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배다. 앵커링부터 잘하고 보자

365 모두를 위한 그림책테라피

by 고은혜
<화사의 Good Goodbye 뮤비속 한 장면>

어느 날, 올챙이와 애벌레가 만나 순식간에 사랑에 빠져든다. 올챙이에게 애벌레는 그만의 아름다운 무지개요, 애벌레에게 올챙이는 그녀만의 반짝이는 검은색 진주다. 그런데 애벌레가 올챙이에게 하는 한마디 말이 비극의 시작을 알린다. "지금 모습 그대로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줘." 사랑에 눈먼 개구리는 철석같이 변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해버린다. 그러나 동요 가사처럼 시간이 지나자 올챙이는 '앞다리가 쑥, 뒷다리가 쑥, 팔딱팔딱 개구리'가 되고 만다. 애벌레는 세 번이나 기회를 줬지만 끝내 개구리로 변한 올챙이를 용서하지 못하고 이별을 통보한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애벌레 또한 나비로 변신하자, 그녀는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이 여전히 올챙이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래서 올챙이를 용서하기로 마음먹고 그를 찾아 나선다. 드디어 황당한 결말 등장. 나비가 연잎에 앉아있는 개구리에게 올챙이의 행방을 물어보다가 개구리에게 잡아먹히고 만 것이다. 이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도 개구리는 태연하게 기다린다. 그의 아름다운 무지개, 애벌레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하면서. 디 엔드.

이 엽기적인 러브스토리는 우연히 참여한 한창훈 소설가 북토크에서 들은 이야기다. 내용이 뇌리에 박혀 집에 돌아와 그 그림책을 찾아보았다. 제목은 <올챙이의 약속>. 책의 전문을 그림과 함께 읽고 싶어 도서관과 서점을 뒤져봤지만 오래된 책이라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내가 아니지. 영문판 발견! 책을 받자마자 곧장 읽어보니 문장과 내용, 그림에 담긴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속 사랑의 속성과 이론이 스토리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나 할까.

서식지가 다른 올챙이와 애벌레가 서로의 다름에 큰 매력을 느끼고 사랑에 빠져드는 시작.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모든 것이 좋다는 환상(그림책에서 좁은 시야를 작은 눈으로 비유한 게 절묘하다). 이 어리석은 태도는 에리히 프롬이 문제 제기를 한 것처럼, 사랑을 '참여하는 활동'이 아닌 '빠지는 감정'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좀 뜨끔하지 않은가. 이런 안일한 태도는 나비에게는 참혹한 결과로 돌아왔다. 자신이 아름다운 나비인 줄, 개구리가 나비의 천적인 줄도 몰라 불나방처럼 사랑이라는 불구덩이에 뛰어들었으니까. 결국 자신을 잃고야 말았으니까. 올챙이는 또 어떠한가. 애벌레의 아름다운 모습에 취해 거짓 약속만 남발하고 자신의 본성을 숨긴다. 무엇보다 무지개빛 날개를 가진 나비를 보고도 자신이 사랑하는 애벌레임을 알아채지 못하고 자신의 욕구만 충족시키는 실수를 범한다. 그로 인해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여전히 환상에 집착해서 살아간다. 과거에 행복했던 기억에 갇혀서.

그럼 이들이 사랑에 실패한 원인을 한 번 분석이나 해보자. 에리히 프롬이 강조한 4가지 사랑의 요소를 대입해서. 이참에 그 옛날 우리의 아픈 사랑도 애도해 보는 게 좋겠다. 먼저 보호 차원. 그들은 서로 다른 종이다. 모습도 다르지만 생활방식 자체가 다르니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게 없다. 보호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공허하다. 말뿐인 찬양만 오고 가면서. 그다음으로 상대의 요구에 대한 책임. 사실 올챙이는 애벌레의 요구에 절대 변하지 않겠다고 거듭 약속을 하지만 한 번도 지키지 못한다. 무책임한 것이다. 이로 인해 둘 사이에 신뢰가 무너져 관계가 깨진 것이다. 세 번째 존경. 프롬은 존경이 없다면 책임은 쉽게 지배와 소유로 타락한다고 했다. 애벌레는 올챙이를 존경하지 않았다. 그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며 그에게 변하지 않을 것을 강요했고, 그의 성장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지 않았다. 마지막 지식 측면. 누군가에 대해 알아야 존경이 따르는 법이다. 알려면 주의 깊은 관찰이 필수다. 그러나 올챙이도 애벌레도 첫눈에 반한 모습에 사로잡혀 상대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도.

이렇게 실패의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 진짜 사랑을 하기 위한 기술을 배워보도록 하자. 나는 프롬이 ‘사랑의 실천’ 편에서 다룬 사랑의 기술 중 다음의 세 가지를 곧 성인이 되는 딸아이에게 알려주고 싶다. 내 경험에 비추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우선 ‘사랑의 능력에 불가결한 조건은 홀로 있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는 말에 200퍼센트 동의한다. 사랑이라는 배가 항해를 시작하면 생각지도 못한 감정의 파도를 만난다. 집착과 조바심, 불안 등. 이때 필요한 도구가 혼자 있을 수 있는 마음의 닻이다. 평정심을 찾기 위해 마음의 바다에 닻을 내리는 앵커링. 나는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한창훈의 『바다어 마음사전』에는 작가의 이모부가 혼자 밤낚시에 나갔다가 앵커링이 되지 않아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아슬아슬한 일화가 나온다. 천만다행으로 4일 만에 배가 제주도에 표착해서 죽음은 면하는 해피엔딩 스토리. 나는 이 아찔한 이야기에서 사랑의 기술이 읽혔다. 사랑에 빠진다는 건 앵커링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앵커링이 안되면 배가 침몰 또는 표류하거나 방향을 잃고 결국 자신을 잃을 수 있듯이, 사랑 또한 위험으로 향한 표류가 불 보듯 뻔하다. 그러므로 튼튼한 마음의 닻을 내릴 줄 아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연인이 없더라도, 연인이 바빠서 나와 함께 하지 못해도 혼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에 닻을 내리고 즐길 수 있도록.

그다음 장착할 기술로 나는 믿음의 기술을 꼽겠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믿음도 가능하다. 즉 내가 선택한 사랑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틀리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것이다. 안희연 시인의 시집 <당근밭 걷기> 중 <갈망>이라는 시에 나오는 시구-‘수많은 이유로 아침을 사랑하고 그보다 더 사소한 이유로 여름을 증오하는 것처럼’ 연인이든 동반자를 향한 사랑이라는 감정은 참 변덕스럽지 않나.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상대에 대한 믿음이 아닌 이토록 가볍고 얄궂은 내 사랑의 감정을 내가 내 편이 되어 잡아줘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추가되는 믿음은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에 대한 믿음이다. 이는 나는 충분히 사랑받을만한 존재라는 믿음과 상통한다. 그러니까 자기 사랑이 충만해야 그 사랑이 넘쳐 상대에게 흘러 들어가 그 마음을 흔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같이 좋은 기술을 갖추고 실천까지 가려면 없어서는 안 될 기술 있다. 바로 용기다. 사랑은 결코 순항을 보장하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전혀 다른 성향의 돌풍을 만나 표류할 수도, 이별 폭풍과의 사투에서 침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알지 않나. 그 후에 더 많은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한다는 걸. 난파하여 배가 다 부서졌어도 어느새 새로운 항해 동반자를 만나 배를 고쳐 다시 바다로 나아간다는 걸. 그래서 필요한 용기는 표류할 용기, 침몰할 용기, 난파할 용기다. 바닷물만큼 짠 눈물도 쏟아내 봐야 내 안에 숨은 달달함이 샘솟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어미로서 내 딸이 차디찬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꼴을 어찌 볼까. 한창훈 소설가도 딸이 뗏목을 타고 이틀만 표류해보고 싶다는 말에 아비로서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 다 차치하고 우선 사람 보는 눈을 키워줘야겠다. 그런데 이 아이러니를 어찌하오리. 사람 보는 안목도 표류하고 침몰해봐야 키워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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