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집'을!

- 청소년/청년 거주권 운동을 제안하며

by 권수현
"오빠. 자식이 안 무섭지? 마리가 마냥 애라서 만만하지? 근데 마리가 어른 되면..집에서 자기가 어떤 위치였는지 가족들이 자기한테 왜 그랬는지, 자기가 겪을 일들이 뭔지, 전부 이해하게 될 텐데..오빠 그거 하나도 겁 안 나나 보다. 몇 년만 기다려봐. 마리도, 부모 형제랑 연 끊는 게 자기 인생에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바로 이해하게 될 걸?" - 와난 작가의 웹툰 <집이 없어> 중에서


고등학생 마리는 부모가 이혼한 후 줄곧 아빠, 오빠와 함께 살았다. 그 후 어린 마리는 한국 사회에서 '여자의 일'이라고 여겨지는 모든 일을 집에서 도맡아 했다. 그것은 마리를 제외한 가족 구성원 두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이었고, 가사 노동과 학교 일을 병행하느라 지친 마리가 '분담'을 요구하면 오빠의 폭력이 더 심해졌다. 가족 안에서 그 폭력은 형제간 '싸움'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집 안에서 마리에게는 자신의 속내를 말할 곳도, 들어줄 이도 없다.


마리에게 '집'은 태어난 순서라는 나이 위계, 신체적 크기와 힘의 위계, 성별 위계 등이 합쳐진 복합적 위계가 일종의 '신분적 질서'로 작동하는 곳이다. 그곳은 자율성의 박탈, 집안일은 여자의 몫이라는 문화적 강제와 그 질서를 관철하기 위한 폭력이 난무하는 곳이다. 마땅히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보호하고 감독해야 하는 어른의 부재와 방치, 그런 공간에서 마리에게 집이란 오직 힘이 센 놈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잔인한 곳이다. 마리는 학교 기숙사로 들어가길 간절히 원하고 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다. 그러나, 그것을 원하지 않는 오빠는 필사적으로 반대하고, 마리가 없으면 집안일을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빠는 무관심, 거짓말, 끝없는 결정의 지연 등을 통해 마리를 집에 붙들어 둔다.


<집이 없어>, 이 웹툰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그중 하나가. 부모와 의절했지만 이혼한 오빠 주위를 맴돌며 조카들의 상태를 살피는 '고모'의 존재, 그리고 그 고모가 자신의 오빠인 마리의 아빠에게 한 '경고'다. 마리의 고모는, 자신의 부모와 오빠(마리의 아빠)가 자신에게 했던 행동을 그대로 조카인 마리가 대물림 하여 겪고 있다는 것을 간파한다. 마리의 안전을 위해, 자기 삶에 집중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설계할 수 있으려면, 마리가 당장 기숙사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리가 크면 부모인 당신과 의절할 수 있다'


어떤 설득도 먹히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은 마리의 고모는 마지막 카드를 꺼낸다. 지금의 상황을 방치하면, 자신이 그랬듯이 마리도 가족과 연을 끊을 수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분명히 깨닫게 해 준 것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전율을 느꼈다. 그제야, 마리의 아빠는 생전 보여주지 않았던 '다정함'을 자신의 딸 마리에게 보여주며, 기숙사행을 '허락'한다.


자식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부모는 그 권력으로 인해 자식의 자율성, 인권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 쉬운 방식으로 사회화된다. 스포일 된 부모를 바로잡을 수 있는 핵심 요소, 그것은 자신이 자식에게 행사할 수 있는 자원 분배 권력과 권한이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 그 기한이 끝나면 자신은 동료 인간으로서 자식과 새롭게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마리의 고모, 그가 오빠와 인연을 끊지 않았던 이유는, 자신과 같은 '여자의 처지'가 강요되는 조카를 보살피고, 지켜주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모든 부모가 적절히 행동할 수 없으며, 모든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 세상에 도착한다. 마리의 고모가 마리의 삶을 온전히 마리의 것으로 되돌려줄 수 없더라도, 당장 제대로 숨 쉬면서 자신의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준 그 호의가 당연한 권리로서 한국 사회에서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모든 청소년이 '어른'으로서의 삶을 준비할 수 있고 허락될 수 있도록, 모든 청년이 자율적, 독립적 존재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에게 거주권이 주어져야 한다.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시기를 청소년기까지라고 보고, 청소년 시기를 '어른의 삶'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교육적, 제도적, 물질적, 문화적 기반이 제공되어야 한다. 그래야 부모는 자식에게 종교를 강요하고, 통금 시간을 제한하며, 옷차림과 외모에 대해 간섭하는 일, '내 집에서 내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제왕적 발언을 하지 않는 시민이 될 수 있다. 그래야 부모는 평생 자식을 돌보다가 비로소 떠나보낼 때가 되었을 때 '이제 내 장례식만 남은 것인가?'라는 허탈하고 공허한 질문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다. 부모도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는가?


지금과 같은 가족 제도, 보다 정확하게는 '가족'을 사회의 기본 단위로 보되 그 안에서 생존의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되어야 한다/된다라는 전제 위해서 설계된 것이 바로 한국의 가족-국가 체계다. 이 체계는 원래부터 완벽하게 작동할 수 없으며, 그나마 가족이 수렴해왔던 인간 생존을 위한 모든 기능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이 현실을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의 청소년 및 청년의 인권 운동이, 자율적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물질적 기반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고 국가에게 요구하는 방식으로 확장되길 바란다. 거주권의 요구는 그 물꼬를 열어주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청소년 및 청년 인권 운동이 한국 사회에 새로운 희망적 혁명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다. 내가 이 세상을 뜨기 전에, 그런 사회가 도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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