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산다는 것은 보통 부자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돈이 많다고 해서 잘 사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마 잘 산다는 것은 건강하고 부유하며 여유롭게 또 먹고 싶은 것 먹으며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거기에 성공도 덧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후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명령하셨습니다.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창 1:28)” 이것이 성경에서 잘 산다는 것의 의미를 축약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세 단어를 부유해라 강해라 높아지라로 바꾸면 그 의미가 더 분명해질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마 19:21)” 부자가 된 이유를 가난한 자들에게 주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 논리로 강한 자가 되는 것, 높은 사람이 되는 것이 목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목적을 넘어선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해석해 봅니다.
요셉은 부자가 됐습니다. 정말 큰 부자가 됐습니다. 그러고 나서 요셉은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하시려고 나를 보내셨나이다(창 45:5).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창 50:21)” 즉 부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목적을 넘어선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삼손은 사자를 맨손으로 찢어 죽이고 당나귀의 뼈다귀로 천명을 때려죽일 수 있는 강한 자였습니다. 그 강한 힘을 잃고 난 후 절치부심하던 그는 기도합니다.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삿 16:28)” 그리고 그는 삼천 명가량을 죽입니다. 강한 힘 그 자체가 아니라 강한 힘으로 이스라엘 사사의 의무를 완수한 것입니다. 모세는 60만 이스라엘 사람을 이끈 최고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천부장 백 부장 오십 부장 십 부장을 세워 자기의 권력을 나눴습니다. 또한 출애굽 최고의 목적인 가나안 땅에 직접 들어가지 않고 느보산에 올라 후계자 여호수아가 무리를 이끌고 입성할 가나안 땅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높은 지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권력을 나누고 후계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부모는 자나 깨나 자손들이 잘 살 것을 기원합니다. 우리 부모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도 아들들 조카들이 잘 살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잘 살겠지만, 자손들도 잘 살기를 바랍니다. 부자 되고 강한 사람 되고 높은 사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목적을 넘어선 목적을 생각했으면 합니다. 요셉과 삼손과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부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살려 주는 사람, 강한 자가 되어 약한 자들의 힘이 되는 사람, 높은 사람이 되어 권력을 나누고 다른 사람을 더 높은 곳으로 밀어주는 사람 다시 말해 목적을 넘어선 목적을 이루는 사람 즉 진정한 의미로 잘 사는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