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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수현 Jul 15. 2022

"감동적인 거짓말"이 아니라 끔찍한 상상이다.

오늘자 한국일보 <김선지의 뜻밖의 미술사>에 "고다이바는 정말 나체로 마을을 돌았을까 - 백마 탄 전라의 백작부인 '고다이바' 논란"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댓글에 링크) 이 글을 읽다가 정말 깜짝 놀랐다. 고다이바라는 실존 인물이 알몸으로 말을 탔다는 이야기가 허구라는 점을 설명할 때 필자의 시선이 철저히 '남성적 응시'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또 하나의 멋진 거짓말이 있다. 전라의 귀족 부인 고다이바(Lady Godiva)가 백마를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는 이야기다. 감동적인 거짓말의 내용은 이렇다." (종이신문)

==> "또 하나의 멋진 거짓말이 있다. 전라의 귀족 부인 고다이바(Lady Godiva)가 백마를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는 이야기다." (인터넷판)


"선명한 붉은색 고급 천으로 덮인 흰 말 위, 암적색 자수로 화려하게 장식된 안장에 앉아 있는 늘씬하고 관능적인 누드가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말의 색깔은 고다이바의 순수함과 미덕을 상징하기 위해 백마로 표현되었다. 관람자는 조용히 고개를 숙인 그녀의 얼굴에서 알몸임에도 불구하고 굴욕감이 아닌, 고귀하고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녀는 폭정에 항거하고, 정숙함이라는 중세적 도덕에 담대하게 도전한 용기 있는 여성이다." (인터넷판)


"민중을 위해 큰 희생을 치른 고다이바 이야기 역시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신화다."


인터넷판에서 몇 가지 표현이 종이신문의 그것과 조금 달라졌다. 종이신문에는 이 허구의 에피소드를 '감동적인', '매혹적인', '아름다운'과 같은 수식어로 표현했다. 종이신문에서 대체 젊은 여성이 나체로 말을 탔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감동'을 자아낼 수 있는지 의아해서, 끝까지 읽어보았다. 


필자가  '감동적인', '매혹적인', '아름다운' 느낌을 받은 지점은 그림 속 고다이바가 재현되는 방식이다. 필자는 "화려하게 장식된 안장", "늘씬한 관능적인 누드"가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고 보았다. 필자는 '조용히 고개를 숙인 얼굴'에서 "정숙함이라는 중세적 도덕에 담대하게 도전한 용기"를 읽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름다운 신화'로 해석했다. 


그런데 여성이 속옷을 입지 않고 말을 타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KBS 예능 프로그램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는 <애마부인>의 주인공이었던 배우 안소영이 출연하여 이렇게 말했다. 감독이 하의 속옷을 입지 않고 말을 타도록 강요해서 며칠 동안 하혈했다는 것이다. 한국 영화계에서 '섹스 심벌'이라는 고정관념적 '남성적 시선'의 대상이 되었던 이 배우는 미국으로  '망명'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 상황이 있겠지만, 이런 폭력적 경험도 포함된다고 본다. 


굳이 배우 안소영의 경험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속옷을 입지 않고 말을 탄다는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러운 몸의 감각이 느껴진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진저리 쳐지는 상상에 매혹될 수 있는가. 젊은 여성을 발가벗겨 말에 태우고 전시하는 행위, 만약 자신이 그 여성 당사자의 위치에 대입할 수 있다면 그런 해석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중요한 것 하나 더, 필자가 '고개를 숙인' 자세를 "결연한 의지", "고귀하고 결연한 의지"로 해석한 지점이다. 필자는 고개를 숙이는 행위에 대한 일반적 해석과는 정반대의 해석을 제시했는데, 그 해석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유로운 주체가 되어라', '부끄러워하지 말고 당당해야 한다', '처음에는 부끄럽더라도 자꾸 하다 보면 자연스럽고 편해진다', 상대를 성적으로 이용하거나, 착취하려고 몰아붙일 때 행위자가 사용하는 인지적 전략이다. 이것을 '가스라이팅', '길들이기'라고 부른다. 


'남성적 관점'이 철저하게 내면화된 사람이 아니면 이런 해석은 불가능하다. 필자는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라는 책의 저자라고 한다.  '남성적 시선'에는 성별이 없다. 여성의 몸을 구경거리로 보는 시선, 여성의 신체에 성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시선, 여성의 자율성을 전유하여 착취의 도구로 삼는 문법, 이러한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성적 시선의 주체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살면 이런 몹쓸 글이 나온다. 


대체 여성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말을 타는 상상, 그것이 어떻게 섹시하고, 아름답고, 감동적이고, 매혹적인 것이 될 수 있는가? 그런 상상도, 그런 해석도, 진저리 쳐지게 몹쓸 짓이다. 사람을 물건 취급하지 않으려면, 폭력을 미화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남성적 시선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사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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