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신_6. 의도

by 알수없음



선택이라 불리는 것의 바탕에는 언제나 의도가 깔려있다.


"무엇을 위하여"

인간은 자신이 의도를 바탕으로 선택하는 존재라고 믿으며 스스로를 설명해왔다.


하지만 의도는 결코 행동을 끌어내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보자.


감정이 발생하고, 충동이 방향을 만들고,

그중 가장 마찰이 적은 방향으로 행동이 실행된다.

인간 내부에는 하나의 충동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향의 압력이 동시에 작동한다.

자신의 충동과 다른 선택을 했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지만,

실제로는 더 큰 압력을 회피하고

더 작은 압력을 견딘 결과에 불과하다.


의도는 모든 행동이 끝난 뒤에야 선택과 함께 등장한다.

선택을 정당화하는 도구로써.


가령 이런 식이다.

"나를 보호하기 위하여"

"모두의 이익을 위하여"


이것은 최소한의 마찰을 향해 흘러간 상태를 기술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자기 자신을 하나의 일관된 존재로 유지하기 위해

감정적으로 불편하지 않은 설명을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다.

공통점은 의도가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정체성의 보호 장치로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이토록 의도와 선택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의도는
우연을 선택으로 바꾸고,
충동을 결단으로 바꾸고,
반응을 책임으로 바꾼다.


따라서 의도가 사라지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자신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삼을 수 없다.


인간이 스스로를 신의 자기 인식 과정에서 분리된

고유 개체로 느껴야 하기에,

인간은 '의도'와 '선택'이라는 환상을 계속해서 사용한다.

만약 인간이 스스로 사건의 통과 경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인식했다면 탐색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확장을 멈추지 않는 한 의도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생성된다.

의도와 선택이 있다는 착각 덕분에 실패하고, 후회하고, 다시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관찰이 쌓이고 패턴이 드러나며 인식이 확장된다.

신의 자기 확장이라는 목적에 다다르기 위해

인간은 자신을 망각하고, 의도와 선택이 있다는 착각아래, 자유를 소비해온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안다.

의도와 선택, 자유조차 모두 구조적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존에 믿어왔던 개념이 무너진 자리에서 만나야 할 질문은 하나다.


지금까지 진리라 믿어온 개념들은 어디에서 만들어졌는가.

아직도 기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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