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모두를 위한 그림책테라피
"아직 우리나라에 100년이 넘는 해리티지를 갖고 있는 아동복 브랜드가 전무한데 저희가 감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이왕 한국 그림책의 역사를 처음으로 정리한 책이니 100년은 가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같은 날 '100년'을 논하는 두 여자를 만났다. 아니 두 대표라고 해야 맞겠다. 베베드피노 유아복과 아이스비스킷아동복, 패밀리 라이프스타일 편집샵인 캐리마켓을 운영하는 <더캐리> 회사의 이은정 대표. 그리고 그림책 평론가이자 ALMA상(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실행위원장이면서 용산에 있는 독립 서점<자작나무 책방>의 조성순 대표.
기막힌 우연의 일치다. 전혀 다른 분야에 있는 두 사람 사이에 유사성이 발견되었다. 한 명은 아동패션계에서, 또 한 명은 아동문학계에서 한 획을 그었다는 것만으로 '아동'이라는 공통점이 드러난다. 두 사람 모두 아이의 세계를 가장 가까이에서 다루며, 그 순수함을 ‘패션’과 ‘그림책’이라는 매개로 번역하고 창조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말과 글의 스타일이 닮았다. 끝까지 밀고 나가 뭔가를 이룬 사람에게서 나오는 강한 집념, 그 아래로 흐르는 배려하는 언어들. 어쩌면 그게 좋아 소설책이 아닌데도 이은정 대표가 쓴 <캐리 온>을 한 번에 쭉 읽은 것 같다. 수없이 밑줄을 치고 그 옆에 생각을 끄적이면서. 조성순 대표와는 거의 두 시간 동안 질의응답식으로 독립 서점 운영의 애로 사항과 발전 방향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마치 예정된 인터뷰처럼 자연스럽게.
이들을 알아가면서 다시 한번 배웠다. 모든 창조 활동의 동기는 불편함이라는 걸. 이은정 대표는 큰 딸 솔이에게 입히고 싶은 옷이 없어 자신이 직접 만들어 보자는 마음에서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조성순 대표 역시 한국 그림책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정리된 한국 그림책의 발전사가 없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렇다면 내가 직접 써보겠다는 마음으로 <한국 그림책의 역사>를 썼다고 한다. 언젠가, 누군가 대신해 주겠지 라며 기다리지 않고 불편함을 스스로 해결한 것이다.
이것만 봐도 그녀들의 가장 큰 공통점이 보인다. ‘행동력’.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한 주도성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게 만들었다. 이은정 대표는 캐리마켓에서 다양한 팝업을 기획하고 다른 브랜드와의 협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녀는 새로운 팝업을 기획하는 일이 재미있어서 하고 싶은 걸 원 없이 했다고 고백한다. 조성순 대표도 만만치 않다. 아동문학평론가로서 행사를 기획해 본 경험이 없고, 책방을 운영한 지 일 년 반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도 다양한 북토크와 독서모임을 진행해오고 있다. 그녀도 몰랐단다. 자기한테 이런 기획 능력이 숨어 있을 줄.
그중에도 그녀들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는 특별한 행동이 있다. 소아암 병동에서만 지내야 하는 아픈 아이들에게 화사한 옷을 보내는 <더캐리>. "제가 태어나서 입어본 옷 중에 가장 밝고 예쁜 옷이었어요." 이런 문구가 적힌 손편지를 읽고 이은정 대표는 펑펑 울어버렸다. 같은 엄마로서 그 마음에 충분히 공감이 간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그 따사로운 진심은 강남 세브란스 병원의 난치병 연구 기금 전달로 이어지고 있다. 조성순 대표는 <자작나무 책방> 1주년을 맞아 '100명의 어른이 100명의 어린이에게'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였다. 오랜 기간 병원에 머무느라 교육을 받기 어려운 아이들에게 작은 기쁨을 주자는 취지다. 그녀는 연세암병원 병원학교와 연을 맺고 100명의 어른을 모집하여 책과 손편지를 병원에 전달했다. 이 따뜻한 프로젝트는 책방 생일에 맞춰 매년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자신이 조금밖에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저지른 이는 없다." 이들은 영국의 철학자인 에드먼드 버크가 큰 잘못이라고 지적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 정확히 반대되는 사람들이다. 그녀들은 안 것이다. 무행동보다 작은 행동이라도 실천하면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그런데 아무리 행동력이 대단한 그녀들이라고 하지만 실수와 실패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녀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실패가 두려워 중도에 포기하고 싶을 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느냐고. 이 그림책이 그녀들을 대신해 대답해 줄 수 있을 듯하다.
코비 야마다 글, 엘리스 허스트 그림의 <돌을 다듬는 마음>.
스승 조각가가 어린 제자에서 전하는 담담한 위로의 말 중 실패자가 된다는 건 무언가를 뜨겁게 사랑했고, 온 마음을 주었다는 문장이 가장 와 닿았다. 우리가 실패라는 말을 아무 때나 쓰지는 않지 않나. 무언가에 진심이었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을 때 쓰는 말이다. 그러니까 실패했을 때, 자신을 비난하지 말고 먼저 감싸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새 마음을 가지면 된다. ‘근사하게’ 해내겠다는 무거운 마음 말고, ‘기꺼이’ 실패할 수 있다는 가벼운 마음을. 하지만 이게 말이 쉽지, 실패할 수 있다는 마음을 먹기 어디 쉬운가. 어쩌면 그녀들도 이 두 마음을 왔다 갔다 하면서 버틴 결과 성공에 이르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같은 날 100년을 언급하며 나타난 두 ‘행동력 대장’ 대표도 그들만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조각가가 어린 제자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혼자 가는 길이 외롭더라도, 진정성을 잃지 말라고. 더 멀리 보고 단단하고 건강하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그나저나 100년은 너무 까마득하다. 우선 10년 후를 보고 가자. 조용히 입을 닫고 그냥 하자. 딱 10년만 기꺼이 실패하면서 버텨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