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마음

다큐멘터리 <그라운드의 이방인(2013)>

by 권수현

2013년, 그러니까 10년 전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그라운드의 이방인>. 31년 전(1982년) 18세의 나이로 '재일동포' 야구단으로 한 달간 한국에서 머물렀던 선수단을 수소문해 연락이 닿은 사람들을 만나 당시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연이 닿아 다시 만난 이들을 초청해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 이 다큐에서 인상 깊게 본 장면들이 있다.


1. 몸에 새겨진 차별의 기억


당시 선수단이었던 이들이 한국에 와서 프로야구 경기의 시구에 참여한 분 인터뷰 장면. 31년 전 한국에 왔을 때 차별받았던 기억 그리고 당시 경기장에 섰을 때 '적'으로 간주되었던 기억 때문에 경기장으로 나갈 때 몹시 위축되고, 두렵고, 긴장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경기장 화면에 당시 사진 영상이 뜨고 관중석의 박수 소리를 듣고, 그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고 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48세의 중년이 되었지만, 18살 한국에서 겪었던 차별과 적대감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도, 몸에 새겨진 차별의 기억이 현재 그 공간에 감도는 환대의 에너지로 상쇄되는 것도, 인상 깊었다.


2. 배수찬 감독을 기억하기


감독이 재일동포 야구단에 참여했던 분들에게 연락했을 때, 인터뷰를 거절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그중 어떤 분은 재일동포 야구단으로 한국에 다녀온 뒤 일본에서 자신이 '재일조선인'이라는 것이 알려져 불이익을 겪었다고 했다. 그래서 당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청소년 재일동포 선수들은 '자이니치' 차별로 인해 일본에서 프로 야구 선수로 활동하는 데 제약이 컸다고 한다. 재일동포 야구단 활동을 계기로 한국으로 와서 선수 및 감독으로 활동한 이들 중 배수찬 감독의 흔적을 찾아 취재한 내용도 인상 깊었다.


배수찬 감독은 감독으로 활동하던 중 공안 당국에 끌려가 극심한 고문을 당했다. 그 상처를 술로 달래다가 가족과 함께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갔으나 사업에 여러 차례 실패하고, 휴식을 위해 일본에 들렀다가 갑작스레 사망했다고 한다. 그 부인 인터뷰에서 그 가족이 국가 폭력으로 인한 상처, 망명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민과 배수찬 감독이 느꼈을 '고향'에 대한 그리움 등을 헤아려볼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에 이와 같이 주제와 관련된 맥락에서 잊힌 인물의 흔적을 찾고 그의 삶을 조명하는 내용이 포함된 점이 참 좋았다. 배수찬 감독에 대한 애도이자, 배수찬 감독과 그 가족에 대한 위로의 메시지 같았다. 그리고 반공 체재 하의 국가 폭력의 역사를 조명한 점도 좋았다.


3. 출연진들의 수다/목소리


48세 중년 남자들이 30년 만에 다시 만나 장난치며 끝도 없이 수다 떠는 장면, 한국에 방문한 당시 선수단 일원들이 친선 경기를 하면서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장면, 제작진과 교류하는 장면들도 좋았다. 제작진이 그들을 찾아내고, 연락하고, 섭외하고, 예전의 멤버들과 회동하는 자리에 함께 하고, 한국으로 초대하여 그 시간들을 함께 하는 모든 장면에서, 제작진은 그라운드의 이방인이었던 출연진들에게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다가갔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느껴졌다.


31년 전 이방인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보여주면서도 그들을 타자화하지 않고 그들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들려줘서 좋았다. 그래서 보고 나면 깊은 여운과 함께 기분이 좋아진다.


4. 이방인의 마음 (추가)


이 글을 올리고 난 다음날 시구를 하신 분 인터뷰와 관련하여, 생각난 점이 있어 추가. 그분은 차별과 적대감에 대한 기억으로 긴장된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고 했는데, 사실 시구를 던진 날 그라운드는 대단히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31년 만에 재일동포 고등학생 야구 선수로 섰던 그 자리에서 서게 된 당사자는 어땠을지 모르겠으나, 화면으로 보았을 때 관중과 프로야구 선수들의 반응은 적극적 환영이라기보다는 무관심과 시큰둥에 가까웠다. 유명인도 아니고 오래전 잠시 이곳에 섰던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시구 당사자는 그렇게 좋아했다. 내 눈에 보기에 그라운드에 단지 차별과 적대감이 없었을 뿐인데, 무심한 박수 소리가 있었을 뿐인데, 그는 그렇게 감격했다. 일본과 한국 양쪽에서 외부인 취급을 받으며 적대와 차별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해 보게 된다. 차별의 시선으로 주목받는 일이 없는 공간, 작고 사소한 환영이 오가는 공간, 그런 공간에 대한 절실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해 보게 된다.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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