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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mpathizer Apr 29. 2019

가장 보이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것

마음이라는 것에 대하여

"읽는 내내 외로움이나 그리움 같은 말로 뭉뚱그렸던 감정이 어느새 귓가로, 살갗으로, 심장의 압박으로 전해졌다."- 이윤정, 드라마 PD


이에 동감하며 <경애의 마음>을 읽었다. 


일상에 치여 들여다볼 새가 없었던 마음, 사회가 용납하지 않아 드러낼 수 없었던 마음,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살았던 마음. 작가는 우리가 돌보지 않았던 여러 마음들을 책 전체에 흩뿌려 놓았다. 그리고 그런 마음들을 하나하나 주워들어 되새겨보는 과정은 먹먹했고, 쓸쓸했고, 때로는 속시원했다. 


김금희 작가 특유의 문체가 너무 좋다. 경쾌하고 위트있게 써내려간 문장 말미에 정곡을 찌르는 한방, 유쾌함과 쓸쓸한 감정을 동시에 자극하는 문장들, 현실적인 대화들. 작가가 얼마나 일상의 사소한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지, 그리고 거기서 끌어낸 통찰을 적절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론은 읽는 내내 문장을 옮겨 적고 싶다는 욕구가 끊이질 않았다는 것. 


"누구를 인정하기 위해서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


"간소하지 않다는 건 실용적이지 않다는 뜻이었고 회사에서 하게 될 '노동'이라는 데 감이 없다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현실의 효용가치로 본다면 애저녁에 버렸어야 했을 물건들을 단지 마음의 부피를 채우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마음을 말이다."


"옷을 입는다는 건 어딜 나간다는 거고 누굴 만난다는 거고 그렇게 해서 인간이 된다는 거잖습니까. 인간다워지라고 미싱을 돌린다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이 책의 주인공 경애와 상수는 다른 듯 비슷한 인물이다. 경애는 동료들의 부당해고에 맞서 파업을 하다 결국 회사에 남아 유령처럼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한편 상수는 성과가 미진해서 상사들의 답답함을 자아내지만 낙하산이라 쫒아내지도 못하는 눈앳가시 같은 존재다.


경애는 마음을 잃어버린 적이 많은 사람이다. 자신을 좋아해주던 E를 분노할만한 화재 사건으로 잃고, 이후 사랑한 남자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해버렸다. 자신이 주었던 마음이 상처가 되어 돌아와 쓸쓸해졌고 세상에 쉽게 발을 붙일 수 없는 외로운 영혼이 되었다. 


상수는 남자지만 섬세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그가 여자였다면 회사에서 환영받는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남자이고 그래서 외롭다. 그런 그가 시선을 돌린 곳은 온라인 연애 상담. 가상의 공간에서나마 '언니'라는 타이틀을 달고 여성들의마음에 귀기울이고 교감한다. 


상수와 경애는 어울리지 않는 듯 닮은 구석이 많다. 둘의 가장 큰 공통점은 어쩌면 남들이 뭐라던 자기 마음에 충실하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경애는 마음에 충실했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외면받았다. 유부남이 된 예전 애인과 만난다는 사실, 파업 중 공동의 목표를 외면하고 내부 성희롱을 고발했다는 사실 등으로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마땅히 할일을 하지 않는 부도덕한 여자로 낙인찍혔다. 


"마음이 끝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닌가. 대체 끝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실감하고 확신하는지 알 수 없었다."


상수 역시 마음에 충실해서 사회에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예를 들면 재봉틀을 팔러 갈 때 항상 실뭉치를 함께 가지고 간다던지, 오픈된 남자 소변기를 쓰지 않고 칸막이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 등이다. 


"그 모든 것의 해답은 좋아서 혹은 싫어서였는데 그 두가지는 사람들에게 무섭도록 이해받을 수 없는 말이라서 상수는 늘 자기가 설명서가 필요한 연마기나 절삭기 같은 기계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삐걱댈 것만 같던 상수와 경애는 시간이 흐르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천히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주게 된다. 소설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스며들기 시작할 때쯤 끝이 난다.  


마음을 공유하고 인정하는 게 익숙치만은 않은 사회다. 비단 슬픔, 기쁨 같은 감정만이 아니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들(예를 들면 일을 선택하거나 누군가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미세하게 좌지우지 하는 마음. 서로 이런 마음을 표현하고 존중하는 일은 아직 낯설다.


마음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개인적인 것이다. 개인적이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고, 집단주의의 잣대로 봤을 때 비난받기 쉽다. 마음에 충실하려면 우리를 둘러싼 많은 것들에 도전장을 던져야 한다.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관습과는 반대되는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들여다보는 사람일수록 외롭고 사회에서 소외받는다.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이지만 우리에겐 마음에 충실할 환경이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사회는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고, 그것을 따라야 좋은 사람, 도덕적인 사람이 된다. 그래서 때로는 마음을 무시할수록, 돌보지 않을수록 성공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기를,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질 수 있기를. 그리고 마음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증명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존중해주기를. 



그냥 끄적여보는 생각들


-당연하겠지만 마음이 불편하면 아무 것도 되지 않았다. 일이든, 사랑이든, 취미이든. 내 가장 깊숙한 곳에서 가장 원초적인 욕구를 눈치채고 행동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 마음이었다. 


-예전에는 마음을 말로 표현받기를 원했다. 상대방이 언어로 표현해주지 않으면 느낄 수 없었고 느끼길 거부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마음이라는 건 종종 그냥 느껴지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때로는 수많은 말들을 쏟아낼 때보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으면 할 때가 있다. 


-마음은 정의하기도 노력하기도 어렵다. 애쓴다고 잘 되지 않는다. 그리고 종종 내가 원하는 것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그저 내버려두기로, 멀찍이 한발짝 떨어져 지켜보다보기로 했다. 그러면 마음은 굽이굽이 돌고돌아 자유롭게 영유를 한 후 마침내 종착지에 가 닿는다. 그 전에는 섣불리 내 마음을 재단하지 않기로 했다. 


-어렸을 때 난 내가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표현도 적었고, 섬세하게 남들을 챙겨주거나 하는 것도 없었다. 하지만 자라면서 그게 감정이 무뎌서가 아니라 감정을 안으로 수렴하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다. 여전히 복잡미묘한 감정을 온전히 표출하는 건 어렵게 느껴진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건 마음을 가다듬고 정리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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