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와 도전의 의미
What is Project?
이제부터는 불확실한 프로젝트에 도전하되 어떻게 하면 효과적이며 효율적으로 최종 목표를 성실히 달성해 낼 수 있을까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도전이라는 부분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프로젝트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PMBOK에서 정의하는 프로젝트란 'A temporary endeavor undertaken to create a unique product, service, or result'입니다. R&D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이것에 해당합니다. Result에는 실험데이터가 해당될 수 있고, service에는 논문이나 보고서가 될 수 있으며, product는 개발 시제품이나 새로운 소재 등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정의에서 핵심적인 말은 temporary와 unique입니다.
Temporary 하지 않으면 프로젝트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냥 주구장창 언제까지 하든 상관없으니 일단 하고 보자는 식이면 프로젝트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프로젝트라고 하는 것은 기간이 제한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으로 unique 하다는 것은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 즉 독특한 것, 독창적인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이라는 것은 이전까지 전혀 없었던 새로운 것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이전에 있었지만 이전보다 좀 더 업그레이드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작성하는 논문이 이전 논문보다 새로운 것이 없으면 논문 게재가 되지 않겠지요. 뭔가 전임자가 발표한 것보다 새로운 것이 추가되어야 unique한 논문이 될 수 있어 게재가 가능해집니다.
그러면 도전(challenge)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건데, 이 개념은 unique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Unique하기 때문에 도전할 이유가 있는 것이므로. Challenge란 'something new and difficult which requires great effort and determination'이라 해서 상당한 노력과 결단력을 통하여 새롭고 어려운 어떤 것을 창출해 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unique한 일이라면 모두 도전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도전이란?
도전(挑戰)이란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한자를 풀어서 해석하면, 도(挑) 자는 손 수(扌)와 억보다 많은 조(兆)로서 엄청나게 많은 시도를 한다는 뜻이며, 전(戰) 자는 입 구 두 개(吅)는 같이 먹고사는 식구를 의미하므로,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밭이나 들판(田)에 나가 여러 날(十) 동안 창이나 쟁기와 같은 도구(戈)를 가지고 사냥이나 농사를 짓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식구를 먹여 살린다는 것은 가치적인 측면에서 도전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전할만한 ( )’이라고 할 때, 괄호 안에 가장 많이 들어갈 수 있는 말이 가치일 것입니다. 즉, 도전이라는 단어와 가치라는 단어는 한 쌍으로 같이 붙어 다니는 말로 볼 수 있습니다. 가치적 입장에서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도전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도전적인 일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전혀 가치가 없는 일인데도 해야 한다면, 과연 도전할만한 동기(motive)가 생길 수 있을까요? 물론 생길 수도 있겠죠. 호기심 때문에 재미로 하는 프로젝트라면. 그러나 프로젝트를 실행해야 할 당위성(justification)을 찾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도전은 가치와 일맥상통하는 단어로 해석하고 대해야 합니다.
High Risk, High Return
도전적인 시각에서 '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구절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 문장 또한 사람들이 종종 잘못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Risk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return도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항상 사실이 아닙니다. 'High Risk, High Return'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자신에게 100억 원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석유 시추를 한 번 하는데 100억 원이 들지만, 성공하면 1조 원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석유 시추를 한 번할 때 성공할 확률은 10%입니다. 이런 경우 석유 시추에 도전을 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만약 이런 경우 도전을 한다면, 이것은 도전이 아니라 무모한 짓입니다. 도전이라는 것은 터질 가능성이 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1,000억 원을 가지고 있다면, 도전을 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당연히 도전해야 합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짓입니다. 왜냐하면 100억 원씩 10번 시도하여 한 번 성공하면 1조 원을 얻을 수 있으므로 기대수익률이 10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High Risk, High Return'은 이런 경우에 사용하는 말입니다.
수중에 100억 원만 있을 경우에는 이러한 'High Risk, High Return' 프로젝트에 도전해서는 안 됩니다. 1,000억 원이 있을 때 도전하는 것입니다. 즉 'High Risk, High Return'은 미국과 같이 절대적인 투자액이 큰 나라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대한민국의 GDP 대비 R&D 투자금은 세계에서 상위권에 속합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액수로 따지면 미국의 10분의 1도 되지 않습니다. 위의 경우에 비유할 수 있겠죠. 우리는 100억 원을 가지고 있지만 미국은 1,000억 원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는 석유 시추 프로젝트에 도전하면 안 되지만 미국은 도전해도 됩니다.
우리는 가지고 있는 자본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투자에 있어서 좀 더 주도면밀하게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가 잭 팟(jackpot)이 터질 수 있는 세계 최초이자 세계 최고의 프로젝트를 수행하지 못하고, 선진국이 가는 길을 뒤따라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High Risk, High Return’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 있는 실제 R&D 자금이 미국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가능한 이유는 투자 성공률이 10 중 1 또는 2 정도인 합리적인 통계에 기반을 두고서 기축통화의 지위를 활용하여 충분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우리는 어떤가요? 혹시 우리나라의 프로젝트 성공률이 몇 % 인지 아시는지요? 95에서 99%에 육박합니다. 과연 95% 이상의 성공률이라는 수치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일까요?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설득력 있는 통계 수치를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합리적인 관점에서 10~20%의 성공 확률을 고려하여 어떻게 'High Risk, High Return' 프로젝트에 펀딩할지를 전략적으로 결정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연계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비합리적인 성공률의 통계 수치를 가지고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데 큰 문제가 있습니다.
First Mover
세계 최초의 도전적 프로젝트를 제안하라고 해서 누군가 새롭고 독창적인 R&D 주제를 제안한 경우에, 만약 심사위원이 해당 주제에 대해 선진국에서 연구하고 있는지, 해외 연구동향이 어떻게 되는지를 물으며 그 정당성을 확인하려 든다면 이는 모순이 아닌가요? 제안한 프로젝트의 주제가 이미 다른 나라에서 연구되고 있는 것이라면, 그 프로젝트가 세계 최초라는 주장은 약해집니다. First mover가 되려면 외국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세계 최초 아이템에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애플에서 스마트폰이라는 세상에 없던 새로운 콘셉트(concept)의 아이폰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을 때, 그전에 삼성에서 그와 유사한 소형 태블릿 PC를 출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손바닥만 한 크기의 PC로 현재 스마트폰에 탑재되어 있는 기능들이 거의 대부분 들어 있었습니다. 컴퓨터로도, 자동차에 장착하면 내비게이션으로도, 사진을 찍을 수도, 음악을 들을 수도, 스카이프(Skype)를 깔아 전화를 걸 수도 있었습니다. 현재 스마트폰에 들어있는 대부분의 기능을 다 가지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삼성은 왜 스마트폰이라는 것을 못 만들어냈을까요? 애플과 같이 새로운 생태계를 여는 first mover로서 도전하지 않은 데에 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모 국가연구소에서 아이폰이 나오기 훨씬 전 스마트폰과 같은 새로운 개념의 통신기기 개발을 정부에 제안했었는데, 외국 어디에서도 그런 것을 개발하고 있는 사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스마트폰을 먼저 개발해 세상에 선보였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남이 내준 문제를 푸는 데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문제를 만드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설령 국내의 천재적인 누군가가 새로운 문제를 제안하기라도 하면 ‘그게 과연 되겠어?’라고 의심부터 하며 받아들이기를 주저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생태계를 열 세계 최초의 기술에 도전하기보다는 선진국에서 이미 시도하고 있는 아이템 중 성공할만한 것을 취사선택하는 데만 겁겁합니다. 그곳에 투자했을 때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죠. 세계 최초면 성공할 확률이 보장되지 않으므로 하지 말라는 식인 거죠. 그런데 미국은 어떻게 그러한 곳에 투자를 할 수 있는 것일까요? 다른 나라에선 꺼려하는 곳인데. 일론 머스크가 전기자동차를 만들던 초창기에 우리나라 배터리 전문가들 중 다수는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사기라고 의심했습니다. 어떻게 휴대폰에 들어가는 작은 배터리 수백 개를 자동차 바닥에 깔아 자동차를 굴릴 수 있냐는 식으로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그러나 일론 머스크는 세상 사람들이 미친 짓이라고 했지만 그것을 해냈습니다. 이런 것이 first mover입니다. 이런 것이 high risk high return입니다. 그런 것을 해냈기에 테슬라가 전 세계 전기자동차 시장을 리딩(leading)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현대차에선 아이오닉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습니다. 아이폰 다음의 갤럭시 정도가 되겠죠. 지금 스마트폰 시장의 순이익 중 상당 부분을 애플이 독식하고 있습니다. 그 나머지를 가지고 삼성과 중국 기업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전기자동차 시장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전기자동차 콘셉트는 테슬라 콘셉트를 못 벗어나므로 테슬라 특허에 다 걸려 당분간 테슬라가 시장의 상당 부분을 다 먹고 나머지를 두고서 현대차가 중국 기업들과 박 터지게 싸우게 될 것입니다. 정작 기술료나 라이선스 로열티는 테슬라에게 모두 줘가면서.
‘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말에는 심오한 뜻이 숨어있습니다. 인문사회학에서 주로 쓰는 법칙인 파레토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법칙을 20:80 법칙이라고도 부르는데, 10 중에서 2 정도는 성공할 수 있지만 나머지 8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법칙입니다. 이 세상 자산의 80%를 세계 인구의 20%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법칙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파레토가 최초로 만들어낸 법칙이 아니라, 단지 가우스에게서 힌트를 얻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연계에서는 가우스 분포(Gaussian distribution)라는 것이 그전부터 이미 알려져 있던 사실이었습니다. 가우스 분포에서 우측 귀퉁이의 특정 편차 안에 분포하는 부분을 성공한 것으로 본다면, 그 이외의 나머지 부분을 진행 중인 것이거나 실패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입장에서 ‘high risk, high return’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죠. 우리는 ‘frontier, first mover가 돼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First mover가 시장의 대부분을 다 먹는다는 사실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생태계에서는 어느 누구도 first mover로 선뜻 나서질 못합니다. First mover에게 미래는 구현(realization)하는 대상이지만, fast follower에게 미래는 예측(forecasting)할 수밖에 없는 대상입니다. 애플은 세상에 없던 스마트폰이라는 것을 이 세상에 구현해 냈습니다. 구현 즉, realization이란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리얼(real)하게 만들어내는 것(-ization)을 말합니다. 애플은 스마트폰이 없던 세상에서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새로운 세상을 realization 해냈습니다. 그러나 삼성은 그런 것을 창출할 수 있는 기술과 역량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미래의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혜안이 없었기에 realization 하지 못하고 선두 주자가 어디로 갈지를 forecasting만 했던 것입니다. 테슬라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일론 머스크는 전기자동차라는 것을 realization 했지만, 현대차는 forecasting 하고 있다가 테슬라 전기자동차가 나오니 그제야 뒤늦게 following하기 시작했습니다. Fast follower가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의 자본주의 세상은 승자가 독식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fast follower에서 first mover로 자세를 바꾸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쉽지만 20 대 80 법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생태계이므로 리딩하는 국가나 기업이 대부분의 수익을 다 가져갑니다. 이젠 우리도 first mover가 되지 않고서는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없습니다. 지금 세계 최고 기업의 랭킹을 줄 세워 보면 삼성이 상위권에 있긴 하지만, 항상 그 자리가 보장된다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 삼성은 대량생산을 해서 그나마 수익을 내는 기업이지만, 애플은 생산라인이 본사에 없이 헤드 쿼트만을 두고서 대부분을 전 세계로 아웃소싱하고 있습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챙긴다.’고들 말합니다. 삼성은 곰에, 애플은 주인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선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그들 뒤꿈치만 따라가지 그들을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모든 지적재산권을 다 걸어놓고 우리가 조금만 카피를 하기라도 하면 클레임을 걸어 로열티로 모두 뺏어갑니다. 지금 세상이 그런 승자독식의 생태계이므로 이젠 우리도 어쩔 수 없이 ‘first mover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R&D 펀딩을 지금 상황에서 미국 수준으로 늘릴 수 있을까요?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공 확률을 높이거나 선택과 집중 이외엔 답이 없습니다. 확률을 높이되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해서 그곳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합니다.
창조적 문제해결 능력
우리는 또한 세계 최고 목표 수준을 제시하는 과제를 도전적 과제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목표 수준이 낮더라도 당면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제시될 수 있다면 도전을 시도해야 합니다. 그와 같은 문제(problem)와 문제해결방안(problem solving)을 단계적으로 시도하여 해결하는 과정을 통하여 지금의 과학기술 수준에 도달한 것이며, 이후의 과학기술도 이런 과정을 통하여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 '이세돌을 이길 수 있는 인공지능 컴퓨터 개발'이라는 문제는 제시할 수는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라는 문제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이를 풀기 위한 시도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공지능이라는 것이 최근에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시초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AI 연구도 단번에 된 것이 아니라 풀리지 않는 문제로 좌절되고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로 실망과 쇠퇴를 반복하는 수차례의 사이클 속에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최근 들어 AI 기술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몬테카를로 방법(Monte-Carlo method)과 딥러닝(deep learning) 기술을 조합한 창조적 문제해결이 가능하게 된 것에 있습니다. 몬테카를로 방법이란 난수(random number)를 이용하여 무작위 함수(random function)의 값을 확률적으로 계산하는 알고리즘으로, 계산하려는 값이 닫힌 형식으로 표현되지 않거나 복잡한 경우에 근사적으로 계산할 때 사용되는 방법입니다. 여기에다 딥러닝이라는 기술을 조합하여 이전까지 돌파하지 못하던 AI 기술의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는데, 딥러닝이라는 기술이 가능했던 이유는 컴퓨터 파워가 막강해졌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PC는 20년 전의 슈퍼컴퓨터 수준입니다. 만약 지금 PC가 20년 전 수준의 PC라면 AI 기술이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발전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수한 무작위 함수를 푸는 시행착오 학습을 통하여 사과의 이미지를 보고서 사과임을 인식하는 수준까지 가려면 엄청난 반복 계산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몬테카를로 알고리즘, 딥러닝 기술, 막강한 파워의 컴퓨터 기술이 마련되었기에 지금의 AI 기술 구현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AI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지금의 AI 기술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컴퓨터 프로그램 기술이 개발되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냥 무식하게 컴퓨터를 많이 돌릴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라고 합니다.
창조적 도전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 예를 들어서 달에 빨대를 꽂아 지구로 달의 자원을 이송해 오겠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즉 해결해야 할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풀기 위한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도전적이라는 것입니다. 문제해결 방법을 제시하지 않고 덤벼드는 것은 도전이 아니라 무모한 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Challenged Project?
미국의 국제 IT연구 자문회사 Standish Group(www.standishgroup.com)에서는 지난 5년간 수행된 50,000개 이상의 IT 분야 프로젝트를 조사하여 프로젝트의 성공(successful), 도전(challenged), 실패(failed)에 대한 데이터를 보여주는 CHAOS Report를 2년마다 발표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의 목표 달성 여부를 기준으로 성공과 실패만을 따지는 이분법적 평가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 성공, 도전, 실패라는 세 가지 카테고리로 구분하여 통계 수치를 보여주고 있는 이들의 관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들은 프로젝트의 기한을 넘긴 경우, 예산을 초과한 경우, 최초에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경우를 'challenged'라는 카테고리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성공 아니면 실패뿐인데, 과거에 ‘성실실패제도’(2014년 5월)를 제정하여 실패를 성실실패와 불성실실패로 나누어 프로젝트를 평가 관리해 온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성실실패를 'challenged'와 같은 경우라고 볼 순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프로젝트의 성공률은 95% 이상이며, 성실실패한 것이 4%, 불성실실패한 것이 1% 정도 이내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와는 달리 CHAOS 2020년 보고서에서 발표된 바에 따르면 IT 분야의 프로젝트에 국한되어 조사된 것이긴 하지만, 성공한 경우가 31%, 실패한 경우가 19%이며, 나머지 50%가 도전한 프로젝트로 분류한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분석이 더 합리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공과 실패의 개념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선(善)의 반대말이 무엇일까요? 대부분 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선의 반대말은 악이 아니라 불선(不善)입니다. 왜냐하면 선을 배제하고 남는 쪽은 모두 불선이므로. 우리는 선의 가장 반대쪽 끝단에 있는 것을 악이라고 부릅니다. 이 세상을 선과 악 두 가지로만 단순히 구분할 수 있는가요? 선과 악만 있다면 선의 반대말은 악일 수 있지만, 이 세상에는 선도 있고 악도 있지만, 선도 아니면서 악도 아닌 것도 있습니다. 우리는 선을 제외한 모든 경우를 불선이라고 하며 선하지 못한 일이라고 합니다. 선하지 못한 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악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면 성공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실패가 아니라 불성공(不成功)이겠죠. 성공하지 못한 것들은 모두 성공의 반대인 셈입니다. 그 불성공 안에 실패가 들어있는 것이지요. 즉 미국에서는 불성공을 'challenged'와 'failed'로 나눈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도전했던 과제(challenged project)는 더 이상 계속 수행하면 안 되는 것인가요? 웃기는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번 도전했던 과제는 다시는 도전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에 반해 외국에서는 도전했던 과제가 마무리되지 못했을 경우 다시 도전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만약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을 만들려고 시도를 했는데, 완전한 스마트폰이 아니라 90% 정도만 완성되었다고 칩시다. 즉 도전을 했는데 목표달성을 못하고 완전한 결과물을 못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만두어야 하나요? 더 이상 개발하면 안 되나요? 중도에 포기해야 되나요? 아니죠. 필요하면 다시 또 해야죠. 다시 해서 스마트폰이 완성되게 끔 해야겠죠.
우리나라 R&D 체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시죠. 전혀 하지 않은 0이라는 베이스 상태에서 시작해서 성공한 상태 100을 향해 간다고 합시다. 만약에 0에서 100으로 가는 과정에서 프로젝트가 종료된 시점에 80에 도달한 경우라면, 이 프로젝트는 실패한 것인가요? 실패라고 볼 수도 있지만, 실패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혀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0 상태에 머물러있었겠지만 어쨌든 수행을 해서 80이라는 수준까지 올라왔잖아요. 그러면 그다음에 다시 시작할 때 80에서부터 출발할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냐면 0에서 출발해 80까지 도달하여 성공적으로 완성되지 못한 경우, 더 이상 그 프로젝트는 수행하지 못하도록 제도적으로 막아두었습니다. ‘유사·중복성 과제 지원 배제’라는 이상한 제도를 만들어놓고서 더 이상 같은 주제의 프로젝트는 그 결과물이 완성되지 못한 경우라 하더라도 다시는 도전하지 못하도록 말이죠.
외국과 달리 우리가 계속 실질적인 도전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해 놓고 프로젝트의 결과를 바라봄으로써 성공을 해도 더 이상 하지 못하고, 실패를 해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성공한 경우에는 더 이상 할 것이 없어서, 실패한 경우는 실패했기에 다시 할 필요가 없어서. 그러니 우리는 한번 시도하고 끝나면 더 이상 같은 주제로 다시는 시도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외국은 어떨까요? 성공했으면 더 이상 할 게 없으니 STOP이지만, 성공을 하지 못했을 경우엔 STOP이 될 수도 있지만 다시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다시 시도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으로 여러 사람들이 다 파봤는데도 더 이상 보물이 안 나오네. 여기는 파고 또 아무리 파도 보물이 안 나오니 일단 접어두자.”라고 하면 STOP이고, “팠는데 지금 깊이가 10m 밖에 안 돼. 그런데 탐침기로 보니 더 밑에 보물이 있을 것 같아. 계속 더 파보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면 계속 GO인 거죠.
즉 외국은 성공과 실패로 나눠놓고 더 이상 못 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갈 것이냐 말 것이냐에 초점을 두고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GO 아니면 NO-GO란 거죠. 해야 될 명분이 있고 가치가 있는 일이면 그냥 투자를 하는 것이고, 더 이상 할 명분이 없거나 할 가치가 없다면 아무리 투자를 했어도 멈추는 것이겠죠. 비록 성공을 해서 목표로 하는 결과가 나왔더라도 경제성이 맞지 않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STOP 할 수도 있겠죠. 우리와는 생각이 많이 다르죠. 그래서 실패에 대해 주저하지 않아요. 실패했다고 머뭇거리질 않고 창피해하지 않아요. 실패의 결과를 통하여 결국 실패한 이유를 찾았으므로. “지금까지 2,000번이나 실패했다는데 어떻게 견디셨나요?”라는 질문에 에디슨이 했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필라멘트를 만들 수 없는 2,000가지 재료를 알게 된 것뿐이지요”라고. 그런데 우리는 2,000번도 아니고 100번의 실패도 기다려주지 않아요. 한 번 해보고 안 되면 그만하라는 식이지요. 그러니 “될 때까지 도전!”이 되지 않는 것이지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우리 속담이 있지만, 우리에게 실패는 더 이상 성공의 어머니가 아닙니다. 수많은 실패를 거듭 삼아야 성공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패라는 걸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2W1H(Why, What, How)
도전할지 말지에 대한 의사결정을 고민할 때 경영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 2W1H입니다. 2W1H는 WHY, WHAT, HOW를 의미합니다. WHY는 “이걸 왜 해야 되지?”라는 명분에 대한 질문에 해당합니다. 당위성(justification) 혹은 가치(value)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다음은 WHAT으로 “뭘 만들 것인가?”라는 명확한 결과물 가시화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다음은 HOW로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구체적인 방법론 제시에 대한 질문입니다.
스마트폰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잡스가 회의실에 앉아 사람들과 미팅을 합니다. 회사 기획실에선 자주 이런 일들이 벌어지곤 하지요. CEO들은 디테일하고 복잡한 걸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세세한 이야기를 들으면 골치만 아프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통 다음 세 가지만을 체크합니다. 제일 먼저 “그 스마트폰이란 게 이 세상에 왜 필요하지? 왜 그걸 개발하려고 하지?”라고. 스마트폰이 왜 필요할까요? 지금까지 스마트폰 없이도 잘 살아왔는데. 잡스는 왜 스마트폰을 만들어 이 세상에 뿌려놓았을까요? 잡스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에. 잡스가 청바지와 검은 목티를 입고서 스마트폰을 선보이는 프레젠테이션에서 'Technology married with the liberal arts'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liberal art란 인문학을 말합니다. 그는 과학기술을 인문학과 만나게 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인문학이 뭘 말하는 것일까요? 인문학이란 사람이 사는 이 세상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다루는 학문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지금 살아 있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겠지만, 애석하게도 유명을 달리하는 바람에 그의 철학 이야기를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어 저 나름대로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잡스는 소크라테스를 멘토로 아주 존경하고 좋아했습니다. 그는 왜 소크라테스를 좋아했을까요? 인문학의 큰 획을 그은 대표적인 4대 성인으로 예수, 고타마 싯다르타, 공자, 소크라테스가 있습니다. 잡스는 서양 사람이었기에 제일 접하기 쉬웠던 사람이 소크라테스였을 것입니다. 현대 인문학의 핵심 코어는 이 네 분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네 분은 거의 동급 시대에 이 세상에 출연해 새로운 세상, 새로운 문명을 고민했던 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며 흘러왔는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이 세상은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면서 통신과 교통의 발달을 이루어왔습니다. 아주 옛날 통신이 전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이 마을과 저 마을 사이에서 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봉화가 생기면서 이쪽 마을에서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서로 다른 색깔의 봉화를 피워 올려 저쪽 마을에서 알 수 있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통수단이 전혀 없었던 원시시대에는 걸어 다니기에 너무 먼 마을과는 왕래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을 타고 이동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먼 마을로 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자는 소프트웨어적 이동, 후자는 하드웨어적 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통신 수단이 봉화에서 전보, 전화,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발전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소프트웨어적인 정보의 이동 속도가 점점 빨라졌습니다. 교통수단으로는 말에서, 수레, 마차, 기차, 자동차, 비행기로 발전하면서 어떤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하드웨어적인 이동 속도가 점점 빨라졌습니다. 잡스가 liberal arts와 technology를 만나게 하겠다고 했던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는 인터넷을 하려면 PC 앞에 앉아야 했습니다. PC 앞에 앉아 인터넷을 하던 시절 잡스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언제든지 아무 데서나 인터넷을 할 수 없을까? 그러면 지금보다 훨씬 더 빨리 사람과 사람이 실시간으로 연결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도 PC 상에서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실시간으로 SNS를 할 순 없었습니다. 즉 통신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사람과 사람 간의 소프트웨어적 정보의 이동 속도가 급진적으로 빨라졌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통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사람을 포함한 하드웨어의 이동 속도 또한 급속도로 빨라졌습니다. 요즘 개발되고 있는 자가용 드론이나 하이퍼튜브가 완성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빨리 교통 체증 없이 도심 사이를 이동하거나 대륙 간 원거리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을 좀 더 확장해 봅시다. 만약에 미래에 텔레파시라는 기술이 개발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최근 들어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Brain-Computer Interface) 기술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뉴럴링크(Neuralink)라는 회사에 투자해 원숭이 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원숭이가 생각으로 컴퓨터 게임을 하는 장면을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이건 뇌의 아날로그 시그널을 디지털 신호로 바꾸는 AD converter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술이 완성되면 스마트폰을 통해 아내에게 ‘오늘 저녁에 외식이나 할까?’라고 문자를 인코딩(encoding)할 필요 없이, 바로 내 생각을 머리에 붙여놓은 AD converter와 외부 중계기를 통하여 아내에게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잡스도 여기까지 보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를 점점 더 줄일 수 있을까?’라고. 이렇게 되면 인문학이라는 분야가 지금보다 훨씬 더 빨리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어 현재 풀지 못하는 사회문제를 풀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인문학이라는 것은 의사소통에 불과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철학, 즉 내 생각을 다른 사람이 모르기 때문에 소통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진짜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이해가 되지 않고 분간이 되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문제들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어떤 대통령 출마 후보가 이야기하는 것이 사기인지 아닌지, 진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그의 약력이나 히스토리 및 공약을 면밀히 들여다보려는 것입니다. 어떤 이론이나 말들이 정말 옳은지 그른지, 그게 이 세상에 득이 되는지 실이 되는지와 같은 사람 사는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알고 싶은 것이 인문학입니다.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훨씬 더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PC가 생기면서 정보를 저장만 할 수 있었지만, 이후에 인터넷이 생기면서 그 정보를 실어 나르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잡스는 스마트폰을 상상하면서 이것을 만들게 되면 정보를 훨씬 더 쉽게 빨리 퍼 나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잡스는 ‘스마트폰을 왜 만들어야 할까? 이건 시대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감에 있어 당연히 필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인문학적 의문과 통찰력이 있었기에 스마트폰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고 만들어낼 수 있었지만, 이건희는 이런 인문학적 통찰력이 없었기에 스마트폰의 정체를 그려내지 못하고 PC의 업그레이드 수준에만 머물렀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기술들을 모두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결국 궁극적으로 모두 하나로 통하여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이 ‘하나의 님’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나가는 과정에 지금 있는 것이라고 잡스는 인식했는지도 모릅니다. 소크라테스를 공부를 했고 그를 멘토로 존경했다는 것은 그런 통찰력을 얻기 위한 공부를 하고 어릴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이 발전되고 있는 방향이 이렇게 되어 왔고, 또 왜 이렇게 되어 가고 있으며, 결국엔 어떤 방향으로 되어 갈지에 대해서. BCI 기술이 개발되어 ‘텔레파시 소사이어티’ 생태계가 만들어지게 되면 이 세상에 득이 되는 사람, 지속발전 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편익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서로 모이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이 세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해악을 끼치는 사람들은 점점 소외되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항상 자기의 사리사욕만을 챙기기 위해 남을 이용하고 항상 부도덕한 짓만을 일삼는 사람이기에 텔레파시로 연결될 경우 모두가 알 수밖에 없어 어느 누구도 함께 하려 하지 않을 것이므로. 만약 텔레파시로 모든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게끔 하나로 연결되는 세상이 오면 정말 나쁜 사람이, 사기 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사라사욕을 챙겨 먹겠다는 사람이, 권력욕만 있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출마할 수 있을까요? 온 천하가 다 알게 될 텐데. 그때가 오면 모든 사람들이 존경할만한 분이 추대되어 대통령으로 임명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잡스는 이런 미래를 보고서 ‘이건 가야 될 사명이야, 우리가 해야 될 숙제야!’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이 방향으로 가면 우리 앞에 엄청난 미래가 열릴 것이고, 그곳으로 가는 길 중의 다음 스텝이라고 생각했기에, 이를 사명과 명분으로 삼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liberal arts와 technology를 만나게 하겠다고 얘기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해야 될 명분이 세워지고 나면 그다음엔 ‘어떤 것을 만들 것인가?’입니다. WHAT에 해당합니다. ‘그런 세상으로 나아가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를 상상했을 것입니다. ‘컴퓨터와 통신기능을 합해서 들고 다닐 수 있으면 될 것 같고, 들고 다니면서 응답속도가 빠르게 하려면 컴퓨터와 같이 무거운 OS가 아니라 앱 기반의 가벼운 OS면 되겠지!’라고. 그런데 잡스의 경우엔 이미 매킨토시에서 이미 그런 콘셉트의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매킨토시 OS가 윈도우 OS에 비해서 훨씬 가벼웠기 때문에 그는 기존 기술을 활용하여 앱을 구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현재와 같은 스마트폰을 상상하고 구현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상상하지 못하면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스마트폰이라는 것을 상상했다면, 스마트폰에 어떤 기능들이 들어가야 될지를 쪼개볼 수 있습니다. ‘컴퓨터 기능은 당연히 들어가야 할 것이고, 컴퓨터이므로 OS 기능이 있어야 하고, 그다음엔 들고 다니니 전화기로 쓸 수 있으면 좋을 것이고, 들고 다니니 사진까지 찍어서 저장하고 인터넷에 올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여기에서 아이팟과 같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능을 넣으면 금상첨화가 될 거야!’라고.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발했던 mp3 플레이어 아이리버는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잡스는 ‘들고 다니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거기에 집어넣으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곤 못 배길 거야!’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이폰이 나왔을 때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열광을 하면서 샀을까요? 만약에 전화기능만 되었다면 기존 휴대폰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비싼 가격인데도 사람들이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컴퓨터, 카메라, mp3 플레이어, 전화기 기능이 모두 되니 이 네 가지를 합한 가격보다 싸면 얼마든지 사람들이 살 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렇게 최종적으로 개발하려는 제품의 정체인 WHAT이 밝혀지고 나면, 이 런 기능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어떻게 만들지를 고민하면서 HOW의 답을 찾아 상위 계획(high-level plan)을 세우면 됩니다. 상위 계획이 세워지면, 그런 기능들이 들어가게끔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을지 전 세계를 뒤져 수소문하면 됩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들어낼 수 있는 베스트 플레이어가 누군지 그 사람들을 찾아내 그들에게 아웃소싱(outsourcing)을 맡겨버리면 일단락되는 것입니다. 구성 요소 기술들 중 어느 하나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그 기술은 완성할 수 없습니다. 스마트폰의 경우엔 거의 대부분의 기술들이 이미 있었습니다. 작은 손바닥만 한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었고, 디지털카메라도, 휴대폰도, mp3 플레이어도 있었고, 앱 기반 OS 기술 또한 있었습니다. 단지 컴퓨터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입출력할 수 있는 툴이 있어야 했는데, 당시 삼성은 작은 모니터 밑에 타이핑을 할 수조차 없는 아주 작은 키보드를 달았습니다. 노트북의 초소형화라는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잡스는 다르게 접근했습니다. ‘키보드를 왜 달아? 화면을 터치하면 되지!’라고. 왜 삼성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요? 기존 틀 안에 갇혀서 컴퓨터는 항상 키보드와 모니터가 있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림을 그려낼 수만 있다면 만드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여기까지가 CEO가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도전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할 때 이 세 가지만 살핍니다. ‘이걸 왜(WHY) 만들어야 되지?’ 그다음 WHY가 통과되고 나면, 이제 ‘뭘(WHAT) 만들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합니다. WHAT이 통과되고 나면, 이제 ‘어떻게(HOW)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그 방법과 전략을 고민합니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사람은 항상 2W1H로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육하원칙을 모두 염두에 두면 골머리만 아픕니다. 육하원칙 중에서 WHY, WHAT, HOW만 생각하고, 나머지는 모두 HOW에 포함시키면 됩니다. 어떤 것을 염두에 둘 때 항상 3개를 넘기면 효과가 떨어집니다. 3개를 넘기면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염두에 두기 어렵습니다. 통찰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2W1H, 즉 왜 해야 되며, 뭘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이 일을 왜 해야 되는지, 이 일을 통해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 것인지, 그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어떤 활동들을 해야 하며, 어떤 사람을 만나 그들로부터 어떤 도움을 이끌어 와야 할지 등과 같은 생각을 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