다. 그 발이 말한다. ‘나도 까짓것 세상에 발을 내딛고 살 테다. 과거는 잊고 건강해진 나를 바로 세워 앞으로 나아갈 테다. 내 아이의 멋진 엄마라는 타이틀을 달고, 내 아빠의 자랑스러운 딸이라는 이름을 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