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의 뜻

by 강석우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나의 모습은 내가 살아온 결과이며, 또 지금 살아가는 모습이 앞날의 내 모습일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 즉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나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우리 부모님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 그것도 큰아들로 태어났다는 것, 게다가 장손으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큰아들’ ‘장손’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게 들었습니다. 무거운 중압감이었고,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온몸과 마음을 지배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아직은 아버지가 계시니까’ 하며 애써 미루고 덮어왔었는데, 그래서 그냥 아버지 모시고 다니는 것으로 장손의 일을 다 한 것으로 여겼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그냥 허무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장손’이라는 운명을 내 것으로 받아들일 준비도 되지 않았고, 선산의 이곳저곳도 쥐뿔만큼도 모르는데.


저의 장손 운명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증조부님께서 3남 3녀를 두셨는데 제겐 그 많은 가족을 묶어낼 능력이 없었고, 왕고모님들은 연락처마저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커다란 가족의 줄기들을 잃어 나갔고 전 속수무책으로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여름을 지나면 마치 정글처럼 우거지는 선산을 벌초하는 시늉하는 것으로 겨우 장손의 역할을 갈음했습니다. ‘장손’이라고 내세우기엔, 그리고 장손이라고 떠받들어주는 가족들 앞에 서기엔 너무 염치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장손으로 해야 할 구실을 제대로 못 하지만, 마음조차 없는 것은 아닙니다. 증조부님의 3형제 가족을 우리 가족의 테두리 안에 모일 수 있도록 하는 것, 선산을 잘 관리하는 것, 그리고 선조의 뜻을 잘 받들어 유지하여 후세에게 전하는 것, 이 세 가지가 장손으로서의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우리 대가족을 묶어내는 것은 오늘을 기점으로 조금씩 조금씩 실천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둘째, 선산을 관리하는 것은 세 가지 중에서 제일 힘든 것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예초기를 산다. 엔진 톱을 산다 하면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하는 데까지 해보긴 했는데 역부족이었습니다. 선산은 점차 잡초로 뒤덮였으며, 자손이 없는 묘처럼 정글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숙부님들이 등장했고 선산은 점차 제모습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다가 일부 산소가 무너진 것을 계기로 해서, 보시는 것처럼 훌륭한 가족묘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을 이 자리에 모을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숙부님들께서 하시는 일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무능한 저로선 그저 감사드리는 것으로,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것으로만 저의 마음을 전합니다.


셋째는 선조의 뜻을 받들어 전하는 것입니다. 증조부이신 홍자 수자 할아버지께서는 장로이셨습니다. 증조부님을 알고 계셨던 분의 전언에 의하면 유명한 부흥 강사이셨다고 하며, 후손들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하셨고, 또 교회를 하나 세우기까지 하셨답니다. 옛날 어른들께서 묘역을 단장하는 것은 후손들의 발복을 기원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홍자 수자 할아버지께서는 이 근동의 명당을 찾아 선조들을 모셨습니다. 지금은 가족묘로 흔적이 사라졌지만, 선조들의 묘가 얼마나 잘 단장되었는지는, 이 자리의 모든 분이 다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자손들이 복 받고 잘 살 수 있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묘를 단장하고 가꾸셨을 것입니다. 장로가 되신 후 자손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도 아마 그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대자 희자 할아버지께서도 다섯 개의 가훈을 전해주시면서 맨 앞에 ‘하나님을 공경할 것’을 두셨습니다.


증조부님과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조의 뜻을 받들어 전하는 것은 바로 그 기도하는 마음,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는 그 신앙의 모습을 이어받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증조부님의 얼굴을 모릅니다. 당연히 선조들의 얼굴도 모릅니다. 제 아들도 아들의 증조부님을 모릅니다. 그러나 조상들의 모습은 아마도 우리들의 모습과 비슷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숙부님들을 만났을 때, 숙부님들은 모두 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제게 손을 내미셨습니다. 고모들께선 제가 웃는 모습까지 아버지와 똑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붕어빵의 모습으로 이어지는 것이 유전자이고 우리 뜻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선조의 뜻도 그대로 이어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봅니다. 그 선조의 뜻이 바로 신앙의 유산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고 하나님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면 하나님의 의가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며,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른다고 합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영원을 기약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가능합니다. 자손으로 길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증조부님의 기도는 지금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이 가족묘를 주도하고 진행하셨던 숙부님께서, 준공할 때 제사를 지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가슴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지만 뭐라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한 것이 없고 장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아들에게만 고민을 밝혔습니다. ‘장손으로서 나의 사명 중 하나가 증조부님의 신앙을 이어가는 것인데 그러지 못해 너무 가슴이 아프다’라고요.


어느 날 고모께서 전화하셨습니다. “납골당 행사한다면서? 우리 기독교식으로 하자! 나 그것 때문에 새벽기도 하고 있다” 그래서 전 “고모, 이미 숙부님들께서 제사를 지내기로 하셨어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엉? 안된다. 우리 기도하자” 하시더니 하루 이틀 후에 다시 전화하셔 선 “기독교식으로, 하기로 했으니까, 네가 예배 준비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모에게 그런 마음을 심어주신 것, 또 그 고모의 말씀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신 숙부님의 결정 번복은 바로 증조부님의 기도의 역사이고 우리 가족을 주님의 품으로 안아주시려는 주님의 뜻 아니겠습니까.


숙부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자리, 영광된 자리, 가족이 모두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신 것을. 그리고 그동안 형제간 끼리 서로 위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을. 그 모습을, 여기에 함께한 우리 후대들이 이어받겠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한가운데에 주님의 뜻이 함께하셨음 또한 마음속에 깊이 새겨 선대 신앙의 전통을 잇겠습니다.


그 마음이 우리뿐 아니라 이 자리에 함께한 모든 강 씨 가문 가족들과 함께한다면 조상님들도 천국에서 기뻐할 것이며, 우리 후손들이 주님 품으로 돌아오기만을, 어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주님도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을 향한 의와 인자하심을 영원토록 부어주시리라 믿습니다.


기도

주님, 우리 가족이 장로이셨던 선대의 뜻을 이어받아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가정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이 곧 주님의 뜻이라 믿습니다. 지금까지 자녀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아온 생존해 계신 어른들의 모습에 주님의 뜻을 따르는 모습 하나를 더 보여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그 뜻을 이어받는 후손들 되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강 씨 가문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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