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이 꽤 괜찮은 나라인 이유

오사 게렌발 <7층>

by 권수현

최근 인터넷에 우연히 올라온 놀러간 친구 집에서 손님인 자신에게는 밥을 안 주고 자기들끼리 먹었다는 에피소드가 SNS에 돌면서, 스웨덴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까이고 있다. 그 '까임'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스웨덴은 그야말로 손님 대접도 제대로 못하는 무례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인식이 생긴다. 한편 이러한 스웨덴 까기에 거리를 두는 이들 중에서는 진짜 비판받아야 할 다른 나라의 관행이나 법제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이 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노키즈존 관행'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 미국에서는 학교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총기 학살 사건에도 불구하고 총기 규제가 법제화되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사실 내가 오사 게렌발의 그래픽 노블을 하나씩 찾아 읽게 된 계기는 이번 '스웨덴 까기' 와중에 우연히 이 스웨덴 작가를 언급하며 스웨덴을 다른 관점에서 조명한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오사 게렌발의 책을 읽어보면 스웨덴이 어떤 점에서 꽤 괜찮은 나라인지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친밀성 기반 폭력에 대응하는 사회의 자세'가 그것이다. 오사 게렌발의 그래픽 노블, <돼지>, <7층>,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에는 가족, 친구, 연인, 지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학대, 괴롭힘 폭력이 핵심 플롯으로 포함되어 있다.


내게 인상적이었던 점은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생겨날 수 있는 '친밀성 기반 폭력'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과 대응 태도다. 이 책들에서 특히 주목해서 보았던 점은 공적 영역과 제도 안에서 이 폭력이 어떻게 다뤄지는가 하는 점이었다. 대학에서 만나 사귀게 된 연인에 의해 발생한 데이트 폭력을 주제로 한 그래픽 노블 <7층>은 후반부에 그 점에 대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데이트 폭력 피해자인 주인공은 학교의 여자 교수 한 명에게 처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털어놓는다. 상황을 알게 된 교수와 학교는 정확하고 적절하게 대응한다. 이 교수의 대응은 교수 직책에 있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과 폭력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에 대한 모범 답안과 같다. 교수는 주인공에게 상황을 처음 알게 된 교수로서 학교에서 할 일(학과 교수들과 문제 상황 공유, 분리 조치)을 알려주고, 그다음 피해자가 알아야 할 것들(휴식을 취할 것,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진단서를 발급받을 것)에 대해 차근차근 알려준다. 학과 교수 중 한 사람이 경찰서에 동행한다.


이 대목에서 스웨덴의 학교 시스템 안에서 친밀성 기반 폭력에 대한 인식과 대응이 탄탄하게 갖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교수 중에서 이 문제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사람도, 학과 공동체 안에서 대응해야 하는 의제로서 제대로 시스템이 돌아가는 경우도 드물다. 한국의 대학에서 피해자는 데이트 폭력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의인'을 만나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의인'을 만난다 할지라도 학교라는 공적 시스템 안에서 제대로 보호받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의사 : (피해자로부터 상황 설명을 듣고서) 잘 왔어요. 정말 용기 있는 결단을 했군요. 의사 : (의학적 처치와 조사가 끝난 후) 곧 진단서 작성해서 줄게요. 경찰서나 법원에 가서 내 이름을 대고 그다음 절차를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기 온 건 정말 잘한 거예요.

경찰 : 당사자 입장에서 고소라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용기가 대단하십니다. (동행한 교수 : 그렇고 말고요.)

동행한 교수 : 이 모든 걸 견뎌내다니 참 대견하구나. 넌 아주 강한 아이야!


피해자가 사실을 알린 후 교수와 학과 - 의사 - 경찰로 이어지는 대처방식과 태도는 안정적이고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이들 모두 하나같이 폭력 사실을 알리고 폭력의 지속을 중단하고자 하는 피해자의 결심과 행동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피해자가 왜 그런 사람을 만났는지, 왜 진작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지, 왜 이제야 말했는지 비난하지 않는다. 간혹 그런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예외적일 수밖에 없다. 이 시스템 안에서 제대로 기능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진정, 분명, 정말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꽤 괜찮은 나라다.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잘 기능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스웨덴 대사관에서 개최한 젠더 토크에서 당시 스웨덴 대사가 스웨덴이 페미니즘 외교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30년 전 스웨덴을 보는 것 같았다고, 30년 동안 성평등 정책을 일관성 있게 펼친 결과 스웨덴에서 모든 사람들의 행복 지수가 올라갔다고, 이 좋은 걸 스웨덴 혼자 누릴 수 없으니 이웃 나라에게도 알려주고 싶다고, 그것이 글로벌 공동체로서 의무라고. 흔히 한국인들은 성질이 급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좋은 걸 스웨덴이 30년 만에 해냈다면 우린 더 빨리 이룰 수 있다. 그 좋은 거 우리도 좀 해 보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정서적 방치'라는 이름의 학대