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모두를 위한 그림책테라피
“죄송합니다.”
수능 마치고 친구들이랑 마라탕 먹고 펌프 뛰고 놀다가 늦을 거라며 기분 좋게 시험장으로 향했던 딸아이가 죄인이 되어 나타났다. 아이는 목칼형틀을 쓴 사람처럼 고개를 깊게 떨어뜨린 채 얼어붙은 목소리로 그 말만 남기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문을 닫고 잠그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 돌아오지 않는 대답. 한참 뒤, 문틈 사이로 젖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또다시 “죄송합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샤브샤브를 먹으러 가려고 했지만 아이는 입맛이 없다며 그냥 집에 있고 싶다 했다. 그리고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이어지는 세 번째 “죄송합니다.”
모든 걸 체념한 듯 아이는 입을 떼기 시작했다. "저... 재수해야 할 것 같아요."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한 마디로 그동안 모의고사에서 받아온 등급에서 한 등급 낮아질 거라는 말이었다. 거의 항상 백점을 맞던 과목마저 흔들렸다고 했다. 고3 내내 일정하게 유지되던 성적이었기에 처음엔 믿기지 않았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이가 담담하게 내뱉는 말 속 진심만큼은 외면할 수 없었다.
다음날 설거지를 하다가 눈물이 흘렀다.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자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온 아이가 받았을 충격과 실망감. 고3 아빠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이백 퍼센트 이상 해온 남편이 받았을 허탈감. 가족들의 기대. 어디 가서 무릎 꿇고 기도하지 않은 내 안일함 때문인가 하는 죄책감. 그 모든 감정들이 나를 참회하게 했다.
역시 부모가 되어 자녀가 흘리는 눈물을 봐야, 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걸까. 잘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했을 때, 아빠의 비난은 내게 큰 상처였다. 교대로 마음을 바꾸어 공부했지만, 아빠와의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그의 따가운 시선과 날 선 말들로 그를 더 미워하게 되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에야 그 시절 아빠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내가 실패할까 봐, 잘못된 길로 갈까 봐 두려워했던 마음을. 딸에 대한 기대가 크고 잘됐으면 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 핑크빛 날카로운 칼을 휘둘렀음을. 미움이 아니라 그 또한 사랑이었음을.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사랑이나 두려움 두 가지 감정 중 어느 한쪽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하지 않나. 그러니까 내가 흘린 눈물은 한마디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칼 대신 눈물로. 반대로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엄마, 나 은행이 적성에 안 맞아. 그만두고 수능을 다시 준비하든, 공무원 시험을 보든 다시 해볼래. 나 한 번만 믿고 1년만 밀어줘." "그래, 해 봐라. 넌 한다면 하는 아이니까." 엄마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무조건적인 믿음. 그녀는 항상 나의 선택을 존중해줬고 내가 실패했을 때도 묵묵히 믿고 기다려주었다. 한 마디로 사랑인 것이다.
애 아빠와 나는 사태를 빠르게 파악하고 우리 방식의 ‘티쳐스 프로그램’을 가족회의에 적용했다. 두려움이 아닌 진화된 사랑에 기반해서. 아이 자신을 ‘도전 학생’으로 보며 이번 성적의 원인을 분석하고 앞으로 어떻게 만회할지 구체적인 솔루션을 함께 이야기했다. 잠깐씩 울먹이기는 했지만 아이는 정확하게 자신의 장단점을 분석했고, 꽤 설득력있는 솔루션을 제시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질문은 하루의 루틴을 어떻게 구성할 건가였다. 이제 학교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오게 될 아이는 스스로 짠 시간표대로 하루를 살아가야 할 테니까.
내년에는 학교라는 집 없이 '재수생'이라는 맨몸으로 살아가게 될 아이.
단정화 글, 그림의 『집 없는 달팽이』를 보다가 주인공 '달파니'라는 민달팽이가 꼭 내 아이 같았다. 집이 있는 달팽이들을 부러워하며 집을 찾아 나선 달파니. 괜찮아 보여, 아무거나 등에 붙였다가 따갑기도 하고, 가벼운 것은 금세 훌훌 날아가 달파니를 허탈하게 만든다. 제집이 아닌 거다. 그러다가 달파니는 자신에게 꼭 맞는 집을 발견한다. 자신의 장점을 알아주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집을.
아이에게 물었다.
"수시는 어려워졌으니 정시로 갈 수 있는 대학에 들어가도 돼. 넌 어떻게 하고 싶어?"
"엄마, 3년을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온 거 정말 원해서 그랬던 거예요. 지금 아무 대학 아무 과나 점수에 맞춰 들어가면 성취감도 없을 거고, 대학에 가서도 열심히 하지 못할 거예요." 아이는 이렇게 말하고서 침착하고 분명한 목소리와 자기 확신이 스민 눈빛으로 몇 마디 덧붙였다.
"어쩌면 이번에 한 번에 들어가지 못한 게 잘된 일일지도 몰라요. 만약 제 스스로 뭐가 부족한지 알고 있는데도 합격했으면 오만한 아이가 됐을 거예요. 저 한 번만 더 믿어주세요. 저도 저를 믿고 해볼게요."
그날 보만 스님의 북토크 도중 <나도 내 마음을 모를 때, 불교심리학>을 펼쳐 보다 아이가 했던 말과 일치하는 문장을 만났다. "세상살이에 어려움이 없길 바라지 말라. 좋은 일만 생기면 교만해지고, 슬픈 일만 생기면 절망하기 때문입니다. 기쁨도, 슬픔도, 결국은 다 지나갑니다." 아이는 이 이치를 어찌 알았을까. 그리고 그림책 속 달파니처럼 아무 집이나 찾으면 그 안에서 행복하지 않을 거란 것도. 그러니 자신의 장점이 진가를 발휘하는 곳,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에 편안하게 몰두할 수 있는 곳을 몇 달 더 노력해서 스스로 찾겠다는 것이다.
1년간의 백수 시절 동안,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에게 계속 물었던 게 기억이 난다. 그 멈춤의 시기. 치열하게 나에게 몰입해 본 시기. 어쩌면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지 않았을까. 사실 직장인의 길에 들어서면 젊음의 어느 한 구간을 뚝 떼어내 내가 살아갈 삶과 일, 진로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볼 기회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두려움을 딛고 도전을 선택했던 까닭은 단 하나. 성취감을 느끼며 내가 나다워질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이가 고작 스물여섯이었다.
그런데 딸아이는 아직 팽팽하고 반짝이는 꿈 풍선을 손에 쥐고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열아홉이다. 실패는 실패가 아니며 오히려 자신을 더 잘 알고 단점을 정확히 파악해 ‘업그레이드’할 기회인 것이다. 운 좋게도 자신의 오만함도 깨달을 수 있는. 그래서 나는 아이의 말에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 옛날 엄마가 내게 주었던 그 따뜻한 지지를 아이에게도 건네며.
"그래, 해봐. 넌 한다면 하는 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