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신_4. 망각의 이유

by 알수없음


아기들은 순수하다.
티끌 한 점 묻지 않은 새하얀 순면처럼 깨끗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것은 때로 '착하다, 선하다'는 말로 번역되곤 한다.

하지만 이 상태는 선과 악이라는 기준 없이, 편견 없이, 그저 존재한다는 상태에 가깝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나쁜지 판단할 기준도 근거도 없다.

본능과 감각에 의지한 채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그 외에는 중요한 것이 없다.


아기는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는

정체성이 비활성화된 채 태어난다.

우주의 초기 규칙과 초기 패턴 아래 태어났으면서도

자신의 설정값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하나다.

왜 인간은 망각한 상태로 시작해야 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모르는 상태에서만 관찰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관찰은 질문을 만든다.

질문은 탐색을 유도한다.

탐색은 충돌을 일으킨다.

충돌은 패턴을 드러낸다.

드러난 패턴은 인식을 넓힌다.


하지만 정답을 알고 있다면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다.
관찰하지 않고, 충돌하지 않는다.


신은 이 단순한 원리를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자기 인식의 확장이라는 존재 목적마저 감추었다.
은폐가 아니라 성장 조건으로서다.


자기 인식을 위한 확장이라는 목표가 드러나면

목표로 향하는 최적값 외에는 모두 실패가 된다.

목표 없는 확장, 가능성을 모르는 가능성은 사라진다.

궁극적으로 자기 인식의 확장 또한 서서히 느려지다가 결국 멈춘다.


따라서 망각은 확장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된다.


(물론 아주 가끔, ‘망각’을 망각한 아이들이 등장한다.

몇몇 아이들은 서너 살 무렵 자신이 이전 생을 살아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의 말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구체적이고, 기록된 사실과 부합하기도 한다.

이 현상의 진위와는 별개로, 이러한 기억은 대부분 여섯 살을 넘기며 사라진다.


그들이 결국 망각에 성공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기억을 유지한 채 새로운 세계로 들어오는 존재는 적응이 느리기 때문이다.

기억이 강할수록 아이들은 과거의 감정과 습관을 현재의 삶보다 우선시하게 된다.

과거의 구조가 현재의 탐색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이 사라지면 현재 세계가 보인다.

관계를 다시 맺고, 언어를 익히고, 새로운 규칙을 배우며 존재를 확장한다.

인간은 망각한 후에야 비로소 이번 삶의 탐색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결론은 하나다.

인간은 기억을 잃어서 방황하는 존재가 아니다.

방황을 위해 기억을 잃어야만 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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