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니아 찬가> 조지오웰
대교와 함께하는 씽큐베이션 1기 '더불어 살아가기'
"사실 십 년 내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나는 항상 당파성을, 부당함을 느끼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책을 쓰려고 자리에 앉으면서 '예술작품을 써야겠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폭로되어야 할 거짓이 있기 때문이고, 주목을 끌어내야 할 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근본적으로는 발언권을 얻고 싶어서다."
조지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中
1984와 동물농장을 쓴 작가 조지 오웰이 경험했던 스페인 내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전쟁이라고 하면 죽음과 삶을 오가는 치열한 전투 장면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가 복무했던 곳은 격전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긴장감이 없었고, 이따금 의미 없는 총성만 들릴 뿐이었다. 언론은 전쟁에 대한 긴박감 넘치는 기삿거리를 분주하게 쏟아내고 있었지만 정작 현장은 지루할 정도로 고요해서 괴리감마저 느껴졌다. 정의심에 불타오르는 스페인 사람들의 정신에 매료돼 파시즘을 물리치기 위해 충동적으로 전쟁에 참여한 그에겐 맥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전쟁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병사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념이나 정의 등 거창한 관념들이 아니었다. 처음엔 그런 목적의식을 갖고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 바빴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 속에서 오히려 다른 편 병사들과 서로의 처지를 공감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똘똘 뭉쳐 파시즘에 맞서싸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혁명세력의 분열이 일어나자 조지 오웰의 회의감은 더해졌다.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은 진정한 혁명을 외쳤다. 브루주아 세력을 몰아내고 사회주의를 달성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급격한 변화에 반대한 스탈린과 그를 추종하는 공산주의자들은 혁명 세력들을 비난하고 급기야 언론을 이용해 그들을 비열한 '트로츠키주의자'로 몰고 갔다.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은 소외되었고 좌파는 힘을 잃었다. 프랑코가 권력을 잡았고 조지 오웰이 바랬던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책은 인간과 사회 집단에 대한 통찰을 전쟁이라는 소재를 통해 끌어내고 있다. 정치인들과 언론이 일으키고가장 약한 사람들이 참전하는 전쟁의 아이러니. 타락한 기존의 질서를 타파하기 위해 혁명을 일으켰지만 결국 힘있는 세력의 회유에 넘어가 원래 목적을 잊어버리고 타협하는 사람들. 전쟁이란 건 인간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극단적 상황이고 전쟁에서 드러나는 복잡다단한 양상은 우리에게 사람과 사회에 대해 많은 걸 알려준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쟁의 개념에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보이는 것은 실재가 아닐 수도 있다. 작가로서의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 참전 전과 후로 나뉠 것 같다. 이상주의적이었던 그를 현실로 내려오게 한 경험은 그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1984 같은 디스토피아 소설을 탄생시켰을 것이다.
p.294
내 역할에 무력함을 느꼈던 이 전쟁은 나에게 대체로 나쁜 기억만을 남겼다. 그러나 전쟁이 없었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이런 참사-어떻게 끝이 나건 스페인 전쟁은 살육과 신체적 고통은 별도로 하고라도 경악할 만한 참사였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를 잠깐 보았다고 해서 꼭 환멸과 냉소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 경험 전체를 통해 인간의 품위에 대한 나의 믿음은 약해지기는커녕 오히려 강해졌다.
p.295
그쪽을 지날 때, 특히 임항 열차의 편안한 쿠션 위에 앉아 평화롭게 배 멀미로부터 회복되고 있을 때는, 어딘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일본의 지진? 중국의 기근? 멕시코의 혁명? 걱정 말라. 내일 아침이면 현관에 우유가 놓여 있을 것이고, 금요일에는 <뉴 스테이츠먼>이 나올 것이다....
p.296
나는 때때로 우리가 폭탄의 굉음 때문에 화들짝 놀라기 전에는 결코 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