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방치'라는 이름의 학대

오사 게렌발,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

by 권수현

예전에 배우 차인표가 북한 인권 운동에 참여하게 된 중요한 계기로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를 들려준 적이 있다. 1980~90년대에 아동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그 시절 익숙한 단독 주택 구조를 기억할 것이다. 오래된 아파트 1층 밑에 창고나 보일러실로 사용하는 조그만 창문이 달린 것처럼 단독주택에도 그런 지하실이 딸린 곳이 있었다. 아마 배우 차인표가 아주 어릴 적, 그런 구조의 집에 살았던 것 같다. 배우가 어느 날 집에 어른들이 외출하고 형과 단둘이 있었는데, 마당에서 혼자 놀다가 1층 계단 밑 지하층 창문이 열려 있어 호기심에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고 한다.


지하실은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문제가 생겼다. 머리가 창에 꽉 끼어버린 것이다. 형을 찾으며 도와달라도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그 소리가 깜깜한 지하실에서 메아리처럼 울리기만 할 뿐 지하실이 모든 소리를 흡수하여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전혀 밖으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형에게 발견되어 겨우 머리를 빼내었지만 그때의 밀실 공포는 큰 정신적 외상으로 남았고, 그러한 경험이 아무리 외쳐도 외부 세계에 전달되지 않는 사람들의 고통에게 귀를 기울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부모의 '정서적 방치' 속에서 살았던 저자의 자전적 삶을 다룬 오사 게렌발의 그래픽 노블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를 읽고 이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마치 영원처럼 여겨졌을 그 밀실 공포의 세계 말이다. 이 책은 평생 나를 사랑해 달라고, 바라봐달라고, 도와달라고, 이해해달라고 절박하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살아왔던 사람이 자신의 모든 목소리를 흡수해 버리는 구멍의 밀실 공포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이야기다.


저자가 경험한 밀실 공포의 세계란, 이런 것이다. 부모와의 관계, 부모가 자신에게 했던 행동에 대해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는 말들의 세계다. '그럴 리가', '흥미롭네', '독특하다', '비현실적이다', '인위적이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부모님께 네가 모르는 사정이 있었을거야',...'평범한 사람', 즉 규범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좀처럼 상상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일상을 살았던 사람이 느끼는 폐쇄 공포, 그것은 아무도 내 이야기를 믿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 자신이 그 일을 겪은 게 과연 사실일까 하는 의심, 그로 인한 비현실적 자아 감각과 자기혐오다.


저자에게 특히 치명적으로 해로웠던 지점은 모녀 관계다. 단지 하루 종일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부모 중 어머니의 정서적 학대가 더 악영향을 주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엄마'의 틀이 너무나 견고하고, 사람들이 이해하는 부모 자식 관계의 경험의 '보통치'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그 세계의 언어로는 저자의 삶을 설명할 방도가 없었고 아무리 설명해도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아이들을 낳아 사랑을 주고받으며 키우면서 밀실의 세계에 갇혀버린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이고 그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극심한 우울과 고통을 겪게 된다.


내가 정신줄을 놓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아주 작지만 굳은 신념 하나를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실제로 건강하고 병든 건 주변 환경이라는. 마음속 깊이 어딘가 자리한 이런 작고 굳은 확신이 한결같이 나는 건강하다고 되새겨 주었다. 이 확신이 나를 살게 했다. p.147
하지만 그들은 내가 하려는 말을 도무지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다 자란 어른이 되었어도. "엄마 아빠 일은 그만 다 잊자" "이제부터는 너와 나 둘 뿐이야" 그러고서 어린 제니는 내가 데리고 갔다. 아이는 마치 나의 일부인 것처럼 내게 꼭 매달려 있었다. 우리는 들판과 숲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리고 마을과 도시를 뚫고 지나갔다. 집, 학교, 주방, 식탁, 아파트, 침해, 병원, 폭력, 상처, 그리고 고독을 함께 거쳐갔다. 그렇게 지나가는 길에 있던 제니를 모두 데려왔다. pp.177~180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어른인 주인공 제니가 어린 시절 '치명적인 기억'의 장소로 들어가 영원의 시공간에 갇혀버린 어린 제니를 데리고 나오는 장면, 어린 제니를 성인 제니가 끌어안고서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 일상적 기억 장소를 거쳐 지나가면서 그 모든 내버려진 제니들을 하나씩 데리고 나오는 장면으로 이뤄져 있다.


인권 침해 피해자를 인터뷰하면, 자신이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서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거론하는 이들이 많다. 잘못된 것은 자신이 아니라는 믿음, 자신의 감정, 생각, 느낌이 옳다는 믿음이야말로 자신을 버티게 해 주고, 살아남을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저자가 "마음속 깊이 어딘가 자리한 이런 작고 굳은 확신"이라고 말한 자기 신뢰야말로 억압으로부터 탈출하고 자기 삶을 탈환하는 데 있어서 핵심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스웨덴에서는 북극광 현상을 볼 수 있다. 우주 광선과 대류권 위쪽의 자기권 플라즈마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으로 그 광경은 절정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 광경을 보기 위해서는 어떤 다른 광원의 방해도 없이 칠흑같이 어두워야 한다. 이는 곧 내가 책을 쓰는 방식이자 북유럽 스토리텔링 전통에 대한 상징이다. 절대적인 어둠 속에서만이 진정 가장 아름다운 빛을 볼 수 있고 하늘로부터 쏟아져내리는 금가루의 향연을 누릴 수 있다. - "한국의 독자들에게" 중에서 p.183


이 책은 꼭 부모의 '정서적 방치'라는 주제가 아니더라도 살면서 그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었거나, 이해받지 못했거나, 아무리 말해도 '그럴 리가 있겠어', '그건 정상이 아니야'라는 식의 메아리로 팽개쳐지는 경험, 혹은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큰 울림을 주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주변 환경이 문제인 것이지, 나는 전적으로 정상'이라는 믿음 하나로 '절대적인 어둠'을 지나온 작가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는, 그런 사람들에게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빛의 향연이 될 것이다.



추가.

- 리뷰를 읽은 지인이 개인적 감상 포인트를 궁금해하기에 잠시 망설이다가 적는다.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의 독자평을 보면 '충격적', '생소하다'는 반응이 있다. 사실 흔히 말하는 '보통의', 혹은 '정상적인' 부모를 둔 사람이라면 '이런 일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거나 잘 와닿지 않는 이야기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자랄 때 이런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예를 들면, 딸을 경쟁자로 인식하거나, 딸을 질투하거나, 심지어 딸의 자립을 은밀히 또는 노골적으로 방해하거나, 이런 저런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삼는 그런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모성 신화에 대한 페미니즘 지식이 풍부해진 지금과는 달리 그때는 이런 이야기는 그저 '믿을 수 없는' 또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아무도 믿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은 그래서 외롭다. 그래서 영원의 시공간에 갇혀버린 듯한 밀실 공포를 갖게 된다. 여전히 이 책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오직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자신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이야기가 있다. 작가의 이야기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비록 많지 않더라도, 한 사람이 그 이야기에 공명한다면 그 울림이 세상에 펴져나가 세상을 더 이롭고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KBS 예능 <개는 훌륭하다>는 당장 폐지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