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요소
노자는 어느 날 홀연히 세상에서 사라졌다. 신선이 되었다고도 하지만 부러운 것은 그렇게 훌훌 털고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실패한 가장이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노숙자로 전전하면서 오히려 맘 편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떻게 그렇게 자기 삶의 끈들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접어 버릴 수 있을까.
나도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을 때가 있었다. 맞다. 몇 번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붙잡는 것이 있다. 즐거워서 살고 싶은 마음이 붙잡는다기보다는 살아야 할 의무들이 붙잡는다. 내가 해야 할 일들. 나 아니면 마무리 못 할 일들. 아이들, 아내, 어머니. 만약 내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아쉬워하거나 슬퍼할 사람도 그 외는 별로 없을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니 서글퍼진다. 그동안 세상을 몇십 년 부대끼며 살아왔는데 그렇게도 정 붙일 일, 마음 쏟아 부든 사람이 없었다는 말인가.
남편을 잃은 상가에서 나는 곡소리에는 꼭 “나는 이제 어떻게 살라고.”라는 말이 들린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갔으니 이제 슬퍼서 못 살겠다는 의미보다는 “당신 없이 이제 어떻게 먹고살라고.”라는 말로 들린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존재 의미도 미미하게 여겨진다. 과연 삶이란 무엇일까. 겨우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교육하는 것만이 삶의 의미란 말인가. 그래도 내 목숨을 내놓고서라도 마지막까지 붙잡을 것은 그것밖에 없다는 것이 서글프다.
눈을 감으며 좀 거창한 것을 이루지 못한 것을 슬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령 부를 이루지 못한 것이 눈을 감지 못하는 이유랄지, 시작한 저술을 마치기 전까진 눈을 감을 수 없달지. 그렇다면 아침 출근길에 펼쳐진 코스모스 길을 보면서 옛 생각에 빠져드는 것, 그 길 양옆으로 펼쳐진 코스모스 길을 보면서 옛 생각에 빠져드는 것, 그 길 양옆으로 펼쳐진 황금 들판을 지나며 느껴지던 풍요로움, 퇴근길에 보게 되는 붉게 물든 하늘을 보며 감상에 젖는 것, 쉬는 날 무엇을 할까 생각하는 기대감. 이런 것들은 내 삶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할까.
또 있다. 내게는 거창하게 여겨지는 삶의 의무들에 앞서 먼저 다가오는 잔잔하고 자잘한 즐거움들. 잠든 아이의 얼굴, 김치찌개를 앞에 놓고 몇 그릇 비우는 아들의 기쁜 얼굴, 자주 혼내지만, 그때마다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은 학생들의 모습, 늦은 밤 창밖에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 책을 보다가 잠깐 문 열고 나가면 펼쳐지는 달빛 세상. 이런 것들이 모여 내 삶을 이루는가. 떼어놓으면 내 삶을 붙잡는 절실한 것들이 되지 못하지만 뭉쳐져 내 삶이 되는가 보다.
그러니 오늘에 충실하자. 사소한 것도 소중하게 여기자. 내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니. 작더라도 부품이 하나 없으면 기계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사소한 것 같지만 하나를 소홀히 했을 때 내 삶 전체가 의미를 잃어 오로지 자식들 먹여 살려야 하는 의무만으로 지탱하는 메마른 삶이 될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