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예술도 체험이다. 몸이 답이다

365 모두를 위한 그림책테라피

by 고은혜

“작품이란, 작가라는 존재가 자신을 밀어 넣어 세계와 부딪힌 흔적이며, 그가 가진 감정과 몸의 기억, 존재의 증거다. 우리는 이를 눈으로 ‘보는’ 데서 그치지 말고 그것에 ‘들어가야’ 한다. 그것은 체험이다.”


예술 기획자이자 작가인 박원재는 『예술은 죽었다』에서 예술이 단순 감상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체험’이라는 키워드를 강조한다. 그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나 역시 일상에서 미술관을 찾아도 대부분 벽에 걸린 작품 앞에서 감상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원주 뮤지엄산에서 영국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작업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돌아왔다.

<아트 부산 제공>

처음엔 작품에 손상을 입힐까 봐 조심스러웠다. 손을 허벅지에 붙인 채 작은 발걸음으로 공간을 지나다녔다. 그런데 사진을 찍으며 그 안에 조금 오래 머무는 동안 마음이 풀어졌고, 작품과 교감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시작은 곰리의 설치작품 <Orbit Field Ⅱ>. 수십 개의 대형 스틸 원형 구조물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빽빽하게 이어진다. 인생이란 게 직선이 아니라, 불규칙하게 반복되는 곡선의 연속이 아닌가. 작품은 우리가 지나온 삶의 굴곡이 연속된 풍경처럼 보였다. 이 교차하고 시간이 겹쳐지는 그 안에서 작가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인생은 넘으라고 있는 거야. 걱정 말고 그냥 넘어가. 길을 잃어도 괜찮아. 새로운 길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네가 너로 서 있기만 하면 돼.”

이후에 본 BBC 다큐멘터리는 곰리의 의도를 더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석고로 감싸 틀을 뜨고, 그때 느껴지는 감각을 그대로 작품 안에 담는다. 몸을 감정과 감각을 경험하는 장소로 본 것이다. 그가 왜 이런 고행을 택한 걸까.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의문점이 해결되었다.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불교를 공부했고, 호흡과 감각에 대한 알아차림 명상을 오래 실천해 왔다는 것. 몸이야말로 존재 탐구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체득한 사람인 것이다.

@Antony Gormley

예술가라기보다 구도자 같은 그의 모습을 보는 내내, 한 인물이 겹쳐졌다. 생김새며 삶의 철학이 비슷한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 불교와 명상을 통해 몸과 마음이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고 실천한 대가들답게 평온하고 해맑은 얼굴이 닮았다. 문득 붉게 녹슨 철로 만든 <BlockWorks> 시리즈인 인체 조각들 곁에서 같은 포즈를 취할 때, 헤르만 헤세의 <삶을 견디는 기쁨>이 떠올랐다. 그 책 속 문장들이 이들이 속삭이는 말과 다름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고통은 네가 막아 내려고만 하기 때문에 아픔을 주고 네가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고만 하기 때문에 너를 쫓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도망치지 말고, 변명하지 말며, 무서워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그것을 사랑하라.” 바로 이 문장이다. 그런데 곰리의 일곱 개의 몸들은 즉각적인 조언 대신 다정하게 이끌어 줄 것 같다. 이렇게. “내 곁에 가까이 와도 돼. 나처럼 이렇게 가만히 있어 봐. 눈을 감고. 불필요한 생각은 하지 말고. 그냥 있어 보는 거야. 어때? 요즘 힘든 일 있어?”라고.

헤세의 문장이 준 깨달음으로 실제 몸이 나아진 경험이 있다. 두통을 오래 겪던 시절, 진통제 뒤로 숨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변명하며, 고통이 또 찾아올까 두려워했었다. 그 두통은 단지 통증이 아니라, 너무 잘하려다 몸을 혹사한 데서 온 집착이었다. 몸이 보내는 “좀 멈춰줘”라는 신호였고, 어쩌면 “재미있는 걸 좀 체험하게 해줘”라는 몸의 어리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도 머리가 살짝 아플 것 같은 신호가 오면 하던 걸 내려놓고 몸이 원하는 걸 한다. 걷든지, 달리든지, 맛있는 걸 해서 먹든지.


몸과 공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는 예술가답게, 곰리는 ‘형식’보다 ‘존재적 질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는 누구이고,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도 간혹 하루를 성찰하고 싶을 때, 곰리처럼 깊은 사색적 질문을 던지고 싶을 때 꺼내 읽는 그림책이 있다. 이 책도 곰리의 인체 조각들처럼 다정하게 말을 걸어온다. 내가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면 다그치지 않고 고요히 기다려준다.


그 그림책은 오사다 히로시 글, 이세 히데코 그림의 <첫 번째 질문>이다.

책은 오늘 하늘을 보았느냐고 먼저 묻는다. 그 질문이 내 안쪽을 가만히 찌른다. 정신없이 분주했던 날일수록 더 그렇다. 책 속 질문들은 질문 자체로 몸의 감각을 깨우고 몸을 자연이라는 공간 속에서 쉬게 해준다. 했는지 안 했는지를 묻는 게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그 경험을 상상으로 체험하게 해준다. 바람의 냄새를, 떡갈나무나 느티나무 아래서 걸음을 멈추어 보는 것을, 지금 있는 곳에서 눈을 감고 소리를 들어보는 것을. 그래서 질문을 한 줄씩 따라 읽어가는 것만으로 몸이 이완되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생각해보면 예술 작품 앞에서 단지 눈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고 목소리를 내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두 가지가 사라진다. 거리감과 소외감. 예술 속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내가 그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느끼는지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객체가 아니라 경험하는 주체로서 작품을 대할 때, 작가가 자신을 밀어 넣어 세계와 부딪힌 흔적을 만질 수 있게 된다. 그때야 비로소 작가의 고통과 우리의 고통이 만나 서로를 위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예술을 더 적극적으로 체험하자. 어쩌면 그들도 우리를 애타게 원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을까. “나 너무 심심해. 와서 같이 놀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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