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F, EV/EBITDA, PER, PBR과 회계 항목과의 연관성
오늘은 기업가치 평가, 즉 밸류에이션(Valuation)과 회계(Accounting)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업가치는 재무모델이나 투자 배수로 평가된다고 생각하시지만, 그 기반에는 반드시 회계 정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회계는 단순히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도구가 아니라, 기업가치를 수치화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제공하는 전제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DCF(Discounted Cash Flow), EV/EBITDA, PER, PBR 등 주요 밸류에이션 지표들이 어떤 회계 항목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지를 짚어보겠습니다. 특히 실무에서 자주 접하는 회계 왜곡 사례와, 이를 어떻게 걸러내는지가 기업가치 평가의 품질을 결정한다는 점을 강조드리고자 합니다.
기업가치는 결국 미래의 현금흐름이나 수익력을 현재 시점에서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수치로 바꿀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이 과정에서 사용하는 모든 데이터는 회계에서 출발합니다. 예를 들어 DCF 모델에서는 과거 손익계산서와 재무상태표를 바탕으로 미래 Free Cash Flow를 추정합니다. EV/EBITDA 배수는 회계 기준에 따라 산출된 EBITDA를 기반으로 하며, PER은 순이익, PBR은 자본총계를 기반으로 합니다. 따라서 회계 정보가 왜곡되거나 일시적인 항목이 많으면, 이를 기반으로 한 밸류에이션 결과도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사모펀드나 전략적 투자자들은 투자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 회계 수치가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는지 검증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칩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조정 EBITDA(Adjusted EBITDA)’나 ‘정상화된 순이익’도, 결국은 회계상 이익에서 비정상 항목을 제거해 보다 실질적인 수익력을 파악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따라서 회계를 모르고 밸류에이션을 한다는 것은, 기초가 흔들린 모델 위에 집을 짓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DCF는 가장 이론적으로 정교한 밸류에이션 방식으로, 미래의 FCF를 현재가치로 할인하여 기업가치를 산출합니다. 이때 FCF는 영업활동현금흐름에서 CAPEX와 운전자본 변동을 차감하여 계산되며, 모두 회계상 손익계산서와 재무상태표의 항목에서 추출됩니다. 예를 들어 감가상각은 비현금성 항목으로 영업현금흐름을 증가시키지만, 회계정책에 따라 그 금액이 조정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감가상각 정책인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V/EBITDA는 거래 밸류를 산정할 때 많이 사용하는 지표입니다. EBITDA는 회계상 영업이익에 감가상각을 더한 값으로, 손익계산서에서 직접 산출되지만, 일회성 비용이나 비경상적 항목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수치가 크게 달라집니다. 실무에서는 이를 ‘조정 EBITDA’로 정리해 정상화(Normalization) 작업을 진행하며, 이 과정은 전적으로 회계 해석과 판단에 기초합니다.
PER은 주가 대비 순이익 배수입니다. 여기서 순이익은 회계상 당기순이익을 의미하며, 발생주의 회계 기준에 따라 측정됩니다. 하지만 실제 수익구조가 안정적인지, 일회성 이익이 포함되어 있는지, 세금 효과가 과대 반영된 것은 아닌지 등은 회계적 분석 없이는 판단이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PBR은 자산가치 평가인데, 자본총계가 과거 재평가, 이연손익, OCI 항목 등으로 인해 왜곡되어 있을 경우, 단순한 수치만으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M&A 거래 실무에서 밸류에이션을 진행할 때는 먼저 회계정보 검토부터 시작합니다. 실사(FDD) 과정에서 손익계산서상의 매출, 비용, EBITDA 등 주요 항목을 정상화하고, 비경상 항목은 별도로 조정합니다. 예를 들어, A회사가 최근 대규모 구조조정 비용을 반영해 순이익이 급감한 상황이라면, 이 비용이 반복되지 않는 항목인지 검토한 후 조정 EBITDA를 다시 산출합니다. 이런 정제된 수치를 기반으로 EV/EBITDA 배수를 적용하고, 거래 금액을 도출합니다.
DCF를 활용하는 경우에도 회계 기반 자료를 활용해 과거 3~5개년의 실적 흐름을 분석하고, 미래 현금흐름을 추정합니다. 이때 감가상각비, 운전자본 회전일수, 자본적 지출 수준 등은 전부 회계처리의 결과물이므로, 신중하게 가정되어야 합니다. 회계상 숫자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제 현금흐름과 일치하는지를 판단하는 ‘회계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인수금융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EBITDA가 과도하게 조정되었거나, 감가상각을 비정상적으로 낮게 잡은 경우에는 금융기관이 실제 DSCR(부채상환능력)을 낮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회계적 보수성 없이 산출된 EBITDA는 레버리지 구조 설계에 치명적인 오류를 남길 수 있기 때문에, 회계와 밸류에이션은 실무적으로 철저하게 함께 움직입니다.
회계는 숫자를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기업의 실체를 수치로 번역하는 언어입니다. 밸류에이션이란 이 언어를 읽고 해석하여, 미래 가치를 현재 시점에서 계산하는 작업입니다. 따라서 회계 정보의 질과 신뢰성이 곧 밸류에이션의 정확성을 좌우하며, 회계적 이해 없이는 기업가치의 진실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기업가치를 평가할 때, 단순히 수치를 가져다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수치가 만들어지는 구조에 대한 회계적 통찰이 필요합니다. 감가상각이 어떤 정책에 따라 계산되었는지, 순이익에 포함된 일회성 항목은 무엇인지, 운전자본이 일시적으로 왜곡되었는지 등을 스스로 질문하고 검증할 수 있어야 실무자가 됩니다. 오늘 이 글이 회계와 밸류에이션을 하나의 연속선상에서 바라보는 계기가 되셨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