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편지를 쓰고 바로 다음 날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늦어졌구나. 내 글이 네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매우 궁금하다. 글이 조금 길지만 아버지의 마음이라 생각하고 끝까지 잘 읽어주길 바란다.
아버지에게 아들은 어떤 의미인지 혹시 생각해 본 적 있느냐? 어떻게 보면 아버지 인생의 대리자로서의 의미도 있단다. 그런 의미 때문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다그치고 그래서 부자 사이가 벌어지는 경우를 많이 봤지. 난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내 생각을 표현하고 싶기는 하다. 이 글로 대신한다. 네게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어디를 가든지 데리고 다녔고, 네가 가지 못할 곳은 나도 가지 않을 정도였다. 목적지 없이 단지 기차를 태워주기 위해 기차를 타기도 하고 단지 시내버스를 태워주기 위해 시내버스를 타기도 했지.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경험을 넘어서기 힘들다는 생각에 나의 취약점으로 여기는 예체능 쪽에도 신경을 썼다.
내 아들을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려 한 것이 아니라 많은 경험, 좋은 체력, 그리고 독서 능력이 있는 아이로 자라게 하려고 애썼지. 너의 체력을 위해 야구·축구·달리기 등을 했던 것 기억나지? 어렸을 때 놀이터의 모든 놀이기구는 다 능란하게 이용할 수 있었던 것도.
넌 내 아들이고 집안의 장손이고 할머니의 든든한 손자로서의 의미를 넘어서 바로 내 교육 철학의 결과이다. 글자도 가르치지 않았고 영어도 가르치지 않았고 오로지 경험, 체력, 독서 능력만을 강조했던 내 교육 소신 말이다.
요즘 보면 넌 관심 분야가 다양하더구나. 중학교 축제의 게임 대회도 나가고, 혼자 비트 박스도 연습하고, 칼 돌리기를 하는가 하면, 학교에서는 노래 동아리에 들고, 독서도 다양하게 할 뿐 아니라 종교적인 지식까지 갖추려 노력하더구나.
저 다양한 관심사를 학교 공부 한 쪽으로 집중하면 최고 중의 최고가 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단다. 그러나 그건 내 욕심이지. 아니 내 잘못된 잠시의 망상이었다. 아마도 네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해야 할 것이고 그것이 네 성격일뿐더러 내가 너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왔던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공부에만 관심을 집중하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그렇게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도 넌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으로 힘겨워하더구나. 무슨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그 일에 얼마나 시간을 투자했느냐에 비례하게 마련이다. 물론 재능의 차이가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무리 둔재라 할지라도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으면 잘하더구나. 넌 노력한 만큼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했지만, 네 수준에서 성적을 더 올리려면 지금 네가 하는 정도 가지고는 안 된다고 단언한다. 시험 끝났다고 쉬어야지, 며칠 더 놀아야지, 도서관 갔다 오면 컴퓨터 게임 해야지, 만화책 봐야지, 무협 소설 봐야지, 그런 것 다 하고 난 시간에 공부하고 그것도 시험 기간 동안 만 반짝 집중하니 네가 공부에 시간을 쏟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하위권에서는 그 정도 가지고도 성적이 오를 수 있겠지만 네게 비견할 친구들은 네가 매일 접해서 아는 것처럼 너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공부에 집중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면서 성적 가지고 실망하면 그것은 본말의 전도라 할 수 있겠구나. 뿌리는 대로 거두고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 하느님의 법칙이다. 그것이 ‘본’이고 조금의 노력으로 많은 것을 거둘 수도 있다는 것은 ‘말’이다. 시간 활용에 있어서도 본은 먼저 학교생활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고, 말이 다양한 취미 생활이다. 노력과 과정이 본이고 결과가 말이지 않겠니.
너에 대한 내 욕심은 네가 네 자신에게 갖는 욕심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 마음을 네게 강조하면 아마 말로 표현하지 못할 압박감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네 일을 네가 잘해왔다. 그것을 믿기 때문에 말을 안 하고 그냥 지켜볼 따름이었지.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요즘 들어 네게 조금 염려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면 네 관심이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 해라. 그러나 이것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 의미 있는 활동으로만 채워도 다 못 채우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아버지가 살아온 삶을 통해 얻은 것이, 그리고 후회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의미 있고 보람 있는 것들로만 채워도 부족한 것이 인생인데 왜 그렇게 시간 낭비를 많이 했을까.
지난번에 이어 다시 한번 강조한다. 결과에 연연하지 말자. 주어진 과정에 충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